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포털 메인행! 브작가의 로망이로다. 브작가 지원할 정도면 글쓰기엔 전부터 자부심이 있었을 터, 브작가 되곤 자부심→브부심 되어 자존감 뿜뿜인데 거기다 포털 대문글 선정이라?! 황홀하도다.
그런데 큰일이로군. 이젠 다음 포털로 가지 못하면 실패한 글처럼 느껴지는도다. 그리하여 많은 브작가들은 포털 가는 방법을 궁금해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공통된 경험으로 이제는 많은 것들이 익히 알려져 있으니, 이것이 곧 브런술 되시것따.
제목의 'ㅋ'은 깜찍한 어그로이다. 사실 필자는 이날까지 인터넷상에서 초성체를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이 초성체를 쓰면 전혀 불편하게 느끼지 않지만 이상하게 내가 쓰긴 싫다. 내가 쓰자니 요거 무슨 포크로 삑삑 긁는 거 같고, 어떨 땐 낫으로 확 등쳐먹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전례 없이 'ㅋ'했다고 브런술을 몰라서 포털 못 가 본 사람들 약올릴 의도도 없으며, 그들의 등맛도 전혀 궁금하지 않다.
진짜로 작정하고 골아먹을 요량이면 요따구로 안 한다. 그럴 거면 작가 프로필 들어가서 [제안하기] 삑 누르고 "안녕하세요 작가님? 브런치에 올려 주시는 작품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글에는 깊은 사유와 진한 감동이 있어 오늘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지요이요이용용 죽겠죠 저 배가본드입니다 작가님 메롱 :P" 했겠지.
촐랑촐랑 경박하고 살짝 거만해 보이는 이 어그로에 버럭 빡오른다면 그 마음 잠깐만 내려놓아 주시길 바란다. 모든 브작가들이 브런술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포털 메인글 선정이 대단히 뛰어난 사람임을 브런치가 인정해서도 아니며, 필자도 포털 메인행을 여러 차례 경험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운전면허 2종 보통 필기(실기 말고 필기)에서 무려 6번 연속 낙방한 전설적 기록을 가진 놈이다(자랑이다 흐).
전직 프로그래머인 필자는, 컴퓨터가 사람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면 그 속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을지 추정하는 습관이 있다. 메인행의 영광을 안았던 글들에 항상 엇비슷한 단어들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고, 그 글들에 최근 한 달간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를 추려 보니 이렇다.
김밥, 짜장면, 라면, 술안주, 포켓몬, 포켓몬빵, 디저트, 요리, 소풍, 캠핑, 도시락, 미식가, 명품, 부부싸움, 시어머니, 어머니, 엄마, 처제, 해외 생활(+다수의 국가명)
브런치 직원이 몇 명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매일 수천 개의 글을 읽는 건 불가능하니, 인공지능이 1차로 추리면 사람이 최종 검토하는 게 아닐까 한다. 이게 맞다면 일단 인공지능의 선택을 받으면 포털행 확률은 급상승할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대작이라도 아예 사람한테 판정받아 보지도 못하고 묻히고 만다.
그러면 이제, 브런술을 실습해 보자!
[응용 사례 - 1]
미식가도 울면서 집에 갈 추억의 엄마표 김밥
나쁘지 않은데, 좀 약하다. 필자라면 화끈하게 이렇게 하겠다. 엣헴.
[응용 사례 - 2]
미식가 취향 저격! 김밥에 짜장면에 라면에 디저트로는 포켓몬빵을 곁들인 그 맛은 외로운 해외 생활에서 엄마의 맛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시어머니도 처제도 함께 열광하며 부부싸움도 한 방에 멈추게 하는 명품 요리로, 가족 캠핑용 먹거리로도 아이들 소풍 도시락으로도 아빠 술안주로도 좋~습니다.
어때, 안 어때?
자, 포털에 걸렸다. 조회수 떡상. 무슨 선거 개표실황 같다. F5가 날아가도록 온종일 재로드 신공이다. 길에서도 통계를 본다. 월간 데이터 사용량이 한도를 초과했다. 허그덩, 브런치 통계는 데이터 잡아먹는 괴물이구나. 기구를 타고 두둥실 올라갔다 내려온다. 구독자 수 그대로. 라이킷 그대로. 강아지는 자다 일어나서 묻는다.
