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산부인과들은 니프티 검사를 하면, 결과를 문자로 보내주면서 태아의 성별도 함께 알려준다고 한다. 결과도 빠르면 3~4일, 혹은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분당차병원은 보수적인지 니프티 결과를 보내줄 때 태아의 성별은 알려주지 않는다. 문자도 정확히 딱 2주 뒤에 보내준다. 태아의 성별은 16주에 초음파 보러 병원에 갔을 때 그때 초음파를 보면서 확실하게 말해준다고 한다.
그래도 내가 미리 태아의 성별을 알 수는 있다. 니프티 검사를 하고 일주일 뒤쯤 분당차병원 앱에서 의무기록사본을 떼면, 니프티 상세 결과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거기 성별이 +/- 기호로 표시돼 있다. 남자는 (+), 여자는 (-) 성별은 누구나 빨리 알고 싶어하기 땜에, 차병원 다니는 산모들이라면 상당히 많은 분들이 의무기록사본을 떼 볼 것 같다. 돈도 내야 함... 커피값 냈다고 생각함.
나는 성별 상관없이 건강하게만 나와라 주의였는데, 남편이 강경 딸파. 하도 딸딸딸... 딸 주문을 읊어대서 아들이면 아주 통곡을 하겠네, 싶었다. 그러다 남편이 태몽스러운 꿈을 2번이나 꾸었다. 왜 우린 아무도 태몽을 안 꿔? 아쉬울 참이었는데 말이지.
1번째 태몽. 임신하기 1개월 전.
남편이 시골 할머니집을 갔더니 닭들이 엄청 많이 마당에 뛰어다니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수탉 한 마리가 남편에게 달려들었다. 남편이 이런 꿈을 꿨는데 너무 생생해서 느낌이 이상하다고 말하길래, 내가 '와 되게 꿈이 태몽스럽다. 태몽 같네' 했지만 이땐 내가 임신을 하지 않았을 때라 다른 의미의 꿈인가보다~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어머니가 말씀하시길, 태몽은 꼭 임신하고 있는 중에 꿔야만 태몽은 아니고, 임신을 안 했을 때 꿔도 '아 조만간 임신 소식이 있으려나 보다' 하는 예언의 힘도 있다고 하셨다.
2번째 태몽. 임신 9주차쯤?
남편이 나랑 싸우고 둘이 어느 시냇가를 건너야 하는데, 건너편에 엄청 크고 무서운 백두산호랑이와 작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백호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안내원이 '남편이나 나 둘 중에 한 명만 시냇가를 건너도 된다, 근데 꼭 반드시 건너야 한다, 안 건너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그럼 내가 건너야지' 하는데 백두산호랑이가 너무 무서워서, 저 호랑이만이라도 좀 치워달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크고 무서운 백두산호랑이는 알아서 뒷산으로 사라졌고, 남편이 시냇가를 건너 훌쩍 뛰었더니 작고 귀여운 푸른빛의 백호랑이가 남편에게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면서 안겨왔다고 한다. 백호랑이가 강아지처럼 너무 귀여웠다며, 남편은 이 꿈이 너무 생생하고 신비로웠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남편도 태몽이 호랑이였다며 너무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다. 엄마아빠는 태몽이 둘 다 너무 좋다며 수탉에 호랑이? 이건 완전 빼박 아들이네! 싶었다. 엄마와 시어머니는 두 분 다 내가 임신했다고 처음 말씀드렸을 때부터 아들일 것 같다고 하셨다. 이렇게 모두가 아들이구나, 아들이야~ 하던 와중에도 남편은 딸 딸 딸... 홀로 외롭게 딸을 외쳐왔다.
다시 돌아와서, 분당차병원 니프티 검사 후 일주일이 지나 의무기록사본을 떼 보니, 결과는 (역시)(모두가 예상한대로) 아들이었다. 남편에게 니프티 결과가 나왔다고 +/- 기호가 써져 있는 칸만 모자이크로 칠하고 서류를 캡쳐해서 카톡으로 보여주었다. 다 저위험군이었다. 다행이라고, 좋다좋다~ 하면서 남편은 "자, 이제 성별은?!" 물어보았다. 그래서 성별은 밤에 깜짝 이벤트로 말해주겠다고 했더니 궁금해 미칠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평소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나는 젠더리빌도 셀프로 준비했다. 며칠 전, 남편이 택배로 주문한 향수 상자를 버릴려고 분리수거함에 내놓았는데, '사이즈가 딱 젠더리빌하게 생겼군' 해서 내가 따로 챙겨놨었다. 문구를 출력하고, 굴러다니는 하늘색 한지를 적당히 잘라 상자 바닥에 깔고, 퇴근 후 집 근처의 베이비하우스에 처음으로 가봤다. 그 동안 애기용품을 하나도 안 샀는데, 이날 베이비하우스에서 처음으로 8천원짜리 아기 양말을 사 봤다.
그리고 집에 와서 뽀짝뽀짝 셀프 젠더리빌을 준비했다. 귀여워... 남편 빨리 퇴근해...
임신하니까 이벤트할 일이 많아서 재밌었다. 남편은 퇴근해 집에 들어오자마자 "성별!!!!" 외치며 신발을 벗었다. 좋은 날이라고 장미꽃도 한 송이 사 왔는데 딸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핑크색 장미를 사 왔더라. 그래서 일단 샤워부터 하고 오라고 화장실로 등 떠밀었고, 처음 임밍아웃할 때처럼 저녁 먹으려고 앉은 남편에게 '선물이야' 박스를 내밀었다. 떨려서 못 열어보겠다고 오도방정을 떠는데 지켜보는 나는 왜 떨림. 박스를 열어보고서 아들인 걸 알자 남편은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좋아 좋아, 했다. 사실 아들일 것 같았다며... 태몽이 너무 아들이라 온 우주가 아들 기운을 주는 것 같아서 예상했다고.
성공적으로 남편에게 젠더리빌 이벤트한 이후, 나는 상자를 그대로 들고 출근해서 엄마아빠에게도 똑같이 젠더리빌 이벤트를 했다. 결과는 역시, 아들! 예상했다 야! 너무들 기뻐하셨다. 시댁에는 전화로 말씀드리자, 똑같이 역시 아들일 줄 알았다며 모두가 축하해주셨다. 특히 아들이라니 시아버지가 내심 너무 좋아하신다고. 남편 힘 내자.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