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에요. 배가본드예요. 어떨 땐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할 때가 있어요. 생업에 바빴거나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는 전혀 아니에요. 그냥 어디 멀리 가서 삘삘 싸돌아다니느라 그랬어요.
글의 힘은 참 신비로워요. 제가 먼저 써 내려가면 어느새 몇 발 앞질러 내려가고, 제가 다시 써 내려가며 다음 글을 연상하면 또 저보다 앞서서 제게 다짐과 용기 있는 실행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네요. 그렇게 쓰며 느끼고 배운 많은 생각들과 말의 힘, 글의 힘을 채워가며 성장한 시간들이 제겐 소중하고 감사함으로 가득해요.
전에도 썼듯 저의 주된 문제점 중 하나는 너무 조용하다는 거예요. '너무 말이 없다.' 저에 대해 가장 많이 들은 말이죠. 맞아요. 대부분의 상황에서 말하는 쪽보단 듣는 쪽을 택해요. 그런데 그 이유를 말한 적이 없네요.
첫째 이유. 허무해서요. 예전에 했던 말들, 그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참 덧없구나 싶어요. 세월 지나고 보면 '참 무의미했던 거 아닌가?' 늘 이런 식으로 한두 박자 늦게 깨달을 뿐 말하던 그때는 모르거든요. 자꾸 이러다 보니 지금 하는 말도 나중에 다시 보면 되게 덧없고 무의미해 보일지 모른다 싶어서요.
둘째 이유. 실행력이 떨어져서요. 말이 나오면 실천은 시간상 후에 있을 일이고 발화된 그 시점에서는 일단 하나의 정지 상태를 만들잖아요. 그러니까 뱉어 놓은 말이 많을수록 'not yet'에 멈춰 있는 어중간한 그 상태들도 함께 늘어나는데, 하지 않은 숙제가 점점 쌓이는 듯한 이 느낌을 짊어지고 있을 힘이 제겐 없어요.
셋째 이유. 아는 게 많지 않아서요. 알아야 할 말도 많아질 텐데 아는 게 별로 없으니 할 말도 없는 거죠. 많이 알면서도 입을 다무는 사람이라면 현명한 사람이겠지만 저의 경우는 그냥 모르니까 조용해질 수밖에 없어요. 요즘 같은 자기 PR 시대에 제 입으로 이걸 실토하자니 이거 되게 모양 빠지네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저 아닌 게 제가 되는 건 싫어요.
말고도 많은데,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거랑 같은 이유로 글쓰기도 별로 많이 하지 않아요. 꾸준함이 재능이 된다는데 그 꾸준함을 목표로 글을 매일 썼다면 어쩌면 저도 지금쯤 브런치 인기 작가가 되어 있었을까요? 전에는 그런 생각도 가끔은 들었지만 아마도 저의 정신승리 아니었을까 해요. '만약 그때 ○○했더라면...' 이건 그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또 제가 가정법 문장을 워낙 좋아하지 않아요.
브런치 1년 될 무렵. 그게 올봄이에요. 그때부터 발행 주기를 전보다 길게 가져갔죠. 내가 썼던 글들이 과연 남들에게도 의미 있는 글들이었을까, 무수한 글들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어쩌면 내가 쓰는 것들이 공해는 아닐까, 아주 나쁘게 말하면 쓰레기는 아닐까, 저에게 계속 물으면서요. 대부분의 작가님들과는 달리 저는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글쓰기도 사실상 처음 시작한 경우라서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도중에도 그걸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생각 하나가 찾아왔어요. 그런 시간이 있었던 게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했구나. 만약 제가 아침마다 알을 낳는 암탉처럼 술술 잘 쓰기만 했다면, 다른 분이라면 몰라도 저는... 형편없어졌을 것 같아요.
이게 어떤 느낌인지 운동으로 예를 든다면... 어떤 소년이 학창 시절 학업을 전폐하고 야구에 올인하던 때가 있었어요. 천부적 강견에 유난히 길었던 팔과 손가락 때문에 그 아이의 역할은 주로 투수였는데(가끔 다른 것일 때도 있었지만), 걔들은 손끝 감각이 아주 예민해요. 일상생활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공을 쥐고 점자를 읽듯 108개 실밥을 더듬죠. 몇 년 지나 소년은 팔을 크게 다쳐 공을 만질 수조차 없게 됐고, 아주 오랜 시간 지나 공을 다시 잡으니 너무 생경하더라는 거예요.
어떤 구종은 그립을 어떻게 잡는지, 어깨너머로 팔이 어떻게 넘어오는지, 릴리즈 포인트를 앞으로 최대한 끌고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을 쥔 손이 뒤에서 앞으로 나오는 동안 타자의 시선에서 그 손이 보이지 않도록 어떻게 감추는지(이 기술을 '디셉션'이라고 해요), 이 모든 걸 '어떻게 하는지'는 알아도 '내가 어떻게 했는지' 그게 기억에 없는 거죠. 그 상태로는 야구 못 해요.
