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유 JOYU Sep 24. 2022

당신은 협박을 당해 비행기를 탑승하고 있습니까?

- 어린 소녀들을 지키기 위한, 국제 출입국 관리소의 노력.


예전에 암스테르담 비행을 갈 때가 키가 2m 가까이 되는 구척장신의 기장님과 함께 한 적이 있다. 밝고 유쾌하신 더치 기장님이셨는데, 그날 기장님과 나의 수트케이스에 문제가 생겨서 둘이 같이 대기를 하게 되었다. 평소에 기장실 분들과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는 편인데, 둘만이 남게 되니 기다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 끝에 기장님의 와이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내분은 필리핀 사람인데 자신의 반토막밖에 되지 않는다며 사진을 보여주는 데 애정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러면서 말하길, 둘이 덩치 차이가 많이 나서 인지 사람들의 오해를 살 때도 종종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한국 사람으로서 외항사에 일하면서 외국인 친구들이 나를 자신보다 어리게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다양한 대화가 오가던 중에 기장님이 겪은 한 해프닝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기장님은 와이프랑 여름휴가를 맞아 어느 한 유럽 국가를 입국하기 위해 출입국 사무소를 통과하던 중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여권을 내밀었는데 담당 직원이 둘을 번갈아가며 유심히 쳐다보더라는 것이었다. 직원은 아내분께 가까이 오라고 하자,  와이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다가섰다. 직원이 아내에게 물었다.


"Are you traveling with you own will?"

"당신은 본인의 의지로 지금 비행하고 있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아내가 당황하자, 직원이 침착하고 차분하게 다시 되물었다. 


"Are you travling because you wanted to?"

"당신이 원해서 비행을 하고 있습니까?"


그제야 이 상황을 이해한 듯, 기장이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 이 사람 내 아내 입니..."다라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직원은 기장님의 말을 자랐다.


"제가 지금 신사 분께 질문한 게 아닙니다. 아내분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상황에 기장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직원은 아내에게 물었다. 


"겁먹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도 됩니다. 여기는 경찰도 많고 당신을 보호해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당신을 해치지 않게 우리가 반드시 당신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여기는 안전한 곳입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의지로 비행을 하고 있습니까?"


단호하지만 따뜻한 눈빛이었다고 했다. 놀랬던 필리핀 아내도 천천히 상황을 이해하고, 남편과 휴가를 보내는 중이라고 잘 설명했다고 한다. 그제야 직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둘을 통과시켜주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난처한 에피소드라 땀이 나지만 기장님은 그럼에도 그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물론 특정 국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편견일 수도 있고, 역 차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지켜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우리 역시도 많은 브리핑을 듣게 된다. 예를 들어 한 동남아의 도시의 비행은 이상하게도 유독 "birth on flight" (비행기 위에서의 출산)이 많다. 그래서 비행 회의할 때, 보딩 할 때부터 유독 임산부를 세심하게 체크하고, 임신 증명서 (출산 주수 확인서)를 꼼꼼하게 보라는 지침이 내려온다. 왜 그런가 하고 들어 보니, 그 나라 여성들은 대부분 중동 국가에서 유모나 가정부로 많이 고용된다고 한다. 그렇게 간 집에서 몇몇은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것도 모잘라 이 사실이 들키면 그 집에서 잘리고 본국으로 돌려보내진 다는 것이었다.


병원 갈 돈도 없고, 종교적 이유로 아이를 없애지도 못하는 이 여성들은 그렇게 쉬쉬하며 몰래 비행에 탑승한다. 병원에 한번 가지도 못해 아이가 몇 개월 인지도 모르고 본인 상태도 모르고 비행기에 타다 보니 갑자기 출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했다. 참담하고, 먹먹하다.




아직도 전 세계로 수많은 어린 소녀들이 팔려나가고 있다. 나의 비행기에 혹은 내가 지나치는 이 수많은 공항들의 사람들 틈 사이에, 이런 소녀들이 날 스쳐가고 있는 걸까. 모자를 쓰고 인사를 건네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이  아이는 어떤 길을 지나쳐 왔을까. 




내 물음에 그저 배시시 웃는 아이의 눈망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전 06화 나를 유일하게 울린 승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