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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유 JOYU Oct 28. 2022

코로나 때 용케 안 잘리셨네요?

코 시국에서 살아남은 승무원은


처음 만난 분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질문 아닌 질문을 받았다.


"코로나 때 용케 안 잘리셨네요?"


어색해서 나온 말인 것을 알아 그의 말에 악의가 없음을 이해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 때 이런 식의 이야기는 이미 무뎌졌다고 해야 할까. 


회사에서 얼마 전 마스크를 벗고 비행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뉴스에서 연일 말하던 엔데믹이 드디어 오긴 하는 건가 싶다. 


코로나 때 힘들지 않았던 사람이 어딨었겠냐만 항공계는 가장 직격타를 맞은 곳 중 하나다. 하늘 보더가 막히고 공항들이 문을 닫으면서 자연스럽게 하늘을 누비는 우리도 땅에 내려와 있어야 했다. 뉴스에서도 코로나도 해고된 승무원들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고, 텅 빈 공항도 자주 등장했다. 카페, 병원 등등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승무원인 것을 알면 "요즘 승무원 힘들다면서요?"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비행은 하냐는 둥, 돈 못 벌어서 어떻게 하냐는 등의 많은 걱정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우리 회사는 코로나를 빨리 이겨내서 일 년이 채 안되어서 다시 예전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물론 승객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적었지만, 비행기는 계속 하늘을 날았고 우리 역시 쉴 틈 없이 다시 캐리어를 끌었다.



코로나 때 승무원으로 일해서 좋은 점도 있었다. 전 세계의 내놓으라는 관광지들이 텅 비어서 롯데월드 눈치싸움에 성공한 듯 마음껏 독차지할 수 있었다. 코시국에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봤었는데 한산한 이젤트발트에서 나 홀로 리정혁 스폿을 독차지하며 즐길 수 있었다. 그 외에 트레비 분수 앞 독사진이라던가, 까사 바 요뜨 앞에서 인생 샷이 나올 때까지 맘껏 찍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런 사진을 sns에 올리 때마다 친구들이 "우리는 갇혀있는데 너는 여행하고 진짜 행복하겠다."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물론 행복했고 그 순간을 누구보다 즐겼지만 원래 sns란 인간의 행복한 단면 만을 올리는 곳이라는 말답게 그 뒤로 버텨내야 하는 혹독한 시간들이 있었다.



방호복에 마스크에 고글을 끼고 하는 비행은 익숙해지지 못하고 늘 답답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매 비행에 코로나 걸린 환자는 나타났고, 사람들은 승무원들을 겁내기 시작했다. 항상 누구를 만나도 조심스러웠고, 우리가 방문하는 곳들에서 우리는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속에서도 여전히 비행은 계속되었는데, 각 나라마다 원하는 어플, 백신, PCR, 여권 등등을 맞추기 위해 스케줄을 수 없이 바뀌어갔다. 이 브리핑실에서 저 브리핑으로 옮겨 다니는 일이 허다했고, 코로나 양성이 뜬 승무원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쉬는 날에도 회사의 출근해달라는 부탁이 수시로 들어왔다.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각 나라마다의 승무원을 대하는 방식이 다 다른데 이때 원래 내가 아끼던 도시에 대한 마음이 떠나게 되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애정 하던 호주의 한 도시가 있었는데, 코로나 때 유독 승무원을 힘들게 했다. 코로나가 겁이 나고 자국민이 안전이 중요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비행기에 그 도시가 찍힐 때면 한숨부터 나왔다.


비행 전 PCR은 기본에 피를 뽑아갔고 만 이틀을 가두었으며 그 도시에 랜딩 해서도 균이 나온다며 비행기 문을 못 열게 해서 두세 시간씩 대기를 시켰다. 공항에 나와서도 코를 찔러댔고, 의자에 앉으면 코로나가 묻는다며 힐 신고 밤새 날아온 우리를 네 시간도 넘게 공항에 세워두었다. 


