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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Dec 11. 2023

9 실종

 


 “사, 사장님이 입원을 하셨다고요? 아, 아. 그렇군요. 어, 어디로요? 아, 네, 네. 알아요. 그 병원 잘 알아요. 제가 오늘 차,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동안 신경써주셔서 정말 고, 고맙습니다.”     


 기원이 아빠는 드디어 정례를 찾았다. 십여년만에 찾은 사장님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있었는데 바보같이 이제야 찾다니. 기원이 아빠는 너무나 미안했다. 가게를 키워내고 기원이가 물려받고 바쁘게 사는 동안 정례는 집도 자식도 하나 없는 독거노인이 되어버렸다. 정례를 처음 만났던 새벽, 맹수같은 사장님의 모습에 움찔했던 기원이 아빠는 그 순간부터 할머니 다음으로 자신이 의지할 곳은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었다.      


 전화를 끊고 기원이 아빠는 끙하며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선재에게 선물받은 버섯빛깔 머그컵을 꺼낸다. 브레드박스를 열어 가지런히 놓여진 티백들 가운데 국화차 하나를 꺼내어 컵에 담는다. 정수기에서 컵으로 뜨거운 물이 하강한다. 쪼르르, 국화차 티백위에 서서히 물이 적셔진다. 기원이 아빠는 슬쩍 눈꼬리로 삐져나온 작은 눈물방울을 훔친다.      


 ‘선재네 병원에 계시다니, 참 다행이다.’      


 뜨거운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싸며 기원이 아빠는 소파에 다시 앉는다. 컵에서 슬금슬금 피어나는 국화향과 증기에 취해 입구가 넉넉한 컵 안으로 코를 박는다. 느린 호흡. 코 끝에 물방울이 맺히려는 듯 간질거린다. 코를 훌쩍거리며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본다. 화창하기도 하다. 새가 한 마리 날아왔다가 잠시 쉬어가려는지 난간 위에 앉는다. 은퇴를 너무 빨리 했나, 잠시 생각한다. 마침 기원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빠, 뭐하세요?”

 “어, 기원이냐? 안 바쁘냐?”

 “오늘은 잠깐 짬이 나서요. 이따가 선재가 저녁식사 같이 하자고 하는데 그 때 그 사거리 쌈밥집 거기로 가실까요? 아버지 거기 좋아하시잖아요.”

 “어, 그래, 좋지. 서, 선재는 잘 지내냐?”

 “네, 그럼요. 자주 못 찾아가서 죄송해해요.”

 “바쁘니까 그렇지. 괜찮다. 그리 생각해줘서 나, 나는 고맙지.”

 “이따 가게에서 봬요.”

 “그래.”     


 기원이 아빠는 차를 한번 호로록 들이킨 후 지난번에 하다 만 블록장난감이 있는 방으로 간다. 이젤과 다양한 화구들, 그리고 장난감을 바라본다. 은퇴 후 취미거리를 찾던, 경계선지능이 있는 기원이 아빠는 어른들이 하는 블록장난감이 너무 어려워서 유아들이 하는 아주 간단한 시리즈부터 시작을 했더랬다. 처음엔 그것도 꽤나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전투기에 도전해볼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아직 완성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기원이 아빠에겐 최근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선재네 병원 갔다와서 오늘은 비행기 앞에만 조금 맞춰야지.’     


 기원이 아빠는 남은 차를 마시며 외출 준비를 한다.     


 친구도 없고,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기원이 아빠는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이렇게 따뜻한 차를 마시며, 블록장난감을 맞추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를 보냈다. 기원이 아빠가 그린 그림들은 선재의 병원에 여러 점 걸려 있기도 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선재는 오랜 남자친구인 기원의 선함이 그의 아빠에게서 온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선재를 먼저 배려하는, 물려받은 사랑이 고마워 선재는 기원이 아빠에게 화구세트를 선물했었다. 그것은 독창적인 작품으로 선재의 병원에 더욱 값어치있고 풍성한 도돌이표가 되어 돌아갔다.      


 선재는 환자상담을 마치고 방에 걸려있는 기원이 아빠의 그림을 보며 기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식당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한다.           




