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승인 3일째 되던 날. 직장에서 한 분이 어떻게 지내냐고 사내 메신저로 묻는다. 보통 이럴 땐 최근에 있었던 일로 대답을 하게 되고, 나도 "브런치 작가 되어서 새 취미를 찾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우와! 우와!"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셔서, 아 브런치 아시는구나 싶어서 "브런치 하세요?"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그럼요 주말에 늦잠 자고 카페 가서 먹어요"다. 순간 나는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아니 이런 망할, 앞으로는 어디 가서 브런치 한다고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이분은 낫다. 생각해 보면 오래전부터 나한테 누가 "여가시간 뭐하고 보내?"라고 물었을 때 내가 뭔가 대답하면 돌아오는 말은 거의 "그거 돈 되냐?"였다. 내가 "아뇨 그렇진 않아요"라 말하면, 결국 돌아오는 말은 "돈도 안 되는 걸 왜?"이다. 그러면 나는 그 '왜?'를 설명해서 납득시켜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거 돈 된다고 백색 구라라도 쳐야 하나? 아니, 이렇게 되면 "얼마 버는데?" 이게 될 거고 거짓말에도 이자가 붙으니 그렇게 할 수도 없군.
글쓰기로 취미가 바뀌어 있는 지금도 취미가 주제가 되면 그런 대화의 흐름은 전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돈 되는 것' '안 되는 것'으로 나누어 보는 그 사람들 기준에서는 나의 예전 취미나 새 취미나 그게 그거니까.
직업 외 여가시간은 완전히 그 사람의 것이고 뭘 하든 그 사람 자유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일하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을 나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지,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그걸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1997년에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IMF 구제금융 사건이 터지고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 무렵 나온 CF에서 "여러분! 부우~자 되세요!" 이 카피는 그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해묵은 인생고민에 대한 정답을 너무도 간결하고 명쾌하게 하나로 정리해 주었고, 그 결과 취미고 나발이고 부우자 되기 위한 게 아니면 그냥 모조리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말았다. 꼭 CF 광고 카피 그 하나 때문이라고만 보긴 어렵더라도, 그 광고 이전엔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거 돈 되냐?" (순한 맛)
"아니 그런 걸 왜 하는 거야?" (약간 매운맛)
"야, 금쪽 같은 시간에 그거 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매운맛)
내가 뭔가에 꽂혀 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보통 이 중 하나인데, 모두 돈 되는 것 말고는 헛짓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취미냐 그조차도 하나의 스펙에 가깝다. 직업적인 시간 외에도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생산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홧쇼나부루(fashionable)한 현대인이다.
내 취미들? 대체로 생산적이지 않다. 야구표? 비싸다. 수상레저? 낚시? 돈 까먹는 귀신이다. 아예 토쟁이가 되지 않는 한 프로야구에서 어디가 이긴다고 돈 버는 것도 아니고, 수상 경기 대회 나가서 상금 탈 것도 아니고, 낚시해서 큰 고기 잡아다가 어디 팔 것도 아니다. 모두 그들의 관점에서는 철저히 비생산적이고, 헛짓거리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왜 취미가 무려 생산적이기까지 해야 할까? 연예인이나 프로선수들이 돈을 많이 버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돈을 많이 쓴다는 얘기다. 인생이 얼마나 노잼이면 그런 시장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곳에 돈을 써 가며 살까? 재미가 없으면 이 숨 막히는 현대인의 삶을 어떻게 버틸까? 현대인에게 재미란 그냥 재미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고, 내게 무슨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거나 사회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취미가 아니라고 그렇게까지 무가치한 것으로 폄훼당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그런 견해에서는 단지 재미 수준에 머무르는 나의 이런 취미들은 그야말로 백해무익하고 오로지 주식, 코인 이런 것들이 우월하고 바람직한 취미로 보일 것이지만, 내겐 그들의 논리도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성격상 논쟁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아무 말 안 하지만 속으로는 늘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돈이 목적이면 그게 취미입니까? 투잡이지."
브런치 작가라는 취미를 주변에 비밀로 하는 건 어딘가 켕기는 데가 있어서가 전혀 아니다. '돈도 안 되는 걸 취미로 갖는 이유'를 남들에게 설명해서 납득시켜야 하는 그 상황이 싫은 것이다. 작가면 그냥 작가지 브런치 작가는 또 뭐냐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 따위는 알 턱도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이게 설명으로 이해를 구할 주제 자체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에 그냥 글벗들 작품 하나를 더 읽겠다. 아니, 하나만 읽겠냐. 열 개는 감상할 수 있군.
확실히, 나는 요즘 트렌드에 맞는 놈은 아니다. "여러분 부우~자 되세요!" 그거 이후론 그냥 돈 되는 것 말고는 다 쓸데없는 짓이고, 요즘은 셋만 모이면 주식, 코인으로 화제가 옮겨가는데 난 통 아는 게 없으니 입이 달라붙어 버린다. 하지만 나에겐 취미라는 게 사람들과 화제를 공유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고, 돈벌이 수단은 더더욱 아니고, 스펙 만들기도 아니다. 사회적인 유행 따라가려고 나를 바꿀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고, 무엇보다 취미도 유행을 탄다는 그 자체가 나에겐 낯설다.
자본주의적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전혀 못마땅해하지 않는다. 그분들이 그걸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분들은 그걸로 된 거지. 다만 그분들 기준에서 비생산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을 뭔가 인생을 낭비한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자신들의 소일거리 방식에 무슨 상위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식의 훈계는 안 했으면 좋겠다. 꼭 무슨 여진족이 쳐들어와서 털리는 느낌 나서 내가 아주 그냥 꽥 돌아가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