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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Oct 30. 2023

3 입원실의 사랑초들

          

 “자, 김명자 어머님, 박형배 아버님, 조기천 아버님, 황순영 어머님, 고영애 어머님. 사랑초화분 가지고 상담실 가시는 날이에요.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하셔요.”     


 추운 겨울이었지만 간호팀 선영의 씩씩하고 친절한 목소리가 입원실의 공기를 따뜻하게 덥힌다. 그것은 전기를 통한 히터의 열과는 다른 것이었다. 공기의 분자들이 연한 핑크빛 구름으로 몽글해지는 것을 보듯, 엄마의 품처럼 느린 심장박동같은 안정감을 주었다. 노인들은 주름지고 힘줄이 툭툭 튀어나온 손을 느리게 뻗어 각자의 사랑초 화분을 들기 위해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다. 어느 노인의 것은 활짝 피어있고, 어느 노인의 것은 노랗게 말라비틀어지기도 하였다.     


 선한뿌리병원. 선재와 근영은 치매노인들의 치료를 위해 기존의 병원에서는 비용이나 인력의 문제 때문에 시행하려하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려 하고 있었다. 작은 부분부터, 쓰는 단어부터 고치고 싶었다. 병원의 간판에는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치매전문’라는 단어를 작게 넣긴 했지만, 어르신들과 상담을 하다보니 점점 그 단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게 되었다.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 환자를 상대로 ‘어리석다’는 표현이 두 번이나 담긴 말을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내에서는 ‘인지장애’라는 병명으로 사용 중이었다.     


 병원에서 소유 중인 꽤 넓은 잔디공원에는 방사된 소와 양들, 닭과 토끼를 비롯하여, 유기된 강아지, 고양이 등의 동물들이 가둬진 공간이 아닌, 최대한 자연환경에 가깝게 꾸며진 곳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었다. 물론 사람, 동물의 안전과 생활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사육사 출신의 전문인력도 충분히 두었다. 이 동물들은 인지장애 어르신들의 치료에도 도움을 주었다. 부드럽고 순한 인간친화적 동물들은 그저 만지고 그 눈을 바라만 보더라도 어르신들의 안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 치료의 일환으로, 입원실 안에서는 어르신 각자의 사랑초 화분을 키우고 있었다. 선재가 많은 식물들 중 사랑초를 고른 이유는 키우기가 쉬워 혹시 소홀해지더라도 금새 다시 일어나는 씩씩한 식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 꽃말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당신을 끝까지 지켜줄께요, 당신을 버리지 않을께요.      


 선재는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했지만, 옆에서 누군가를 댓가없이 지켜준다는 것은 가치있는 일임을 부모 대신 현정과 명주, 주연에게서 배웠다. 이런 가치와 신념을, 선재는 환자들에게 베풀고 싶었다. 또한 현정과 명주 모녀의 팍팍해진 삶이 어쩌면 선재에게 그들을 지킬 기회가 되어 준 것이었다.    

 

 “우리 아버님은 화분을 엄청 잘 키우셨네요. 노랗게 꽃도 피고, 꽃잎들도 나비처럼 화려하고 굳게도 자랐어요. 당당하고 씩씩하신 아버님 닮았어요. 아버님은 풍채도 좋으시고 해서 젊으실 적에 인기 많으셨죠?”

 “응, 내가 아기 돌보듯이 물도 열심히 주고 햇빛 잘 드는데다가 옮겨주고 그랬지. 젊을 때는 술먹고 놀기 바빴어. 그때는 그런게 강한 것인줄 알았어. 식물같은건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야.”

 “정말 잘 하셨어요. 이 꽃처럼 가장 화려했던 때, 아버님 얘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기억이 잘 안 나셔도 괜찮아요. 아니면, 그냥 기억나는거 아무거나 말씀하셔도 되시고요.”

 “망나니처럼 술먹고 때리고 싸우고 아주 난장판이었어. 그러고 다니면 무서울 것이 없었지. 머리는 올빽으로 넘기고, 건들건들. 그랬는데 우리 예쁜 딸, 우리 예쁜 딸이 태어나고 술이고 담배고 뚝 끊었지. 아무것도 모르는 조그만 아기를 보니까 내가 그렇게 살면 안되겠더라고.”


 할아버지는 말씀을 이어갔다. 선재는 지치지 않으려 두 눈에 힘을 주고 경청하였다. 회의와 보도자료 때문에 잠을 3시간밖에 못 잔 터였다. 혹시나 어르신 말씀 중에 졸면 안되니 정신을 차리려고 선재는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표정과 상태를 진단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최근 근영과 작은 의견차이들이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아무리 바빠도 선재가 직접 챙기리라 다짐했었다.      


      




 “봐, 여봐봐요. 어르신 돈, 여 있잖여요.”

 “돈이 왜 이것 뿐이여?”

 “쪼꼼씩 다 쓰셨응께 없제. 어르신, 이제부텀 내 얘기 잘 들어야되아요.”

 “먼 얘기를 자꼬 들으라 해싸? 내 돈이나 내 놔.”

 “이리 좀 와 보랑께요.”     


 주연은 유할머니를 은행 의자에 앉히고 그옆에 나란히 앉아, 센터장과 함께 알아봤던 아들 얘기를 꺼낸다.     

 “음, 쩌그...... 어르신.”

 “아, 왜 그려? 먼 얘기를 할라고 뜸을 들여?”

 “아드님 통화 언제 했어요?”

 “......몰러. 기억도 안 나. 썩을 놈. 뭐시 바쁘다고 애미한티 전화 한 통을 안 허고.”

 “놀라지 말으셔잉? 그...... 아드님, 몇 해 전에 먼저 갔시오.”

 “워딜 가?”     


 유할머니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싶다는 마음의 물감을 칠한 그런 얼굴.     


 “워, 워딜 갔다는거여? 이?”

 “하늘나라 먼저 갔어요. 그 때 어르신 돈도 많이 없어졌고요.”

 “......”

 “......”

 “......그러믄 나 인자 센터서 못 지내는겨?”

 “예? 어르신, 괜찮으셔요? 안 놀래셨어요?”

 “......센터장도 알고 다 아는겨?”

 “예, 어르신. 사실은 두달밖에는 여그 못 있어요.”

 “......알고 있었고만.”

 “아셨다고요?”

 “이.”

 “근데 왜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시고 그랬데요?”

 “무시할까봐.”

 “누가 어르신을 무시한데요?”

 “자식없는 독거노인이라고 하믄 다들 무시할까비 그랬지.”

 “아이고오......차암......”     


 윽박만 질러대던 노인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못난 자신의 아들과 채소가게에서 일했던 어느 성실한 청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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