 


 보통의 어느 날, 사장님은 오지 않았다. 전화도 꺼져있었다. 물품 확인을 마친 기원이 아빠는 늦은 오전에나 그 사실을 알고 많이 당황했다. 사장실에 들어가보았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단지 책상 위에 노란 서류봉투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기원이 아빠는 불안감에 떨리는 손으로 서류봉투를 집어들었다. 봉투 속에는 전에 할머니에게서 받은 후 그것을 어찌할 줄 몰라 정례에게 맡겼던 기원이 아빠의 통장, 가게 계약서 몇 장과 서류들, 그리고 또 다른 통장과 도장 2개와 장부가 들어있었다.      


 할머니가 주신 기원이 아빠의 통장에는, 그것이 정례의 손에 맡겨진 날 이후로 매달 몇십만원씩 입금된 내역이 찍혀있었다.

 다른 통장은 ‘양기원’이라는 이름이 쓰여진 적금 통장이었다.

 또 다른 통장은 정례의 것이었는데 꽤나 큰 금액의 돈이 들어있었다. 

 가게 계약서는 정례가 헐값으로 기원이 아빠에게 매매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통장 비밀번호와 금고 비밀번호 등 재산을 정리할 때 필요한 갖가지 서류과 기록이 있었다.

 절대 자신을 찾지 말라는 편지와 함께.     


 기원이 아빠의 하얀 얼굴을 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개의 매장이 이미 기원이 아빠의 것으로 되어 있었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사장님이라니. 울며 사장실을 뛰쳐나갔다. 정례와 친분이 있던 곳을 모두 찾아다녔다. 어디서도 정례가 사라진 정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골목에 쭈그려 앉은 기원이 아빠는 기원이가 먹던 빵을 들고 정례네 채소가게의 문을 두드리던 날을 생각했다. 정례의 손에 들려진 긴 구두주걱에 겁이 났었던 자신의 어린 20대를 생각했다. 기원이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골목에 앉아 끄윽끄윽 울며 눈물을 훔쳤다. 어느새 빨간 해가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울고 있는 기원이 아빠의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다.






 기원은 부산의 어느 카페에 앉아있었다. 카페 앞에서 바로 보이는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거품과 정박해있는 배들을 바라보았다. 약속된 시간보다 한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야. 아직도 있냐? 나 안 가니까 너도 빨리 가라.”

 “영석아. 나도 너 보고싶어서 온 거 아니야. 너희 어머님 때문에 온거라고.”

 “아이 씨발. 엄마 뭐. 뭐! 그렇게 사이가 좋으면 니네 엄마 해! 하라고!”

 “하...... 철 좀 들어. 이 자식아. 너 지금 나 보고 있으면 숨어 있지 말고 빨리 와.”

 “......”

 “빨리 와. 기다릴께.”     


 20분쯤 더 지났을까, 저쪽에서 배나온 영석의 모습이 보였다. 집을 나온지 며칠이 된건지 수염이 까슬하게 자라 있었고 더러운 옷을 입은 채, 왜인지 불안에 떠는 모습이었다. 기원은 뜨거운 음료를 한번 더 주문한 뒤, 영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냐?”

 “뭐, 이 새끼야. 빨리 말해.”

 “그날 밤에 왔단거. 너잖아, 이 새끼야. 너 왔다가고 나서 얼마 뒤에 아줌마 없어졌어.”

 “없어지다니 무슨 소리야?”

 “우리도 찾고 있으니까 너도 자식된 도리로 알고나 있으라고 말하는거야. 나쁜 자식.”

 “......”     


 기원은 고개숙인 영석을 그대로 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자식은 언제 사람이 되려나. 한숨을 쉬며 계단을 내려가는 기원의 옆으로 남자들 서넛이 뛰어올라갔다. 기원은 카페를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기차역을 향했다. 기원이 떠난 카페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남자들은 영석을 발견했다. 남자들에게 붙잡힌 영석은 죽도록 맞았고 카페 밖으로 끌려나왔다. 그리고 곧 카페 앞 바다에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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