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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유 JOYU Oct 13. 2022

승무원이 웹소설을 씁니다.

더이상 앵무새로 살 수는 없어서



잘 쓴 글은 두괄식이라니 결론부터 쓰면 나는 승무원이면서 웹소설 작가이다. 작가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도 되나 싶지만, 작품을 출간했고 인세를 벌어 세금을 냈으니 국세청에서 인정해준 작가는 맞는 셈이다.


주변에서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들 신기한 듯 이런저런 것을 묻는데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왜 글을 쓰게 되었어?" 


왜 글을 쓰게 되었는가. 학창 시절에 백일장 입상 근처도 가 본 적이 없고, 하다 못해 학급 뒤 환경미화에 글이 붙어본 적도 없다. 늘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긴 했지만 책상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교실을 휘저으면 뛰어다니던 망아지에 가까웠다. 가장 열심히 쓴 글이라면 매년 꽉꽉 채우던 일기장 정도인데 삶이 팍팍할 때 읽어보면 웃음 배터리를 한 번에 완충할 수 있다.


출판사랑 계약서를 쓰고 집에 들어가던 날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작밍아웃(작가 커밍아웃)을 했다. 비행하던 코흘리개가 갑자기 책을 출시할 거라며 그간의 대서사를 말하자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다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그래 네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기는 하더라. 대학생 때도 지금도 항상 책을 보더니." 


엄마한테 아빠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 했더니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던 것이 무색하게 아빠가 퇴근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래 놓고는 귓속말로 "당신 내가 비밀 말해줄까? 조이 유가 글쎄 작가 작가가 되었대!"라고 소곤대는 것을 보며,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과 부부의 우정에 대해 큰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항공사에 입사하기 전, 취미 왕을 넘어서 취미 노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을 정도로 취미 생황을 소화하기 위해 홍삼을 들이붓던 시절이 이었다. 플라워 클래스, 쿠킹 클래스, 탁구, 볼링, 수영, k pop댄스 등등 온갖 것들을 하면서 틈틈이 원데이 클래스들을 들었다. 그중 우연히 <웹소설 작가 되기>라는 두 시간 정도 하는 강연을 듣게 되었다.


웹소설의 전신이라는 인터넷 소설을 중고등학교 내내 열렬히 읽기는 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웹소설을 읽은 적이 한번 도 없던 내가 이 클래스를 듣게 된 것은 영원한 절친인 동생 때문이었다. 웹소설에 내가 투자한 돈만 얼마인지 아냐며 소리치던 동생은 실제로 아침의 시작과 하루의 끝을 웹소설로 할 정도의 열렬한 독자이다. 그런 동생 때문에 읽지는 않아도 항상 주어 담은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강좌의 선택이 우연만은 아니었다.


두 시간 동안 알찬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 바로 웹소설을 썼으면 좋겠지만, 백수가 과로한다는 엄마의 말답게 글 쓸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돌아와서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떠오른 글감이 있어서 노트에 대충 와르르 써놓고 블랙핑크 노래에 몸을 맡기러 갔다.




그  뒤로 모든 것은 잊고 승무원이 되어서 광활한 하늘과 전 세계 공항을 누비는 삶을 살고 있었다. 뜬금이기는 하지만 승무원은 실로 장점이 엄청 많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티브이를 보다가 세계 어느 곳에서 유명한 연예인들이 현지 식당에서 밥 먹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기 가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승무원은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바로 실천할 수 있다. 오늘은 독일에서 슈 바이 학센을 사 먹고 내일은 영국에서 피시 앤 칩스를 사 먹는다. 겨울이 싫다면 동남아로 비행을 가면 되고, 겨울이 좋다면 아일랜드로 떠나면 된다. 지난주는 겨울이었지만 이번 주는 여름이고 다음 주는 봄을 사는 춘추전국 시대의 삶 사는 자가 바로 승무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항상 경험을 중시 여기는 데 승무원으로 살면서 견문이 넓어진다는 말을 깊이 공감한다. 어느 나라를 가도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타고, 식당에 들어가서 현지 음식을 먹고 로마의 콜로세움을 스페인의 까사 바 요뜨를 연남동 골목처럼 누비는 것. 이렇게 살다 보니 전 세계 어느 곳에 승무원을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 그냥 허풍 같지 않다.


이 직업을 이리도 애정 하지만, 입사 후 반년이 지나자 큰 회의감에 부딪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승무원은 안전이 중요한 직업인 만큼 본인의 생각보다는 주어진 매뉴얼을 잘 따라는 것이 우선 시 되었다. 승객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앵무새처럼 수백 번 반복해서 말하는 치킨, 램, 파스타에 지쳐갔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매일이 어딘가 불편했다.


