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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유 JOYU Oct 12. 2022

나를 유일하게 울린 승객.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공연이 막이 올랐다.


소문난 울보이지만 이상하게 비행 때는 울어본 적이 없다. 주변 동료들을 보면 각자의 억울하거나 화나는 일로 눈물을 쏟아낸 적이 있다고들 한다. 반면에 모든 비행이 평안했던 것도 억울한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도 나는 희한하게 비행에서는 눈물이 안 난다. 아무래도 강인한 K - 장녀이기 때문이어서 그런가.


강철의 장녀에게도 눈물의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할머니'이다. 정정하시던  할머니들이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할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코끝이 금세 뜨거워진다. 첫째 손녀로 태어나 유독 사랑을 더 독차지해서 그런지, 혹은 할머니까지 함께 대가족에서 자라서 인지 유달리 할머니들에게 마음이 간다. 그래서인지 비행 때도 할머니들에게는 순둥이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딱 달라붙어있다.


그런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에게 믿을 수 없게 치매가 찾아왔다. 가장 가까운 기억부터 지워진다더니 몇 년 전 추석 때 뵌 할머니가 나를 처음 본다는 듯 "네가 누구더라?" 물으셨다. 당황하지 않은 척 웃으며, "나 할머니 사랑 조이유잖잖아~"하고 넘기니 할머니가 "아~ 그렇지?"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미어지는 마음을 눌러두지 못하고 밤에 한강길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할머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다 기억하면 되니까. 할머니가 나를 잊어도 나를 사랑하는 거는 변하지 않으니까 하나도 마음 아프지 않다고 되뇌었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설 수 있었다.



유럽의 어느 비행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내 점프시트 (승무원 자리) 뒤로 앙상하게 마르시고도 점잖으신 한 할아버지가 타셨다. 기력이 많이 약해 보이시는 게 마음에 걸려 탑승 때부터 눈에 밟혔다. 다행히 서비스도 내 구역에 계셔서 잘 드시는 것들은 좀 더 챙겨드리고 종종 이야기도 나누면서 챙겨드리고 있었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가방을 뒤적이시길래 가보니 면세에서 사 온 담배가 사라지셨다는 것이다. 보딩 때부터 봤는데, 할아버지 손에는 분명히 담배가 들려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혹여나 진짜 물건이 없어졌을까 봐 승무원들이 주변을 다 찾아봤지만 역시나 담배는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설명을 드리자 그런가 하시다가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담배였던 물건이 나중에는 공책이, 그다음에는 술병으로 자꾸 바뀌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치매 증상 같았다.


점입가경으로 가방을 뒤적이시면서 건조한 손이 온갖 영수증에 베어 피가 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피가 나는지도 모르시는지 여전히 가방만 몇 시간을 계속 반복해 뒤적일 뿐이셨다. 속상한 마음에 할아버지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는데 일면식도 없는 할아버지의 가족이 원망스러웠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이 아픈 할아버지를 어쩌자고 홀로 비행기에 태웠을 까.


할아버지 응급처치를 마치고 다른 동료들에게 빠르게 알렸고, 계속 번갈아가면서 할아버지를 챙기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젊고 건강한 사람들도 체력이 부치는 이 비행에 할아버지가 온전하실 리가 만무했다. 비행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상태가 안 좋아 시기 시작했고 폭풍의 전야처럼 크루들 사이에 긴장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기어코 일이 터졌다.




랜딩을 시작하는 기장님의 기내방송이 나와서 캐빈에 나가려는데 주변이 시끄러웠다. 가까이 가보니 할아버지와 우리 몇몇의 크루가 대치 중이었다. 무슨 상황인가 하니 랜딩을 준비해야는데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지를 않으신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자리에 앉으면 악마가 눈을 앗아간다며 할아버지는 의자를 잡고 완강히 버티셨다. 치매의 증상 중 하나인 망상이 기어이 비행의 막바지에 고개를 내민 것이다.


