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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타일 Mar 24. 2024

어쩌면, 미친 여자.

다이어트약에만 의존한 나는 다양한 부작용을 겪었다. 


영양부족으로 머리가 심하게 빠졌고, 

오랜 공복이 익숙한 위는 음식만 들어가면 위경련을 일으켰다.     

자칭 꿀피부라 자랑하던 피부도 하얗게 버짐이 피었다. 


눈에 보이는 부작용만 문제가 아니었다.     

의사는 내게 불면증과 두근거림은 

다이어트약의 흔한 부작용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흔하다 넘길 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잠을 자주 못 자고, 이유 없이 두근거리는 불안 장애에 시달렸다.     

밤이 되면 잠은 오지 않고,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밤마다 나쁜 상상이 끝없이 떠올랐다.     

하늘이 무너지는 상상.

누군가가 나를 뚱뚱하다고 놀리는 상상.

모두 나를 비난하는 상상 등...

불안한 상상은 피곤함에 지쳐서 잠들 때까지 내 밤을 괴롭혔다.     

그래도 불면증과 불안 장애는 밤이 지나면 끝이다. 


하지만 불면증보다, 불안 장애보다 

내게 가장 치명적이었던 부작용은 

순식간에 변하는 감정변화였다. 



 

다이어트약을 먹기 전, 나는 꽤 밝은 사람이었다.

아니, 밝다 못해 회사에서 나는

화를 내지 않는 호구로 통하기도 했다. 

    

은근히 내게 일을 떠넘기는 후배나 

내게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상사에게도 나는 언제나 친절했으니까.     

그런데 약을 먹고, 내가 달라졌다.


월요일 오전 회의 시간, 

후배는 오늘도 내게 일을 떠넘겼고,

상사는 불가능한 요구를 내게 했다.

그리고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수타일씨는 앞에 빵 먹지 마. 빵은 살쪄."     

키득대던 후배와 상사에게 빵을 던졌다.

평소라면 참았을 일에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나도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의 감정 기복이 약 부작용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 나는 많은 사고를 쳤다.


남자친구의 장난에 갑자기 커플링을 집어던졌고, 엄마에게 자주 소리를 질렀다.

또 차라리 죽고 싶다며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나는 누구든 보면 싸움닭처럼 달려들었다.     

다이어트약을 먹기 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위험한 일들이었다. 


    

휑한 머리, 푸석한 피부, 손 떨림, 불면증, 불안한 눈빛,

싸움닭 같은 공격 태세까지….  

   

나를 모두 미친 여자처럼 봤다. 

어쩌면, 정말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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