다음 글을 준비한다. 닦고+조이고+기름 친다. 올린다. 꽝이다. 야마가 돈다. 또 다음 글을 준비한다. 음음 시어머니, 그냥 어머니, 술안주, 또 뭐지... 근데 안 되면 어쩌지? 다 쓰기도 전에 그 생각부터 머릿속을 파고 든다. 이번 것은 포털행일까, 꽝일까?
이제는 선택이다. 브런술의 달인이 될 것인가, 내 글을 쓸 것인가? 일단 브런술 달인의 길. 짜릿짜릿하다. 포털 가는 것도 좋지만 올려 놓고 어떻게 되나 기다리는 스릴도 제법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하나. 몇만 단위 조회수가 거의 재방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구독자도 거의 그대로이고, 쥐똥만큼 늘어도 아주 높은 확률로 허수다. 그렇게 들어온 몇만 명의 독자들은 10초 후 글쓴이가 누구였는지도 기억 못할 것이다. 엄청 애썼는데 남는 게 없다. 피로도도 상당하다.
브런치가 점점 노잼이 되어 간다. 그리고 구독자가 100 정도를 돌파하면 브런치의 마케팅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브런술을 써도 포털행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짐을 체감하면, 이젠 정말 브런치만큼 천하에 의미 없는 일도 없어 보인다. 에잇 더러운 브런치 퉤퉤~!! 잠깐이나마 화끈하게 즐거웠고 이제 그만 이별을 고(go)하는 바이다 바이(bye).
어느 쪽에 가치를 더 두느냐에 따라 선택은 다르겠지만, 글쓰기 오래 못하는 그 하나가 너무 싫었다. 시작하자마자 포털맛 보던 그땐 헤롱헤롱했는데, 나중에 보니 남는 거라곤 극심한 피로도와 순한 맛 관종 한 마리가 전부였다. 완벽하게 무의미한 이 피로감을 오래 견딜 자신이 정말로 없었다.
결국 글쓰기를 오래 좋아하려면 브런술을 빨리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글을 쓰는 작가님을 찾아다니며 마음맞춤하면서 글쓰기를 계속하는 동력이 되길 원했다. 나에게 울림을 주는 주파수를 가진 작가님을 내 손으로 찾고, 그분께도 나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입맞춤은 같은 사람을 상대로도 그때그때 다른 맛이 난다. 맥주거품맛일 때도 있고, 딸기치약맛일 때도 있고, 풍선껌맛일 때도 있고, 마시멜로를 소금에 찍은 맛일 때도 있다. 그런데 이게 마음맞춤도 그렇다. 똑같은 사람과도 어느 글에서 조우해서 마음맞춤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새롭다. 그렇게 마음맞춤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그 느낌은 분광기 스펙트럼처럼 다채로워진다. 느릿느릿 커지고 느릿느릿 넓어지는 그 느낌이 좋아서 쓰고 또 쓴다. 뭔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데, 지치지를 않는다.
지금의 나에게 브런술이란 치트키로 브런치 알고리즘을 폭격하는 게 아니라, 결이 마음에 드는 작가를 찾아서 마음맞춤을 하는 것이 되어 있다. 무의미한 몇만의 조회수보다도 한 명의 글벗이, 그 한 명의 작품들이, 그 한 명과의 마음맞춤이 이제 내겐 훨씬 소중하다.
이렇게 되니, 오늘은 뭘 읽어 볼까 고를 때도 브런술 냄새가 킁킁 나면 거르고 양피지를 묶어 놓은 해진 끈처럼 생긴 제목을 오히려 더 눌러 보게 되었다. 브런치가 작가들의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글쓰기의 효용만 집중 강조되는 느낌이 있지만, 정작 브런치의 좋은 점이 글쓰는 데만 있는 게 아님을 느낀 후론 내 손으로 명글을 직접 찾아다니는 재미도 더해졌다.
애초에 브런치가 나의 뭘 보고 작가 활동을 허락해 주었는지로 돌아가고 싶다. 나의 색깔, 나의 이야기를 꼭 붙들면 구독자 수와 조회 수는 알아서 늘어남을 이제 더는 잊지 않고 싶다. 너무 늦게 알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고, 언젠가 듣고 그땐 무심코 지나쳤던 박막례 할머니의 말씀을 이제는 꼭 붙들려고 한다.
"거, 남한테 장단 맞추지 말으. 북치고, 장구치고,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은 그 장단에 맞추고 자픈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남의 박자? 그거 ♂같은 것이여. 니 박자가 맞는 박자여. 알것으?"
- 박막례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