사무장부터 다들 와서 할아버지를 온갖 말로 설득해도 할아버지는 앉지 않겠다고 버텼다. 힘으로 밀어붙여서 앉히면 되지 않냐 할 수 있지만, 이 앙상한 할아버지를 힘을 밀어붙였다는 Death on Board(비행 중 사망)을 준비해야 할 판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그저 랜딩인 아닌 '승객 모두의 안전한 랜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할아버지를 자력으로 앉게 해야 했다.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흐르고, 기장실에서도 상황이 심각하니 계속 전화가 왔다. 설득과 협박과 회유가 번갈아가며 대화에 올랐지만 겁에 질린 할아버지의 귓가에는 어느 것도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게 발을 구르는데 한 여성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할아버지를 불렀다.


"오래만이야~! 그간 잘 지냈어? 와 우리가 여기서 다 만나네?" 하며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다들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데 승객분이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 우리 앉아서 대화 좀 나누자. 그간 어떻게 지낸 거야?" 하면서 말하는데 그제야 이 연극의 막이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승객들 하나 둘이 일어나서 공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가 빨리 오래! 같이 앉자" "우리 고등학교 동창 아닌가! 와 여기 앉아봐 " 하며 각자 아빠와 함께 여행 온 딸,  직장 동료, 동네 친구 등등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를 에워싸며 그를 자신의 옆자리로 불렀다. 우리가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드린 것도 아닌데 그렇게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할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동참했다. 어디든 앉기면 하면 되는 거냐고 물으며 승객들이 너도 나도 자리를 비워내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왜인지 모르게 눈앞이 뿌예졌다. 아무리 이를 꽉 깨물어봐도 자꾸만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승객들은 태연하게 공연을 이어가는 데 나는 바보처럼 이 연극에 끼지 못하고 애꿎은 주먹만 폈다 쥐었다 하며 밀려오는 파도를 삼켜보려 했다.


승객들 앞에서 차마 울 수 없어 비행기 구석으로 얼굴을 돌렸다. 고개를 젖히고 입술이 파래지게 다 물어보는데 이미 빨개진 눈가를 멈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 할머니가 길을 잃으셔서 혼자 계세요" 새벽에 걸려온 전화에 아빠의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는 이야기가 귓가에 고요히 맴돌았다. 다행히 가까이 사는 고모가 할머니를 모셔왔지만, 멀리 사는 어머니가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고 공원에 앉아있다는 말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을 아버지의 어깨가 왜 인지 눈앞에 아른했다.




그렇게 아름답게 공연이 막을 내렸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할아버지는 활주로가 거의 닫힐 지경이 될 때까지 승무원들과 실랑이를 이어간 끝에 다행히도 비즈니스 앞자리에 꾸역꾸역 앉힐 수 있었다. 그마저도 할아버지의 안전이 걱정되어서 구척 장신의 남승무원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바닥에 앉아서 랜딩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어젯밤 비행을 가는데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 아무래도 할머니가 이번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최대한 빨리 들어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먹먹한 마음을 애써 외면한 채 서비스를 마치고 불 꺼진 기내를 지나는데 자그마한 할머니가 복도를 걷다가 힘에 부치시는지 내 손을 가만히 잡았다. 자리까지 모셔다 드리자 연신 고맙다며 내 손등을 두드리는 할머니의 손등에 얼굴을 파묻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다.



할머니, 할머니가 매년 봄마다 산에서 쑥 잔뜩 캐서 쑥개떡 만들어줬잖아. 내가 떡 잘 안 먹는데 그거는 진짜 잘 먹는 거 알지? 내년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온 동네 쑥이 엄청 필 거래.  나 휴가 내고 갈 테니까 우리 같이 쑥 한가득 캐는 거야. 그러니까 딱 내년 봄까지만. 그때까지만 함께해줘. 내가 더는 할머니 욕심 안 내고 할어버지 한테 양보할게. 



딱 한 계절만 더. 그렇게 우리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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