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늦은 적은 없으니까
초등학교 때 내 생활 기록부를 보자면, "활발하고 예의가 바름. 참을성이 다소 부족함"이라고 적혀있다.
엄마의 말을 빌려보아도 어린 시절의 나는 인내와 끈기와는 거리가 먼 애였다. 책상에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것을 어려워했고, 엄마가 학습지를 하라고 하면 몰래 숨기다가 적발당하기 일 수 인 그런 평범한 어린이 었다.
놀랍지 않게, 피아노 학원에서도 동그라미에 짝대기를 긋을 때도, 한번 치고 창문 바깥을 지나는 사람들을 한창 구경하다가 두 번 긋는 아주 대담하고도 용기 있는 어린 친구였다. 그리고 굳이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리지 않고,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끈기와 참을성 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다. 무언가에 새로운 것에 쉽게 빠지고, 질리 때까지 그 것만 하다가 금세 실증이 나서는 쳐다도 안보는 사람이었다.
고1일 때는 인터넷 소설을 봤었고, 고 2 때는 일본 드라마에 빠졌으며, 고3 때는 아무튼 공부 말고 모든 것에 빠져서 살았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이런 세살 어린애와도 같은 얄팍한 집중력으로 어떻게 대학을 갔나 싶기도 하다.
그런 내가 요즘에 잘 듣는 말이 있다.
"조이유는 근성이 있잖아. 어떻게 그렇게 꾸준하게 하는 거야? 도대체 그 많은 것들은 언제 다 하는 거야? "
놀랍게도 정말 지금의 나는 전보다 근성 있는 사람이 되었긴 하다. 물론 다른 대단한 분들에 비하면 발끝도 못 따라가겠지만, 그래도 과거의 비하면 확실히 그렇다.
뱀이 허물을 벗거나, 마늘을 백일만 먹어서 웅녀가 된 단군 이야기나, 집중력을 키워준다는 모스부호와 같던 주파수를 듣고 갑자기 집중력이 자란 것은 아니다. 필라테스를 몇년을 하고 요가를 몇해가 넘도록 했지만, 명상으로 내면을 들여다지 못했다. 그렇다고 미라클 모닝으로 새벽을 여는 그런 고귀한 분들처럼 키운 것도 아니다.
그저 우연한 계기로 얻은 '위닝 해빗 (이기는 습관)' 덕분이었다.
당시에는 Winnning Habit이라는 표현도 없었고, 그저 묵묵히 할 뿐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이것들이 '이기는 습관'에서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소소한 첫 위닝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첫 시작은 아주 작고, 우연한 사건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1학년 학기, 성적이 3.5점이었다. 문과 기준으로 봤을 때는 중간 정도인 그저 평범한 성적이었다. 대충 만족하며 살다가 성적을 높게 받아야 할 만한 이유가 갑자기 생겼다.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을 했었는데, 왕복 4시간에서 막히면 5시간 정도 걸리는 아주 기나긴 시간들이었다.
일 년 내내 그렇게 사니, 도로에서 하루를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문과생에, 집이 그렇게 멀지 않은 학생의 경우에는 문턱이 굉장히 높아서 평점 4점은 넘겨야 명함이라도 내밀어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기숙사 쟁취를 위해 볼펜을 빼 들었다.
운이 좋았는지 턱걸이로 기준 점수를 넘기고 기숙사에 힘차게 입성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기숙사에는 입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교직이수가 앞을 단단히 가로 막았다. 엄마가 영문학과만 나와서는 취직이 불안하니 무조건 교직이수를 해야 한다 피켓을 빼드셨고 엄마 말은 틀린 법이 없었다. 다만 영문과에서 교직이수를 하려면 적어도 탑 쓰리 안에는 들어야 했고 당시의 나는 열 손가락 안에 들락날락하는 중상위의 성적이었다.
