"아기용품 뭐 산 거 있어?"
"선물해주려고 하는데 아직 안 산 거 뭐 있어?"
"아기용품 언제 살 거야?"
가끔 주위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물어볼 때마다, '아니 나 하나도 안 샀는데' 출산 한 달 전에 우르르 당근에서 싹쓰리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과거 몇 달 전의 나. 그냥 대충 흐린 눈으로 봐도 필요하다는 게 너무 많은데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어차피 우리 부부는 곧 이사도 할 건데, 지금 아기용품 다 이고 지고 있을 필욘 없잖아. 나중에 사지 뭐, 대충 미뤄놨다.
온라인상에 돌아다니며 꼭 사야 한다는 아기용품, 출산용품 리스트만 봐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젖병과 젖꼭지는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유모차에 디럭스는 뭐고, 역방쿠는 일본어야 뭐야. 터미타임, 스와들업, 원더윅스,,, 등등. 왜 이렇게 다들 영어를 갖다 붙이는 거야, 하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출산용품 리스트를 내 스타일의 엑셀 파일로 다시 정리해 봤다. (도무지 엑셀 없인 살 수 없는 나...) 정리하고 보니 더욱더 실감이 됐다. 와, 이거 이대로 똑같이 다 사면 몇 백 소리 나오겠구나 싶었다. 시간 여유 있을 때 하나씩 네이버에 검색해 보며 이미지도 보고, 대충 관련 글도 읽어보고 하면서 나한테 필요할지, 불필요할지 체크를 해보았다. 각 용품들의 대략적인 가격대도 함께 적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하는 생각...
- 나 애기 땐 이런 거 없었는데.
- 옛날에 엄마가 동생 신생아 때 목욕시킬 때도 그냥 집에 굴러다니는 다라이에 목욕시켰었는데.
- 내 동생 유모차는 무슨 파라솔마냥 가느다랗고 덜컹거리는 천 쪼가리 같은 거 하나로 오래 잘만 탔는데.
나와 6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 때의 기억을 자꾸 되새겨 본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난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라, 그때의 기억이 제법 생생하다. 외국에서 살고 있을 때라, 아빠는 항상 바쁘고 엄마가 집에서 우리 남매 육아를 혼자 다 소화했다. 그 시절 90년대 외국에 산후조리원이 어딨고, 산후도우미가 어딨담. 그때 아빠가 찍어둔 사진이나 비디오 녹화자료도 많기 때문에, 엄마 혼자 갓 태어나 새끼개미 같던 이등신의 남동생을 케어하며 육아하던 모습이 눈에 훤하다. (예비 초1의 눈에 비친 신생아의 느낌...)
그리고 지금의 출산용품 아기용품 리스트를 하나씩 보면, 자꾸 드는 생각... '이것들이 진정 다 필요한 걸까. 이런 건 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없으면 막 애기한테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한참 변했는데 내가 너무 젊꼰의 자세로 못마땅해하는 걸까. 나도 막상 애기가 태어나면 마음이 바뀔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다.
마치 꼭 결혼을 준비하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웨딩홀을 결정하고, 웨딩드레스 투어를 다니고, 스드메를 알아보며 '인생의 단 한 번'이라는 프리미엄값이 붙어 수없이 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을 견뎌야 했던 결혼 준비과정처럼, 아기 육아용품을 준비하는 과정도 비슷한 것 같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경제 가치관이 똑같아서 우린 결혼 준비도 시종일관 대쪽같은 흐린눈으로 임하며 온갖 유혹을 잘 헤쳐왔는데, 이젠 육아를 앞두고 또 다시 흐린눈 장착을 (내가 먼저)준비하려 한다. 미안하지만 아기 육아용품의 어떤 것들은 업체의 상술이라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산후조리원도 안 가기로 했다. 이유는 내 기준에서 너무 비싸다는 이유가 단순히 가장 컸다. 임신 극초기 때부터 시종일관 산후조리원, 산후조리원 말을 염불처럼 꺼내던 남편도 결국 끝내 안 간다는 나의 똥고집에 백기를 들었다. 어차피 친정 근처로 이사도 할 거고, 내가 잠시 일을 쉬면서 아기를 직접 돌볼 건데 굳이 산후조리원에 가서 호캉스처럼 2주가량의 시간을 누워있을 필요가 있을까.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집에서 몸조리하고 아기도 상시 옆에서 두고 챙겨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때 아니면 그렇게 누릴 시간이 없어!'라는 말이 어쩐지 듣기 불편했다. 왜 없어. 정 원하면 호캉스야 살면서 아무 때나 갈 수 있는데? 나 혼자 편히 쉬자고 몇 백씩, 많게는 몇 천까지도 올라가는 산후조리원의 비용을 대면서 호강하기엔 다른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신혼 첫 2년을 보내며 그 동안 우리가 알뜰살뜰 자산도 잘 모아놨지만, 어차피 이사하면서 대출도 받고, 앞으로 큰 돈 나갈 일들도 종종 있을 텐데 나 조금 편하자고 그 큰 비용을 한 순간에 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산후조리원의 장점을 모르는 건 아니다. 상시 소아과 의사가 회진하며 아기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해 주는 점, 출산 후 너덜너덜해진 엄마가 몸조리에만 신경 쓸 수 있게 관리해 주는 점, 밥과 간식이 매 끼니마다 알아서 나온다는 점 등등. 하지만 나는 집에서 요양을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남편 직업 특성상 98%의 독박육아도 예정돼 있어 모든 걸 감안하고 있다. 심지어 신생아 시절이 좀 지난 뒤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 난 대중교통으로 아기를 데리고 출퇴근도 같이 해야 한다. 그런데 별로 걱정은 안 된다. 아직 뭘 몰라서 무식한 자세로 임하는 걸까. 정부에서 지원하는 산후도우미는 고려하고 있다만... 아 내 성격상 모르는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서 돌아다니면서 내 살림 만지는 것도 썩 내키진 않은데... 항상 미안해하는 남편에게 씩씩하게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육아하다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죽었다는 사람은 없잖아, 내가 한번 그렇게 해 볼게. 내가 혹시 죽으면 그다음부턴 자기가 해~"
"그런 소리 하지마아아아악"
21주에 접어든 지금, 아기 출산용품은 엑셀 리스트만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채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로 남아있다. 내가 갖고 있는 아기용품이라곤 태아보험 상담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신생아 옷 같은 거 몇 벌,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선물 받은 아기옷 몇 벌, 내가 당근으로 단돈 1만 원에 데려온 아주 멀쩡한 브레짜 분유제조기 1대뿐이다. 좀 더 살펴보고 최소한으로 최댓값을 뽑아내봐야지. 내 자신에게 굿럭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