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가본드 Nov 11. 2022

저는 재주가 없는 사람인뎁쇼?

나는 재주가 없다. 뭘 잘하느냐고 누가 물을 때는 곤혹스럽다. 그런 거 없다고 사실대로 말하자니 자기 PR 시대에 이거 너무 없어 보일 것 같고, 뭐라도 억지로 말하자니 그야말로 가짜가 되는 느낌이 싫다. "다른 건 몰라도 난 이것만은 누구보다 잘해!" 이렇게 말할 게 없다고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있진 않지만, 누군가의 물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은 가끔 불편하다.


벼룩도 뛰는 재주는 있는 판에 사람이 재주 하나가 없다니! 이거 비참해서 뭐라도 없나 박박 털어 보니 하나가 있긴 하다. 재주 없음을 아는 재주다. 한심해서 듣기가 힘들다는 말이 벌써부터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재능을 찾아보긴 했냐?' '없으면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에라이,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재주 하나 없단 말이냐?' 하지만 이것도 아무나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깐 재주라고 박박 우기며 정신승리하는 중이다(에잇 에잇).


TV를 켠다. 한 축구선수의 계약 뉴스가 나온다. 저 사람은 공을 차는 희귀한 재주 하나로 50억 계약도 하지만 나레기의 이 해괴한 재주는 50억 원은커녕 50원에도 살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나마 하나 있는 재주가 고작 이런 것인가? 아니 이런 미네랄,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거냐 대체.. %♬@#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나는 역으로 딱히 이렇다 할 재주가 없었던 덕분에 뭐를 해도 '나, 반드시 이걸로 성공해야만 해' 이게 되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하다가도 여러 가지 이유로 안되겠다 싶으면 뭐든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만약 내게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면 좋은 싫든 그것만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할 때 한으로 남게 될 수밖에 없었을 테니. 재주 없으면 세상에서 남들의 눈길을 끌 수는 없겠지만, 나에게 그건 적어도 한까지는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다른 이들의 특별한 재능이 멋져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나라면?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어중간한 재능이라도 있었더라면 사람들 앞에 나서서 뭐라도 되는 양 칠렐레 팔렐레 떠들고 있을 나를 상상하니 영 꼴 보기 싫다. 나는 그런 면에서는 나를 안다. '어, 상당히 재능 있네?' 하고 남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면 분명 나는 촐랑촐랑거리다 한순간에 새될 놈이다. 내가 삶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인 평온함을 그렇게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 깜냥이 모자란 이에게 넘침은 괴로움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재능은 없는 게 낫다.


비록 남들 앞에서 자랑 삼을 만한 무엇이 없어도 그 덕분에 뭔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내겐 나쁘지 않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재능이나 재주는 나중에는 하나의 결점이 되고 노인이 되어 가며 이 결점은 점점 두드러진다는 생트 뵈브의 말대로라면 뚜렷한 재주가 없다는 건 나에겐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누구나 하나씩 선물 받고 태어나는데 신이 나 하나만 깜박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졌지만, 신은 어쩌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딱 그만큼만 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주변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딘가에 머물다 떠난 후에도 사람들이 기억해 주고, 브런치에서도 환영받는 글쟁이가 되기를 포기한 건 아니다. 다만 그것들이 뛰어난 재주가 있어야 가능한 건지 의문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어떤 야구선수가 상위 10%의 타격 능력, 상위 10%의 수비 능력, 상위 10%의 주력이 있다면 그 선수는 사실 0.1%의 뛰어난 선수다. 그렇다면 자신을 타자화해서 바라보는 성찰 능력 상위 10%,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 상위 10%,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능력 상위 10%,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할 줄 아는 능력 상위 10%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만 분의 일(0.01%) 아닐까.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이런 사람 아닐까. 무엇에서든 타고난 재능 없어도 노력만으로 10%까지는 될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게 뚜렷한 재능을 갖지 못한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딱히... 특별한 재주가 없어요


이 말이 주는 편안함을 안다. 뭔가 가뿐하다. 기분 좋게 비어 있는 느낌이 좋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재주가 없음을 아는 재주야말로 가장 큰 축복인지도 모른다. 재주가 없다는 사실은 남다른 재주보다 더 소중한 생각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남다른 재주는 없어도 혼자 노는 걸 좋아하고 이것저것 호기심도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그렇게 뚜렷한 재주가 없음을 아는 재주도 분명히 재주는 재주일 텐데 이것마저도 재주니까 차라리 없는 게 나은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이전 17화 누군가의 화이트, 누군가의 블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