전엔 어떻게 했다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하진 않았어요. 그냥 하다 보니 안 되던 게 되고 거기서 또 더 하다 보니 잘 된 거죠. 그런데 이제 그걸 생각하게 되고, 하나하나 어떻게 했는지 다 생각하고... 되돌아보니 그런 것들이 소년에겐 모든 걸 하나하나 생각을 거쳐야만 가능하게 해 준 그런 시간이었던 거죠. 그 야구 소년은 나중에 꿈을 접고 완전히 다른 길을 가긴 했지만 그때 뭔가 대단히 큰 인생 공부를 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띄엄띄엄 쓰니 저는 아직도 글쓰기 근육이 없어요. 늘 첫 글을 발행하는 느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깔끔하게 정리를 못해서 낑낑대고, 발행 누르는 게 어려워서 서랍은 쓰레기장이죠. 전형적인 초보의 모습이고 1년이면 이런 상태를 면할 만도 한데, 여전히 그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요. 저는 정확히 그 느낌을 원해요. 글을 처음 쓸 때의 기분, 어쩐지 키보드가 손끝에서 미끄덩한 느낌. 무슨 글을 써도 그 느낌을 계속 갖고 쓰고 싶어요. 설령 그런 생각 때문에 만년 초보를 면할 수 없더라도.
애초에 제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가 뭐였는지 세월이 가도 잊지 않고 싶어요. 못해도 되는 거라서. 마음껏 못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서. 기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글쓰기에 매력을 느낀 가장 큰 이유가 그거였어요. 글 쓰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세월 지나도 계속 처음의 그 크기로 느끼기를 원해요. 꾸준함은 익숙함을 낳고 처음의 어려움은 더 이상 어려움 아닌 게 되어서 제가 역설적으로 형편없어지기를 원하지 않아요.
저의 글은 예쁘지 않고, 무늬가 없고, 정교하지 못해요. 하지만 세월 지나 쓰고 싶은 글,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한 저는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분명 초보겠지만, 제가 나이를 먹을수록 또 다른 무엇이 분명 있을 거고 그게 뭘지 기다리고 기대하게 되니까요(그런데 잠깐만요. 작가는 어쩌면 나이 먹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닐까요).
저에게 글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 하나가 더 있어요. 저는 실제 직업은 따로 있지만 가끔 강연자의 역할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작가들 중에 강연자들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글쓰기와 말하기는 잘하면 같이 잘하고 못하면 같이 못한다고들 생각하는 게 보통이죠.
그런데 그 둘은 서로 다른 근육이 동작하는 일이에요. 기본적으로 강연이라는 행위는 강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지만 글쓰기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필요하죠. 강연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척'의 아우라를 고의로 뒤집어쓰면서까지 청중에 확신을 주어야 하고 때론 스테이지를 압도해 버리는 파괴력도 필요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척이라는 때를 벗겨 내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으니 그에겐 오히려 그 둘을 분리해야 하는 숙제가 추가되죠. 이렇게 되면 글쓰기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요. 이 둘을 한쪽이 늘면 다른 한쪽도 따라 느는 관계로 보는 많은 분들의 어렴풋한 생각이 저는 조금 아쉬워요.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로부터 '당신 겸손이 지나친 거 아니오?'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끔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겸손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던데요. 뭔가 월등한 성취를 이뤘거나 무슨 남다른 재주라도 가졌어야 겸손하거나 말거나 하는 거고, 저는 그렇게 선택적으로 겸손하고 말고를 고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겸손하고 싶어도 못해요. 그냥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을 뿐이죠. 자그마치 겸손씩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저는 겸손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 될 것 같아요.
여전히 저는 브런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작가보다 독자로 존재해요. 그러면서 글벗님들의 글솜씨에 자주 감탄하죠. 어떨 땐 그 감탄은 감탄으로 끝나지 않고 어쩌다 작가로서 존재할 때 묘한 어려움이 되어 다가오기도 해요. 하지만 글을 쓸 때마다 모든 것 하나하나에 다 힘이 드는 어려움이 기본값으로 존재하는, 항상 어느 정도는 괴로운 상태에 머물길 원해요. 그 상태로 한땀 한땀 뜨개질한 글 하나가 제 마음에 쏙 드는 순간은 삶 자체가 윤슬처럼 반짝이고, 쓸 때마다 그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니까요.
다음 글도, 다음다음 글도 그 느낌으로 쉽지 않게 쓸 거예요. 그리고 그 느낌으로 작가님들을 맞길 원해요. 곧 만나요. 이제 또 쓰기 시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