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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Apr 02. 2024

말더듬이, 글더듬이, 생각더듬이

어린이 배가본드는 말을 더듬었다. 무슨 이유인지 말을 입밖에 내는 게 어려웠다. "너는 왜 말을 더듬니?" "그그그그러게요 저저는 오오에왜왜 마마말을 더더더듬을까까요?" 늘 똑같은 이 상황에 점점 지쳐갔고, 나중엔 누가 이렇게 물어도 대답을 안 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자라면서 그런 모습은 저절로 사라졌고 이젠 언제 그랬냐는 듯 의외로 말 잘한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여기서 '의외로'라는 건 평소 내가 말을 하는 일이 거의 드물기 때문), 하지만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는 차분하게 말하는 게 여전히 어렵다. 상대가 화가 나 있는 상황, 또는 뭔가 오해를 받고 있어 억울한 상황일 땐 자꾸 했던 말을 또 하는 일이 잦고, 이 상황 자체가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빨라지는 등 오히려 내 쪽에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게 괜스레 뭔가 켕겨서 그러는 걸로 보이기 일쑤고 완전히 악순환이 되어 버린다. 어릴 적 말더듬이의 흔적은 평소에 눈에 띄진 않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도 않은 셈이다.


그때 왜 말을 더듬었을까? 내 경우는 내 말이 상대에게 가닿지 못할 거라는 강박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 말을 더듬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어쩌면 전달에 실패할지도 몰라' 이런 단순한 긴장감 수준이 아니라 이미 말하기에 실패한 상태로 말이 내 안에 영구히 감금된 상태였다. 상대방에게 닿지 못하는 상황을 무수히 겪다가 생겨 버린 동물적 감각. 이게 그때 내가 말을 더듬었던 이유다.

응 그러니까 말야, 내일은 해가 뜰 거라구 (식물적 감각의 예지력)

어른이 배가본드는 이젠 글에서 그러고 있다. 잘 쓰지 못할 거라는 확신으로 생각 속에만 글을 가두어 놓고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상태. 글을 쓰기도 전에 읽는 이에게 날아가 닿기에 이미 실패한 상태. 아예 쓰기도 전에 식물적 감각으로 이미 실패했음을 알아챈 상태. 어린 시절 말더듬이 상태에서 '말'을 '글'로만 바꾸면 정확히 지금의 나다. 한 마디로 나는, 글더듬이다.


필리핀에서 생활할 때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두 시간 수영을 하고 동네 마사지숍에서 지친 근육을 풀어주는 게 일과였는데, 거긴 우리처럼 실내수영장이 없어서(어딘가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 등은 시커멓게 타서 마치 가뭄에 말라버린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는데 거기서 등을 마사지하면 꼭 무슨 제면소에서 면 뽑는 것처럼 국수 가락이 줄줄 뽑혀 나오니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수영과 마사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데 결국 둘 다 포기 못했고 테라피스트가 등을 마사지하려 할 때면 수치심에 눈을 질끈 감았고 나도 모르게 잔근육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는데, 어느 순간 나는 비몽과 사몽의 경계에서 내가 지금 등에서 국수를 줄줄 뽑아내는 것처럼 글을 쓰면서 문장도 그렇게 뽑아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걸 못함을 한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테라피스트는 등을 통통 두드리며 말한다.


"Relax, sir." (힘 빼요)

"Y.... Ye... s" (끄응.. 부끄러우니깐 힘 빼기도 어렵네)

"Sir...? O di a pa yo?" (오디 아파요?)

"My feelings are really hurt." (마음이 되게 상처받았어)

"Why? Did you break up with somebody?" (왜? 누구랑 헤어졌어?)

"a ni e nom e?" (아니 이놈이?)


아니 난 지금 이렇게 등에서 국수 줄줄 뽑듯 문장도 그렇게 뽑아내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문에 마음이 아픈 건데 거기서 길게 설명하고 있을 만한 것도 아니라서 그냥 마음 아프다 하면 그러려니 하지 무슨 테라피스트가 말이 이리도 많아? 에잇!

나도 이렇게 국수 뽑듯 문장을 죽죽 뽑아내고 싶다고. 그러나 현실은 글더듬이 (에라이)

이러면 많은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글더듬이? 그러면 글을 써선 안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더 써야 한다. 이거 무슨 김밥 옆구리 나가는 소리 같지만, 나름 이유가 있다.