주변 친구들은 회사를 다니며 기회 안도 내고 프로젝트도 성사시키며 성장해 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발전하지 않는 인간은 도태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위기에 놓여있었다.


불안 속 답을 찾지 못할 때 한 크루가 그런 말을 해줬다. "비행은 달콤하지만, 절대로 살아지는 대로 살아서는 안돼. 살아지는 대로 살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 너의 것을 찾아야 해."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고, 그대로 집에 들어와 옷장 아래 묻어둔 '영감 노트'를 꺼내 들었다. 거기가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열개의 에피소드가 준비되자마자 누구나 소설을 올릴 수 있다는 네이버 챌린지에 당차게 글을 올렸다. 열 편 안에 구독자가 터지지 않으면 이미 망한 소설이니 갖다 버리라고 했는데 내 소설은 삼일 만에 망한 글이 되었다. 


열 손가락이 채 다 안 되는 구독자들만이 보는 피지 못한 글 이래도 나는 꾸준히 매주 세편씩 소설을 업로드했다. 한 명이라도 봐준다면 감사히 완결까지 글을 써내겠다는 포부가 있었고 한 명보다 구독자는 많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행복했다. 생각을 한다 과정 자체가 그간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었고 조금씩 늘어가는 구독자들이 응원이 돼주었다.


일을 하면서 한편당 5000자가 넘는 글을 매주 세 편씩 올리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레이오버 호텔에 박혀서 글만 쓸 때도 많았고, 비행기로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혹은 비행 중 틈틈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휴재 없이 계속해 글을 올렸다. 


한 달에 120시간을 넘기는 폭주하는 스케줄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연재가 늦어지면 "작가님 기다리고 있어요. "라는 댓글에 비행 뒤에도 노트북 앞에 기꺼이 앉았다. 꾸준함에 장사가 없는 걸까. 연재한 지 몇 개월이 지난 어느 하루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조회수와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처음에는 잘 못 본 지 알고 핸드폰을 껐다 켰는데도 확실히 내 글이었다.



살펴보니 주간 인기글 1위에 내 소설이 올라가 있었다. 그간의 노력을 알아준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밤 비행에 녹초가 된 것도 까먹고 유니폼을 입고 집안을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이때부터 진작에 포기했어야 할 소설이 고공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네이버 챌린지 메인을 장식하는 작품이 되었다.



첫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감사하게도 몇몇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완결을 하고, 나서 출판을 하고 싶다던 의사를 존중해주신 좋은 출판사와 함께 론칭할 수 있었다. 보통 출판사와 계약하면 중도에 글을 챌린지에서 내리는 데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완결까지 쓰고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단순한 이유였는데 이 작품은 돈을 위해서 쓴 게 아니고 오로지 마냥 부족한 이 글을 끝까지 함께해주신 독자님께 바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반년의 시간들과 백 편이 넘는 글들로 소설의 매듭을 지었다. 이어 몇 개월 뒤 출판사의 도움으로 감사하게 카카오페이지에 론칭하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나리타 랜딩 하는 날 웹소설이 공개되었다. 샤워하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얼마나 새로고침을 눌렀는지, 먹는 것조차 잊고 그저 행복했다.


카카오 기다무, 선물함, 배너 특전으로 출시되어 수백만 뷰를 자랑하는 작품들에 비하면 마냥 소소한 동네 맛집 같은 작품이지만 귀하디 귀한 나의 첫 작이었다. 다시 일이 하고 싶어지는 원동력이 되었고, 매슬로우가 말하던 자아실현 욕구가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이 지금도 글을 쓰게 한다.


독자님들은 이미 까마득하게 잊으셨겠지만, 그때 써주신 댓글들이 너무 소중해 지금도 한 번씩 꺼내서 본다. 비행으로 마음이 힘든 날 그때 받은 사랑들을 밤하늘에 가득 늘여다 놓고서 포근히 잠든다. 작가 게을러 다음 작품을 아직까지 스무 편 밖에 쓰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부디 다시 독자님들 곁에 한번 더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또다시 텍스트가 마려워진 요즘은 브런치에 글을 쓴다. 감히 위로와 기쁨을 드릴 수 있을까 싶지만 읽기 위해 내어 주시는 시간이 헛되지 않게 내 삶의 조각을 잘 담아보고자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 적힌 댓글에 오늘도 마음이 온전하다.





"작가님 덕에 그간 행복했어요. 작가님도 항상 행복하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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