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한 학기 수업은 대개 15주이다. 3월에 시작하면 늦어도 6월 중순에는 봄 학기가 끝나고 7월 중에는 성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학기가 끝나면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하거나 알바를 하지만, 선생님들은 그때부터 성적 산출과 온갖 학기 중에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 두었던 서류 작업이 시작된다. 매년 다가오는 성과평가를 위한 논문과 연구도 이때 집중된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학생들 리포트와 시험지, 과제물들을 꼼꼼히 들여다 보고 절대로 치우치지 않는 평가를 하려 애쓴다. 그래서 동일한 과제나 시험의 채점은 되도록이면 하루에 끝내도록 노력하는데, 이는 평가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여러 이유로 평가의 기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화장실도 참고, 전화도 꺼놓고, 연구실 문도 잠그고, 불도 끄고, 나를 '부재중'으로 만들어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객관식처럼 정답이 없고 평가 기준만 제시된 주관적인 평가일 경우 특히 그렇다.
나는, 아니 거의 다른 선생님들도 첫 수업이 시작되면 수업 일수를 역산하기 시작하는데, "아. 이제 첫 주 수업했으니까 14주 있으면 방학이다."를 점심 식당에서 만난 선생님들끼리 인사처럼 이야기한다. 갓 입대한 이등병의 전역일수 달력이 다르듯 대학의 시간도 선생님들의 세계에서는 방학을 기준으로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예전 모 디자인 공모전에서 '군인들만을 위한 전역 캘린더' 디자인이 꽤 큰 상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 달력은 한 달, 일 년의 개념이 아니라 입대일부터 시작하여 제대일을 기준으로 역산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는 점이 아이디어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들었다.
"선생님들은 방학에 놀면서 월급 받으니까 넘 좋겠다 모두들. 그치?"라고 아직도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다. 선생님들은 수업 중에 잠깐의 사적인 전화도 받을 수 없고, 머리 식히려 잠깐 커피 마시러 나갈 수도 없고, 아파서 결강하면 반드시 보강해야 하고, 나라에서 정한 공휴일 수업도 반드시 보강해야 하고, 여행이라도 가려하면 방학 제일 비싼 성수기에 가야 하면서도 북적대는 통에 쉬지도 못하고,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수업 준비는 상상을 초월하고, 게다가 서류 작업도 말 그대로 산더미다. 학기 중에 연월차? 어림없는 얘기다. 그래서, 방학은 선생님들에게는 기회이다.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기회, 머리를 쉴 수 있는 기회, 무너진 관계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회,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보약의 힘을 얻는 기회.......
강의에서 해방되어 그 잠깐의 쉼을 즐길 때면 가끔 딸이 물어본다.
"엄마, 오늘은 학교 안 가?"
엄마가 안 나가고 집에 있어서 좋다는 뜻인지, 엄마가 있으니까 내 맘대로 할 자유가 제한되는 게 거시기하다는 얘긴지는 절대 안 물어보는 게 원칙.
"아, 학교 가기 싫어."
"그래도 돼? 네가 선생인데?"
자양강장제 광고에 나오는 선생님 딸과 엄마의 대화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와! 이 광고 진짜 리얼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