바깥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공항에 들어가지 못하게 빗방울 아래에 서있으며,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들어간 자가격리 호텔에서도 던져주는 밥을 먹으며 버텨야 했다. 비행 스케줄에 따라 창살 없는 이 감옥에서 며칠씩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크루들이 우울증에 시달리자 회사에서 우울증 방지 수칙 공문이 내려오는 일도 생겼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은 참아낼 수 있었다. 진짜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동료들이 우리를 떠나가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 해고된 승무원이 어디 한둘이겠냐만, 모든 항공사가 어쩔 수 없이 크루들을 잘라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코로나 때 살아남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다고 해서 남겨진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He is not here anymore. (그 사람은 더 이상 여기에 없어)"


매 비행 때마다 마치 유행어라도 되는 듯 되풀이되는 문장이었다. 칼바람이 분다고 말해주는 일기예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기습으로 불어오는 매정한 현실에 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해고의 칼날이 휩쓸고 갈 때마다 핸드폰을 열면 "언니 나 연락받았어..."라고 쏟아지는 카톡에 숨이 막혀 핸드폰을 꺼버렸다. 회사가 야속했고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이 잔인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평생 해보지 못한 화투도 손에 쥐어봤고, 입술만 대도 붉어지는 술을 한병 가까이 비워내 봤지만 떠난 친구들의 빈자리를 쉽사리 채워지지 않았다. 그저 버티고, 이겨내고, 참아내던 시간이었다. 


몇 바퀴의 해고의 바람을 이겨내고도 잘 버텨준 나의 단짝은 결국 마지막 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새벽, 울리지 않았어야 할 핸드폰에 친구의 이름을 떴을 때 고개를 떨궜다.


"나 연락받았어..."


차마 집에 못 있어서 슬리퍼 신고 눈길을 뛰어나온 친구와 전화를 부여잡고 밤새 그렇게 눈이 시리도록.






어느새 코로나가 끝을 보이고 다시 비행기는 가득 차고 있다. 회사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수순에 따른 듯 나는 승진하게 되었다. 그렇게 용케 잘리지도 않은 이 승무원은 기어이 승진을 거머쥔 독한 애가 되었다. 승진을 축하한다며 보내주는 꽃다발과 선물들을 이 쌓인 책상을 보며 행복했냐고 물으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선배님 진짜 빨리 승진하신 거 아니에요? 너무 좋으시겠어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신입 후배의 말에 고요히 웃었다. 처음 나가보는 레이오버에 신이 나서 같이 놀러 나가자는 후배를 보며,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를 보는 것 같아 마냥 어여뻤다. 비즈니스에 불러 커피를 타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선배님은 누구랑 제일 친하세요'라는 질문에 속으로 떠난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돌잡이 일 때 뇌수막염을 알았다. 어린아이가 커다란 주삿바늘을 이겨내지 못해 손등에 커다란 흉터가 남았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흉 진 아기의 작은 손등을 부여잡고 밤마다 계란 반죽을 붙이며 흉을 가라앉히기 위해 밤을 새웠다. 그 민간요법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붉은 산수유를 따온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의 노력이 닿았는지 손등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금은 나는 언제 아팠냐는 듯 튼튼하게 자랐지만 손등 아주 끝자락에 아주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일 흉이 남아있다.



코로나의 끝이 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 대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잊혀질 것이다. 우리 모두 다시 즐겁게 비행을 하며 코로나가 존재라도 했냐는 듯 공항과 하늘을 누비겠지만 마음 어딘가 그 손등의 작은 흉터처럼 흔은 지워지지 않고 남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카톡을 열어보니 떠난 친구의 생일이라고 알림이 떠있었다. 잘 지내냐는 말로 시작해 써본 카톡을 이모티콘으로 화려하게 꾸며봐도 왜인지 자꾸만 무거워 보인다. 이 연락이 친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괜히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켜서 너를 힘들게 할까 손가락이 머뭇댄다.




결국 전송을 누르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조용히 폰을 덮었다.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잘 지내. 최근에 승진도 했잖아. 야 승진했다고 일이 쉬운 거는 아니더라, 가끔 이코미가 그리워. 진짜라니까? 그때 우리 자주 갔던 맛집 거기 사장님 바뀌었어. 그 맛이 아니래두? 이제 너 없어서 나 고스톱 안치잖아. 나는 너 없이 패를 하나도 못 보는데 내가 어떻게 쳐. 새로운 신입은 어떠냐고? 우리 이제 고인물이야. MZ세대 친구들이 얼마다 당돌한데. 지난번 비행 때 글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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