딱 봐도 자신은 없었지만, 어차피 공부를 안 하면 기숙사에서 쫓겨나니 이래저래 공부는 해야 했기 때문에 선택권 없이 또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열심히 했는지, 운이 좋았는지, 온 우주가 나에게 왔는지 다음 학기에 4.3학점으로 교직이수를 받게 된다.
근데 여기서 끝이 났으면 그냥 말았을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과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게 된다. 영문과 삼등으로는 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데, 갑자기 이름도 대단한 <문과 우등생 추천 장학금>이라는 게 신설되어 나에게 다음 학기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나같이 공부랑 담쌓은 애가 장학금이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신나는 마음에 얼른 부모님께 전하니, 예상 치 못한 소식에 엄마와 아빠가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뭔가 마음에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였던 것 같다. 내 위닝 해빗의 첫 단추가.
실은 우리 집은 다행히도 부모님께서 학비를 걱정하지 않고 내주고 계셔서 별로 크게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기뻐하시는 것을 보면서 중고등학교 내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곱 난 애가 부모님이 좋아한다고 이불을 열심히 개는 그런 아주 순수하고도 얕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전에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장학금을 받는 일 같은 거는 생기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우연히 맛본 그 신설된 장학금이 내 허파에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렇게 태어나 돌잡이 때도 잡지 않았던 연필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허파의 요정과 함께 졸업 때까지 과탑의 자리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그 뒤로 인생이 모든 게 순탄했다.
라고 쓰면 좋겠지만 그 뒤에 많은 우여곡절이 나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언니 힘들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냈어요?"라는 질문에 "가끔 져요."로 유명한 아이유의 답변으로도 모자라, 그렇게 매일매일 풍파 앞에 지면서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긴 취준 생활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매일이 버거웠지만, 그럼에도 매일 조금씩 쉬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했다. 어떤 뚜렷한 이유나 원동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기에 매일 그저 앞으로 뚜벅뚜벅 걸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핸드폰 배경화면이었던 위에 글처럼, 나의 평범한 매일과, 엄마의 간절한 기도 그리고 운 한 숟갈을 더해, 남들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결국 승무원이 되었다.
확실하건대, 내가 무언가를 잘해서 얻은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저 될 때까지 계속한 것이 결과를 가져다주었을 뿐. 그렇게 '이기는 습관'처럼, 나는 또한번 나에게 습관처럼 와줄 위닝을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나 스스로 대해서 한 가지 알게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지만, 반드시 결승선에 도달하는 사람. 그러니 뭐든지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할 것.'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뭐가 조금씩 느렸다. 성장도 느려 남들 다 컸을 중학교 때 혼자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났다. 네이버에 소설을 쓸 때도 반절을 넘기고서야 메인에 걸릴 수 있었다. 승무원도 늦깎이 취준생으로 낑낑대면서 간신히 합격했다. 시작과 함께 만 명은 훌쩍 넘어야 한다는 유튜브도 일 년을 넘기고서야 천명을 아등바등 채울 수 있었다.
이렇게 매일이 느린 나지만, 한 번도 늦거나, 도착하지 못한 적은 없다. 이루고자 한 것은 반드시 해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나와의 싸움일 뿐, 어느 지점에서 엔딩을 정할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피엔딩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다. 비행을 다녀오는 것은 지치고 벅찰 때가 많지만 몸을 다시 일으켜 글을 쓰고 동영상을 편집한다. 때로는 드라마도 보고 친구들이랑도 놀러 다니고 뒹굴기도 하지만, 그러다가도 다시금 책상 앞에 와 앉아있다. 대충이라도 조금이라도 해 놓다 보면 어느새 내 뒤로 커다란 산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도 작은 돌멩이라도 줍는다.
나는 느리지만 꽃을 피워내지 못한 적은 없다.
그저 남들은 봄에 피는 꽃이라면, 나는 가을에 피는 꽃일 뿐. 금빛으로 물드는 들판에 유유히 나만의 계절을 오롯이 맞이한다. 내가 나를 기다려주고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
지극히 느리고도 바둥대는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