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는 아빠가 죽었다는 말에 놀라긴 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있으나마나 한 아빠. 어쩌면 없는게 더 나을 수도 있는 아빠. 충격과 슬픔보다 단지 뒷말이 궁금해서 물었을 뿐인 질문이었다.
“......그, 그날 밤에 니 아빠가 도, 돈뭉치를 가지고 와서 급하게 가자고 했어. 나도 힘들었어.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다고.”
“왜 죽었냐고 물었잖아.”
“......”
“대답해.”
“......기차타러 갔어. 급하게 뛰어서. 무슨 일인지도 모, 몰랐어. 그냥 같이 뛰었지. 기차가 들어오더라고. 그날따라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순간 그, 그 새끼가 나한테 했던 일들이 생각나더라고. 아빠를 죽이고 내 인생도 망가뜨리고. 내 돈으로 생색내느라고 거지같은 반지하 하나 사놓고선 얼굴만 보면 때리고 욕하고...... 밀친 다음, 가방 들고 도망쳤어.”
선재는 기가 찼다. 주연은 어이가 없어 오히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은, 걍 미친년이여. 아빠도 모질라서 남편꺼정 죽였냐? 사실이래도 숨겨야지, 딸래미 듣는데서 그라고 씨부리냐? 어이고오...... 선재가, 내 조카였고만. 짠한거, 어찌야쓰까이...... 애미애비 잘못 만나가꼬 야가 먼 죄가 있다고 성때미 애기가 요래 짠하게 커야 쓰겄냐? 엉? 니는 애미 자격도 없다이.”
“니 년이 뭘 알아? 니가 내 인생을 살아봤어? 학교도 못 다니고 밤낮으로 몸이 부서져라 돈만 벌었다고. 너도 내가 번 돈으로 밥먹고 살았잖아! 나도 내 인생 살고 싶었다고. 그게 잘못이야?”
“남편놈이 그라고 살아도 애새끼 있는 년이 워째 애를 놓고 도망을 허냐! 니 인생 살고 싶었이면 니가 정신을 채리고 아를 책임을 져야할 것이 아니여? 핑계하지 말어!”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단 말이야. 그, 그 새끼는 나가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오지는 않고, 돈도 없고 내 배가 고파 죽겠는데 무슨 수로 애를 키우고 책임감을 가져? 내 처지가 나 스스로도 불쌍해 미치기 일보 직전인데 아빠 빼다박은 애기가 이뻐 보이겠어? 저년 때문에 내가 발목이 잡힌건데? 저것만 없으면 내 인생이,”
“뭐여?”
쫙!
주연은 미자의 뺨을 후려쳤다.
“터진입이라고 다 하는 중 아냐? 짐생도 새끼놓고 그란 소리는 안 해야. 더 듣고잡도 안헌께, 니 다시는 선재 찾지 마라잉. 우연히 봐도 기냥 가고, 애기 인생 앞길 막지 마라고. 선재, 너그 같은 것들 없이도 혼자 살길 찾아서 잘 살아왔응께.”
주연은 선재의 손을 야무지게 잡은 후 카페를 나셨다.
주연과 선재는 기차에서 내려 휴게소 가는 길까지 말없이 걸었다. 주연은 선재가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사실 선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저 멍하니 머리를 식힐 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야, 선재야."
"네."
주연은 걸음을 멈추고 말없이 선재를 바라보다 가만히 안아주었다. 선재는 아무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누가 죽든 말든, 나하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에 주연의 옷이 젖어갔다. 훌쩍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선재를 토닥이며 주연은 말했다.
"아야. 부모노릇 못하는 것들은 부모 아니여. 인자 내가 니 엄마 해줄텐게. 미안허다. 요상스런 애미 만나게 해서. 내가 대신 사과하께."
선재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알 수 없는 안정감이 들었다. 다시 만난 엄마를 내팽개치고, 아빠의 어이없는 죽음에 대해서도 듣고 왔는데, 오히려 홀가분하게 내 편이 생긴 느낌이었다. 주연은 선재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휴게소 관두고 나가서 나랑 살자. 너 공부해야혀. 전부터 얘기해주고 싶었당께. 어린 것이 이런데서 썩으면 안된다말이다. 내가 집 알아볼라니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응께 먼 일이든 하면서 사람같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