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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타일 Mar 17. 2024

다이어트 약

다이어트약을 처방받았다.     

의사는 처음 나를 보고, 원하는 목표체중을 물었다.     

그리고 끝이었다.     

5분 만에 진료실에서 나왔다.     

나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약은 신세계였다.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먹고 싶지 않았다.      

음식을 좋아하고, 식탐이 많던 내가 음식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종일 갈증을 느꼈다.

물을 마셔도 마셔도 몸에 가뭄이 든 것 같다.     


매일 억지로 챙겨 마시던 물을 이제 알아서 마시고 싶으니 잘된 일이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게다가 배고프면 힘이 없고, 기분이 가라앉아야 정상인데

약을 먹은 뒤로 기분이 자꾸 붕붕 떴다.     

작은 일도 흥분하고, 술을 마신 것처럼 즐거웠다.

목소리가 커졌다.               


게다가 잠도 줄었다.     

신생아만큼 오래 자던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아졌다.     

잠을 안 잤는데 졸리지 않고, 기분은 계속 흥분 상태.     

머리에서는 내일 운동계획이 끊임없이 떠오르다 금세 사라지고, 다시 떠올랐다.     


나는 몰랐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머릿속은 정지 버튼을 까먹은 고장이 난 기계 같았다.      


체중은 65kg까지 내려갔다.      

역시 안 먹으면 다 빠진다며 신이 났다.     

대신 약의 효과가 떨어지는 시간이 오면 피로감이 몰려왔다.     

피로감과 함께 극심한 허기도 찾아왔다.     

음식에 미친 사람처럼, 자꾸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약 효과가 떨어지기 전, 바로 다음 약을 먹었다.     

하루 3번 약은 꼭 챙겨 먹었다.

배고픔이 심하면 먹는 필요시 추가 약도 먹었다.     

다이어트약에 내성이 생겼는지, 처음 먹던 4알로는 더는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매달 약의 용량은 늘어갔다.     


몇 달 뒤, 나는 매끼 10알이 넘는 다이어트약을 먹어야 했다.          

하루 3번 12알의 밥보다 많은 양의 다이어트약을 먹었다.     

그리고 그 시기, 나는 손을 자주 떨고, 두 번 쓰러졌다.    

 

몸은 망가졌지만 허리 29를 입고,

남자친구가 원하던 "마른 여자"가 되었다.     

이제 나는 그가 사준 작은 사이즈의 운동복도 잘 맞았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는 계속 나빠졌다.   

나는 그와 함께 운동할 수 없을 만큼 체력이 나빠졌다.  

우리는 그저 매일 전화 정도만 주고받았다.     

언제부턴가 그에게 나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되었는지 쉽게 상처되는 말을 했다.     

"어제 뭐 먹고 잤어? 얼굴 부었는데?" , "체중 재봤어? 몇 킬로야?" 등.     

더 이상 나의 다정한 자기는 없었다.     


어쩌다 우리가,

어쩌다 내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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