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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May 13. 2022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시대'의 불편한 진실

어느 경제 유튜버가 한 유명한 말이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우리 주변을 보면 전자책 발간, 콘텐츠 마케팅, 주식, 코인...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다. 무엇을 하든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말이 마뜩잖은 것은, 그 유튜버가 어떤 뜻을 의도했든 다수에게는 이것이 속된 표현으로 Dog나 Cow나 큰돈을 쉽게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환상으로 직결된다는 데 있다.


Dog와 Cow

이 말에는 오묘한 함정이 숨어 있다. 사실은 돈 벌기가 가장 쉬워진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선택지가 가장 다양해졌을 뿐이다. 이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말이다. 핵심은 개인의 입장에서 뭐가 됐든 대박 나서 부우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냐는 건데,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고 단지 그 대박 레퍼토리만 다양해졌을 뿐이다.


 유튜버가 근거로 드는  스마트 스토어이다. 초기 자본이 들지 않고 진입장벽이 없어 시작하기 쉽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만약 성공까지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하지 못했던 무수한 사례들과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어느 분야든 블루오션이 생기고 대박 치는 사람이 나오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뛰어들어 순식간에 레드오션화 되고, 파이(pie)의 크기가 무한 팽창하지 않는 이상 개인의 입장에서 큰돈을 벌 가능성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 초기 대박 사례를 보고 뛰어들어 비슷한 정도의 성공을 일구려면 몇 배, 몇십 배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시간에 비례해서 높아진다. 누군가의 사례 주워듣고 혹해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다른 창을 하나 열고 <이것만 하면>, <무조건 성공>, <무조건 대박>등으로 키워드를 주며 검색을 돌리니, 이렇다.

1. 이것만 알면 다이어트 무조건 성공!
2. 이 영상만 보면 대기업 입사는 무조건 합격!
3. 천기누설! 이 동영상 하나면 서울대 간다
4. 이것만 알면 당신은 무조건 이상형과 만난다
5. 이것만 기억하면 반년 내에 공무원 시험 초단기 합격!
6. 꿈★은 이루어진다! 10분짜리 영상으로 누구나 주식으로 월 천만 원!
7. 꿀팁 대방출! 이것만 알면 공부가 재밌어진다!
8. 이것 하나면 40살에 은퇴해서 평생 골프 치고 살 수 있다
9. 10분만 투자하세요 - 자영업자로 대박 나는 비법, 동영상 하나로 깔끔 정리!

이젠 어느 분야든 성공하려면 동영상 하나면 충분한 시대가 됐다. 아, 대한민국이라 쓰고 지상낙원이라 읽는 그 이름. 찬가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긍정 과잉의 폐해는 크게 둘이다. 첫째, 단순하지 않은 것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말한다는 점. 둘째,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평생 애쓰는 사람들을 모두 맹꽁이로 만들어 버리고 그들의 안 보이는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점.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두 번째이다. 현실은 공무원 시험에 오랫동안 합격하지 못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있고, 학자금 대출 못 갚아서 사회생활을 시작도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 된 사람이 넘쳐나고, 폐업 신고하는 자영업자의 수는 전국에서 하루에만 몇인가. 그런데 어느 분야든 그렇게 10분 정도의 동영상 하나만 들으면 되는 거면, 이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분투는 다 무엇이었을까?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한다. 호랑이한테 물려 갔다가 살아온 사람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렸는데도 죽은 사람들의 말은 다 어디로 갔을까? 비행기가 추락해서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사람이 "비행기가 떨어져도 열심히 기도하면 안 죽는다!"라고 강변했던 그때와 무엇이 다를까?


콘텐츠 공급자들이 서로 경쟁하듯 자극적 제목으로 흥미를 끌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의 수요자들이 바라는 것은 딱 둘이기 때문이다. 첫째, 성공하고 싶다. 둘째, 남들보다 쉽게 성공하고 싶다.


나는 지금 "노력하고, 노오력하고, 노오오력하라" 고작 이런 말이나 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콘텐츠 제공자들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길 바랄 뿐이다. 쉬운 것은 쉽게, 쉽지 않은 것은 쉽지 않게 말하길 바랄 뿐이다. 코로나 팬데믹도 그렇지만 원유 파동 때도, 또 IMF 외환위기 때도, 어느 환난의 시기에도 대박 치는 사람은 늘 있었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그때가 단군 이래 돈 벌기 가장 쉬운 시대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뭐든 마음만 먹으면 돼. 너도 이것만 하면 돼' 너도나도 앞다투어 이런 프레임으로 무수히 많은 세상 사람들의 노력과 고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긍정 과잉에 따르는 피로감 따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냥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렇게 너도나도 목청을 높이는 와중에 그 많은 세상 사람들의 성실함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그것만은 견뎌내기가 쉽지 않다.




'하면 된다, 무조건 된다!' 가는 곳마다 귀가 따가울 정도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된다' 아닐까? 긍정이 암만 좋아도 이런 식의 긍정 과잉은 사람들을 더 노력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더욱 자책하게만 만들 뿐이고, 남는 것은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먹어 가는 좋아요와 구독뿐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단군왕검의 홍익인간의 정신을 받들고자 콘텐츠를 만든 것도 아니었고 애초에 그건 관심조차 없었으니,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실패한 게 없는 것이다.


분명히 긍정은 좋은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신세한탄만 하면 천 년 지나도 여전히 제자리일 테니. 다만 과거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면 아예 기회도 없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여도 충분하지 않을까. 패배의식이 개인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이런 식의 긍정 과잉도 도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돈을 버는 가짓수가 늘어났다는 이유로 '지금이 단군 이래 돈 벌기 가장 쉬운 시대!'라고 주장하려면 '같은 이유로 단군 이래 돈 날리기 가장 쉬운 시대이기도 하다'라는 말도 빼먹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설마 원래는 '라면 된다'인데 '하면 된다'가 된 건 아니겠지?


<글 - 배가본드     그림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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