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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18. 2024

로브그리예표 기기묘묘 환상특급

알랭 로브그리예, <진>

오! 내 사랑 진, 당신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 보리스


세계사에서 예전에 “어느 시역자"란 표제를 달고 나온 로브그리예 책이 있었다 거기에 "진느"로 나온 짧은 장편이 제 번역된 것 같다


문지에서 나온 “밀회의 집”에 '미궁에서' 인지 '미로에서' 인지하는 중편이 실려 있는데 대충 분위기가 비슷한데, 집중에서 후다닥 읽기 좋은, 기기묘묘한 뒷맛을 가진 책


로브그리예의 미로는 출구가 매번 똑같은데도 결국 빠져나왔단 기억이 미로 자체의 복잡성을 만끽하는 게 아니라 미로가 그려진 종이 자체를 성급하게 구겨버렸기 때문이라는 다소 한심한(?) 사정이 있어서 오랫동안 뒷맛이 개운치 못한 그런 독서였다


새로 번역된 <진>을 읽으니 예전 시절이 떠오른다


<누보로망을 위하여>의 열의에 찬 문장들과 누보로망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던 시절의 기억들 젊음, 문학, 새로움, 이런 것들  


당최 문학주의자가 아니라면 이런 소설을 쓰기 힘들다

머뭇거림의 불안하고 정확하지 않은 정서를 최대한 정확하고 간결하게 기술하는 동시에 그 부대 효과로서 행위자와 가해자가 일치하고, 관찰자와 작가의 교대가 이루어지고, 같은 장소를 방문 할 때마다 조금씩 변주되는 디테일과 마주하고, 한편 독자는 지나치게 극사실주의적인 묘사의 반복을 통해 도리어 엉뚱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모든 게 마법 같은 시선과 집요함 그리고 추리소설이란 모던한 형식에 근거한 그 만의 자족적 기계적인 세계이다, 착한 기계.

멀쩡한 누아르가 반복되며 강렬한 살인 사건이 등장하고 또 어른 같은 아이, 아이 같은 어른, 기계 같은 인간, 인간 같은 마네킹이 등장한다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주인공이 사랑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착한 기계의 사랑.


무엇보다 맥거핀으로 작동한 비밀조직의 행태를 곁눈으로 훔쳐보게 하는데 우리가 확인한 실체는 우스꽝스러운 카프카적 관료제의 냄새를 풍기는 무력감과 단절감과 현기증 가득한 상징의 세계들이다

카프카보단 다소 약하지만 그 또한 유머를 아는 작가인 것!


로브그리예표 환상 특급에 타고 싶다면 추천한다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웃기게 재밌고 살벌한 “고무지우개” 역시 좀 새롭게 번역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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