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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시간 속, 존재의 이유를 묻다.

‘혼자’와 ‘함께’의 경계에서

당신은 혼자만의 시간이 좋은가요?

아니면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좋은가요?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고 어떤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을 힘들어한다. 나는 전자인 편이다. 밖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2% 정도 남았을 때 집으로 들어와 혼자 쉬는 편이다. 왜 그렇게 나를 몰아세우는지, 왜 그렇게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지, 왜 그렇게 남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융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만든 MBTI에는 내향형과 외향형이 있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 임상심리학자셨던 김태경 교수님은 바넘 효과를 무시할 수 없고 또 자신을 특정한 모습으로 단정 지을 수 있다고 경계하셨던 그 MBTI. 나는 ENFP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아마도 굉장히 높은 수치의 E 성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러리안 이재근 선생님은 내게 타인에 대한 관심과 나에 대한 관심이 둘 다 매우 높아서 많이 배우고 배운 만큼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혼자일 때 보다 함께일 때 더 행복하다. 함께 일하는 치료사들 모임, 대학교 동창 모임, 교회 집사들 모임, 대학원 동기들 모임, 그리고 함께 글 쓰는 작가들 모임 등 나는 어딘 가에 속해서 그 안에서 큰 소속감을 느끼고 그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행복하다. 그 이유를 나의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2살 때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셨다. 아버지도 재혼하시면서 할머니와 우리 삼 남매를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나라에서 지원되는 쌀 한 포대와 얼마의 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이어서 밤에는 호롱불을 켰고 중3이 되도록 전화기도, 칫솔도 써 본 적도 없다. 강 건너편에 함께 학교에 다니는 6남매가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1분이 1년처럼 시간은 너무 느리게만 흘러갔다. 나의 유일한 소원은 빨리 어른이 되는 거였다. 어른만 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 어쩌면 그것이 나를 버티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재. 어느 날 갑자기 새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남의 집에 식모살이로 보내져 버린 언니는 5학년이었다. 내 삶에서 그 어느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거저 주어지는 것도 하나 없었고 나는 한없이 외롭기만 했다.      


그래서 나의 기본 감정은 외로움인가 보다. 언제든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들은 나를 떠나갔고 이 세상에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혹 마음이 통하는 새엄마를 만나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결국 내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17살에 다시 만난 엄마마저도. 23살이 채 되기도 전에 또다시 나를 떠나버렸다. 이복동생도 우리 집에 두고서. 


그래서 나는 혼자가 싫은가 보다. 내면의 공허함을 마주하고 싶지가 않아서. 혼자 있으면 나의 모든 세포에서 외로움이 철철 흘러나올까 봐.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지치고 지쳐서 더 이상 쓸 에너지가 없을 때까지 달리고 달린 후 자기 직전 잠시. 아주 짧은 그 잠시의 시간만 혼자로  허락하고 싶은가 보다.      


나는 혼자일 때 지극히 내향형이다. 어떤 소리도 어떤 불빛도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인형처럼 텅 빈 눈을 하고서 어서 잠들기를 바랄 뿐이다. 혼자 있을 때 나는 한없이 외롭고 한없이 슬프다.      

하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 나는 한없이 밝다. 나의 별명은 초긍정 혜영씨 그리고 박나래다. 아마도 생김새보다는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줘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어린 시절, 나라에서 주는 배급 쌀과 보조금을 받으며 생활하면서 나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부모도 버린 나를 살려준 나라에 대한 어설픈 애국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는 원래부터 지극히 이타적인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남들에게 좋은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인지도.      


하지만 어느새 50이 된 지금 깨닫는다. 혼자일 때의 나의 모습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의 모습도 다 사랑스럽고 예쁘다. 이 세상에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하고 소중하다. 스레드에 푹 빠진 요즘.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동화책에 나온 것처럼 사람들은 별표와 점표 붙이기를 좋아한다. 부자거나 예쁘거나 똑똑하면 마구 하트를 붙여준다. 뭔가 부족한 사람에게 하트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엘리 아저씨의 말처럼 그것은 누가 붙여주지? 어차피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 아닌가? 사람은 누가 우월하고 누가 열등하다고 분류할 수 없다.      


우리는 신 앞에 그저 연약한 한 인간일 뿐이다. 시간이라는 운명 앞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과 친구로부터 얻는 우정, 그리고 사랑,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스승의 가르침. 나열할 수 없을 만큼 큰 은혜를 우리는 이미 입었다. 

비록 기억하지 못할 뿐. 


그러니 서로 사랑하자.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서로를 더 이해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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