뭔가에 대해 내 생각이 제법 있는 줄 알았는데 글로 담아내고 보면 늘 구멍 투성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사실과 사실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 그리고 사실과 생각 사이... 구멍 아닌 곳이 없다. 내 글쓰기는 거의 그 구멍을 메꾸는 작업이고, 내가 뭔가를 안다는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느끼는 일이다. 내 사고 체계가 실제로는 얼마나 형편없는지 스스로 깨닫는 일이고, 그 진실을 똑바로 쳐다보며 마주 앉는 일이다.


이 상황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글쓰기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쓰고 나서야 발견하는 구멍들은 쓰지 않았더라면 영영 모르고 넘어갔을 것들이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느릿느릿 생각을 완성해 나가는 건 기한에 쫓겨 엄청 급하게 써야 하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나 혼자만 보는 과정이고, 최종 결과물만 그럴싸하다면 그런 과정은 얼마든지 있어도 괜찮고,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 디테일에 약하고 뭐든 느린 나한테는 꼭 필요하다.


출간이나 이름 알리기 정도를 빼면 사람이 글쓰기로 얻는 거의 모든 건 글쓰기의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다. 내가 출간에 별 관심이 없는데도 글쓰기를 하는 이유도 그거고, AI가 사람보다 글쓰기를 잘하게 되는 날이 나중에 오더라도 AI에게 글쓰기를 맡겨선 안된다고 굳게 믿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전에 했던 말을 빼고 또 빼니 남는 게 없어서일 수도 있고, 계속 쓰다 보면 앞 글보다는 잘 써야 하고 그다음 글은 또 그보단 잘 써야 하고 그 다음다음 글은 또 최소한 그보단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마치 무슨 밭고랑의 잡초처럼 저절로 쑥쑥 올라와서 갈수록 지치고 결국엔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수렴할 수도 있고.


이런 생각에 잡아먹히면 결과는 뻔하다. 이름하여 '생각 더듬이'. 말더듬이는 과거형이고 글더듬이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미래의 생각 더듬이 그것만은 되고 싶지 않다. 연주 최고난도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멋들어지게 소화해 내진 못해도 그거에 애쓰고 좌절하는 그 과정 자체가 마냥 즐거운 연주자가 되어 보는 게 글쓰기라면, 잘 쓰지 못한다고 글쓰기를 해선 안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 음치 가수 이재수도 있었는데 브런치에도 글더듬이 작가 한 명쯤 있으면 어때.




어린 시절 나를 괴롭혔던 말 더듬기, 그때랑 똑같은 감정을 나는 지금 다시 떨쳐내려 하고 있다. 말을 하고 싶은데 말하기도 전에 이미 실패한 상태로 입 안에 갇혀 있는 말. 글을 쓰고 싶은데 쓰기도 하기 전에 이미 실패한 상태로 내 안에 갇혀 있는 '글 같은 것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의 단점이나 상황적 제약이 언제나 단점이나 제약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는 걸. 어떤 단점은 오히려 그걸 집요하게 극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사람을 가둬놓고 어떻게든 답을 찾게끔 강요하는데, 외통수에 몰려 강제당한 그 답이 바로 더할 나위 없는 정답일 때가 있다는 걸.


원래는 글을 잘 쓰지 못해서 생겨난 생각이지만, 이 생각은 그간 글을 써 오며 전보다는 힘을 얻었다. 거북이 속도로 오랜 시간 더듬더듬거리면서 부실한 생각을 땜질+땜질+땜질해서 덧대고 기워낸 글들. 그렇게 쓰는 글을 완성도 높다고 좋아해 주신 분들도 의외로 꽤 계셨다. 그런 식으로 느릿느릿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다 시간이 품고 있는 힘이 얹힌다면 나중엔 제법 나다운 뭔가가 나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 오래오래 쓰면서 어쩌다 실수로라도 제대로 된 글 하나가 안 나오기도 어려운 일이니.


말더듬이 글더듬이 둘 다로 고생해 본 나는 브런치에 없으면 안된다. '저런 사람도 쓰는데 내가 왜 못 해!'를 만들 수 있는 케이스니까. 단지 숨만 쉬어도 남들에게는 희망이 되는 존재라면 그건 복이다(그러니깐 작가님들께서 절 좀 칭찬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렇다면, 보잘것없는 실력이라도 충분히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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