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타일 Jun 02. 2024

툭 하고 던진 말에, 나는 푹 쓰러져요.

나는 어릴 때부터 뚱뚱했다.

초등학생 때, 이미 40kg을 넘었고, 학창 시절을 100kg이 넘는 초고도비만으로 살았다.

살이 찌면 몸도 힘들지만, 그보다 힘든 건 따로 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 한 명 없던 나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 먹는데 나만 홀로 자리에 앉아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수업을 마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종일 굶주린 배를 잡고, 학교에서 멀고, 한적한 식당을 찾았다.

밥을 급하게 먹는 나를 보고, 옆 테이블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학생, 천천히 먹어. 빨리 먹으면 살쪄."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식당 주인도 말을 보탰다.

"저, 텔레비전에서 천천히 먹어야 살 안 찐다고 하긴 하더구먼."

"그러니까. 빨리 먹으면 더 많이 먹는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학생은 튀긴 건 절대 먹지 마. 잡곡밥 먹고, 싱겁게 먹어야 해."


그냥 천천히 먹으라고 해주시면 좋았을 텐데….

누구 하나 물어본 적 없는 이야기로 두 사람은 계속 대화했다.

나는 급하게 수저를 놓고 나온 뒤, 다시는 혼자 식당에 가지 않았다. 

    

살쪄서 슬픈 일은 또 있다.

지하상가에서 옷 가게 구경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빨간색 원피스를 발견하고, 사이즈가 맞을지 이리저리 살폈다.

그런데 대뜸 점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손님, 저희 55 사이즈까지밖에 안 나와요!"

누구, 점원한테 사이즈 물어보신 분???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례한 점원이었다. 

따질법한데 나는 도둑질하다 잡힌 것처럼 원피스를 다시 놓고 도망갔다.     


억울한 일이, 그뿐이겠는가.

지하철 자리가 있어도 선뜻 앉지 못하고 서서 가는 일.

모두가 끼어있는 만원 버스에서 내게만 한숨 쉬는 사람들.

보고서를 잘 써도 자기 관리하라는 직장 상사의 막말.

엄마에게 딸을 왜 저렇게 놔두냐는 이웃까지.     


남들이 툭 던진 행동은 내게 많은 버릇을 남겼다.

절대 밖에서 혼자 밥 먹지 않기.

옷 가게는 마른 친구를 동행해서 같이 가기.

버스에 승객이 많으면 다음 버스 기다리기.

이웃이 많을 때, 집 밖에 안 나가기….    

 

내게 남은 버릇 중 나를 위한 건 없다.

대체 나는,

나를,

얼마나,

눈치 주며 괴롭힌 걸까?


여전히 남 걱정이 많은 분이 있다면 제발 부탁드린다.

당사자가 먼저 묻기 전까지 조언하지 마세요. 

툭 하고 던진 말에, 나는 평생 푹 쓰러집니다.

이전 21화 죄송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