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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Jan 26. 2024

그 말이 왜 명언인지 모르겠어요

명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은 좋은 말이긴 하지만, 일단 어떤 말이 '명언'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순간 그 말의 타당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져 버리니까. 오히려 명언이라고 브랜드화된 말을 더 조심하고 싶다. 어떨 땐 그다지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데 자고로 이런 말이 있다는 둥, 옛말에 틀린 말 하나도 없다는 둥,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영 개운치 못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정말? 그 말 때문에 지렁이를 발견하는 족족 밟아 봤는데 실제로는 100% 터져 죽는다는 걸 알고는 내 마음에서 그 말은 버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알겠고 거기서 '지렁이'가 핵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는데, 왜 하필 지렁이일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이 말 때문에 장사도 못 지내고 죽어 간 무수한 지렁이들은 누가 책임지냔 말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실패해도 계속 노력하면 결국 이룬다는 정도의 뜻 같은데, 실제로는 남녀 사이에서 (이 말을 숭배하는 이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까여도 될 때까지 들이대면 결국 넘어오게 되어 있다'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그런데 왜 도끼 입장만 생각할까. 열 번 찍히는 나무는 무슨 죄일까. 사람을 열 번 찍으면 죽는다. 나무는 좋고 싫고를 선택할 수 없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자기감정밖에 모르지 말고 자기한테 열 번씩이나 찍히는 사람의 고역도 좀 알아주면 어디가 덧나냔 mario?

나무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지만, '넘어간다'라는 말도 상당히 별로다.

몇 년 전, 어떤 분과 블로그 댓글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분이었고, '성공은 최고의 복수다'라는 말을 거의 좌우명처럼 삼고 계셨다. 그렇게 된 사정은 모른다.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남다른 분이셨던 걸 생각하면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에 비해 타인에게 저평가되고 있다고 느껴서는 아닐까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성취동기로 승화시키겠다는 취지의 말씀임을 모르지 않았다. 꼭 합격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를 자신에게 하나라도 더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성공이 최고의 복수라니, 이미 연락 끊어진 사람들한테 나중에 나 합격했다고 연락해서 소식이라도 보내려는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성공담이 입에서 입으로 알음알음 전해질 거라 생각하셨을까?

정말?

어느 쪽이 됐든, 성공으로 복수한다는 생각은 다른 이들이 내 삶을 지켜보리란 생각을 전제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게 복수가 될까? 연봉, 사는 집, 취미생활의 질, 만나는 이성, 결혼 등 평가질 당할 일은 그 뒤에도 얼마든지 있는데 그 모든 게 만인의 코를 납작하게 할 정도라면 모를까, 타인의 시선에서 하나라도 그렇지 않다면 평생 똑같은 상황의 무한루프일 텐데.


자그마치 복수까지 결심하게 만들 정도로 누군가를 대놓고 무시했던 사람이라면 자기가 무시했던 사람이 제아무리 성공해도 "저 사람 원래 저렇지 않은 거 내가 다 아는데"까지는 아니더라도 "오오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저런 인걸을 몰라보다니!" 이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누군가에 대한 비하의 시선이 시작되면 한국사회 정서 특성상 어떤 성공을 해도 그 사람이 원하는 수준의 보복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파놉티콘의 감옥'이 생각난다. 원형으로 배열된 감방들, 그리고 중앙 탑에 감시자가 들어가서 모든 죄수들의 감방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 심지어 감시탑에 사람이 없어도 죄수들은 언제나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줄곧 통제된 행동 방식을 보인다.

파놉티콘 감옥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꼭 성공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이유 중에 나를 저평가한 누군가에게 보복하려는 이유가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의 삶을 통째로 거대한 파놉티콘 감옥으로 만들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공해야 하는 첫째 이유가 그게 되면 그 자체로 지치고, 내 행복을 위해 별 도움도 안 되고, 아예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생이 되지 않는 한 남들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동의해 주는 것도 아니라면 결국 남들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부풀려야 하는 악순환만 되진 않을까.


가까운 분이 아니어서 이런 생각까지 말씀드릴 수 없었고, 그저 잘 되시길 바란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 아니다. 어딘가에서는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고 하는데 내겐 그것도 아니다. 양쪽 다 원망이 전제된 거고 결국 날 갉아먹을 뿐이다. 인생은 짧다. 좋은 생각만 하며 살기에도, 사랑하는 이에게만 모든 시간을 쏟아도 부족하다. 내겐 고작 복수 따위를 목표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어차피 성공해도 복수 못 한다.


얼마 후 시험을 포기한 그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도 반성해 봐야겠다. 뭔가를 원할 때 그 갈망의 이유를 나도 모르게 엉뚱한 곳에서 찾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뭔가를 이루고도 행복할 수 없는 파놉티콘 감옥을 만들어 놓고 나를 잡아 가둔 적은 없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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