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가본드 Jun 01. 2022

나는 내가 언제 글쓰기를 그만둘지 알고 있다

 

몇몇 글에서 잠깐씩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저는 전기전자공학과를 나와서 연구원→IT개발자→뜬금없는 공무원, 이런 변태와도 같은 삶을 살아서 제대로 된 글쓰기 훈련을 받아 보지 못했고, 이러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니 저에게는 뭔가 '나의 것'을 만들려면 양질의 글들을 제 스스로 찾아보고 또 찾아보면서 좋은 글은 왜 좋은 글인지 혼자 궁리하고 터득하는 과정이 다른 분들보다 더 많이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브런치에서도 글벗들 페이지 방문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열람하는 탭은 <글쓰기 코치>탭이었습니다.


여전히 멀었지만 지금까지 혼자서 배운 것도 적지는 않았습니다. 글쓰기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치유의 기능, 사고 정리, 사고의 폭 키우기... 누가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느낌상 어쩐지 남의 글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고.


나중에는 저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억 속에 쌓인 상처들을 타자화해서 바라보며 치유하고 싶고, 고질적으로 산만한 사고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능력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만약 거기다 나이에 걸맞은 사고능력,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까지도 가질 수 있다면 그거 상상만 해도 멋질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할 수 있겠죠, 그 언제가 언제일지 모르니 아직은 꿈이지만요.


그런데, 처음에 글쓰기가 좋았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게 좀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제 경우는 '못해도 되니까'였습니다.


"왜 글쓰기인데요?"

"꼭 잘하지 못해도 되는 거라서요."


. 그랬어요. 누가 왜냐고 물으면  대답은 준비되어 있어요. 반드시 잘하지 못해도 되는   보고 싶었습니다. '일등을 해야 한다' '암만 못해도 중간 이상은 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저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걸 하나는  보고 싶었습니다. '하고, 즐겁고, '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글쓰기였습니다.


쓰고 또 쓰다가 나중에 보니 저도 모르게 늘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늘려고 쓰진 않습니다. 느는 게 싫다는 건 아니지만,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사실 하나가 저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해서요.


만약 언제고 제가 글쓰기를 기습적으로 덜컥 그만두는 때가 온다면, 정신 차려 보니 저도 모르게 저 자신에게 그걸 주문하고 있음을 알았을 그때가 될 겁니다. 꼭 잘하지 못해도 되는 그 하나의 사실이 비길 데 없이 매력적이었던 글쓰기마저 '잘해야만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면, 저에게는 글쓰기를 계속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되돌아보면 제가 뭔가 좋아해서 시작했다가 오래가지 못했던 것들에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게 왜 좋았는지 잊어버렸을 때 항상 그랬습니다. 좋을 때는 정신없이 헤롱헤롱거렸다가 나중에 버렸던 수많은 취미들이 그랬고, 어릴 때 했던 연애도 그랬습니다. 그냥 시작했는데, 그냥 좋았는데, 저도 모르게 언제부턴가 그냥이 아니게 된 거였죠.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잘하면 좋잖아?"라고는 묻지 말아 주세요. 이유는 이미 다 말씀드렸어요. 그보단 "이왕 하는 거, 오래 하면 더 좋잖아?"라고 물어 주세요. 한 살 두 살 먹어 갈수록 취미 찾기가 쉽지 않게 되는데, 모처럼 어렵게 찾은 취미를 또다시 그렇게 잃어버리기는 아까워요.


뭔가를 좋아하는 상태에 오래 머무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니, 처음에 그걸 좋아했던 이유가 뭐였는지를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으면서 그 하나를 꼭 붙들어야 한다는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글쓰기가 좋았던 이유는 저마다 다를 테니, 저는 하나만 말씀드릴 수 있었음 해요.


"작가님들, 우리 좋아하는 글쓰기 오래오래 해요"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