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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준생 Jun 25. 2024

지옥에서 온 회피형 뚜벅이

걷기의 회피학 上

예전에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우울하면 어쩔 줄 몰랐다. 이 우울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한없이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우울하면 몸이 무거워지는데, 그 상태로 누워서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씩 가라앉았다. 그러다 조금 움직일 수 있는 기분이 들면 다시 떠오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나아지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고는 했다. 그런데 이 방법은 그렇게 좋지 않다. 우울함을 느끼는 건 좋으나 중요한 건 그게 언제 끝날 지 모른다. 몇 시간 만에 나아지면 다행이지만 한 달 내내 그렇다면 계속 마음이 해소되지 않는 채로 사람을 만나고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종종 실수를 하고, 그런 나 자신에게 더 우울해지고… 끝없는 우울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이 굴레를 벗어나 보고자 시도했던 방법이 ‘걷기’다. 갑자기 생각해 낸 것치고 나에게 뜬금없는 방법은 아니었다. 왜냐면 나는 어릴 때부터 곧잘 걸어 다니는 일명 ‘지옥에서 온 뚜벅이’였기 때문이다. 집에 차가 없기도 했고 부모님이 맞벌이 셔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대중교통을 혼자 타야 했던 탓이기도 했다. 걷기는 나에게 일상이었고 그만큼 내 생활을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내 우울과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걷기를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쓴 시기는 고등학생 때부터로 기억한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학원까지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다. 학교에서 집 근처 삼거리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삼거리에서 학원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꼭 삼거리에서 학원까지 가는 버스는 다른 주변 학교의 하교 시간과 완벽히 겹쳐서 만원이었다. 이 끔찍한 회피형 인간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걷기를 택했다. 중요한 건 삼거리에서 학원까지 도보로 1시간은 걸린다는 점이다. 기억상 한 시간이었고, 아마 더 걸렸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그냥 만원 버스를 타기 싫어서 걸었지만 이게 웬 걸, 걸을수록 스트레스가 풀리지 뭔가. 그것도 노래를 들으며 걸으니 하루종일 하던 고민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걸 깨닫고 난 뒤 굳이 만원 버스가 아니더라도 버스를 타지 않고 학원까지 걸어갔다. 선생님께 왜 매번 늦냐고 타박을 듣긴 했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다고 자부한다.


지금도 사실 약속이 없으면 편도 1시간은 그냥 걷는다. 1시간이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스트레스 풀기 딱 좋다. 그 이상 넘어가면 힘들고 더 적게 걸으면 모자라다. 간혹 대중교통비가 아까워서 걷느냐는 (안타까움이 섞인) 물음이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건 걷기의 훌륭함을 모르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질문일 뿐이니까. 물론 내가 한 푼 한 푼이 아까운 자취생인 건 맞지만 대중교통비라는 필수생활비까지 아끼지 않는다(그렇게 살면 누구보다 부모님이 굉장히 싫어하실 것이다). 다만 나는 걷기가 좋을 뿐이다. 그걸로 내 스트레스와 우울을 털어낸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 부스러기를 흘린 것처럼 나도 걸으면서 내 고민과 우울을 뚜벅뚜벅 흘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다 다시 우울이 쌓이면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걷는다. 길거리에, 바람 속에, 나뭇잎 그림자 안에 내 우울을 털어놓기 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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