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경쟁의식
토북이는 부모님의 응원을 받고 다시 결승선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던 경주에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나가야 하는 커다란 결승선 몇 개와 각자 알아서 찾아가거나 개척해 나가는 결승선이 존재했다. 둘째 토북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내가 불리한 커다란 결승선을 피해 갈 수는 없지만, 내가 몇 등을 하든 상관이 없는 거야. 그리고 작은 결승선들은 오롯이 내 생각에 달렸어. 이 경주는 결국 하나의 커다란 그림과도 같아.
그러니 큰 점을 기본으로 작은 점들을 찍어 나만의 그림을 완성하겠어. 미로는 싫어, 너무 헤매면 가족들이 힘들어하니까 이젠 돌아가기도 싫어. 느려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길 선택하겠어.'
토북이는 엉금엉금 기어서 커다란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어가도 커다란 결승선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옆에서 지나가던 토끼들과 거북이, 그리고 뱀이 보였다. 토북이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그들을 불렀다. "얘들아!! 오랜만이야." 토북이는 열심히 기어서 그들에게로 향했다. 오랜 학교 친구들은 잠시 멈춰 서서 토북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흔들며 저마다 인사를 했다. "토북아! 오랜만이다, 왜 지금까지 연락 안 했어? 경주에서 안 보여서 사라진 줄 알았잖아." 토북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옛 친구들에게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게... 사정이 좀 있었어. 미안해." 그러자 뱀이 말했다. "뭐, 미안해할 것 까지야. 우리도 각자 바빴는데 뭐. 그래도 우리끼리는 서로 연락하고 지내서 모임까지 있는데 너는 없어서 좀 그렇긴 하다 야."
토북이는 시무룩해졌다. 그러자 친구 토끼가 토북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이제부터라도 함께하면 되지. 우리 같이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자!!" 이에 토북이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지금까지 결승선 몇 개를 지나왔어?" 이에 친구들은 저마다 의아해하며 말했다. "다 똑같은 거 아니야? 세지는 않았는 걸." "글쎄, 큰 것 몇 개만 지나왔던 것 같은데. 근데 다들 가는 방향이 비슷해서 쭉 직진만 했지." 이에 토북이는 친구들에게서 이질감을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 큰 결승선과 작은 결승선을 모두 지나왔어. 작은 결승선들은 내가 직접 만들면서 나만의 표시를 해두었어." 이에 여우가 말했다. "멋진데?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나도 지나오다가 이상한 흔적들이 보여서 누가 싼 똥인가 싶었더니 네가 한 짓이구나." 이에 토끼가 여우를 살짝 치며 말했다. "너도 참! 말 좀 가려서 해."
토북이는 속으로 상처를 받았지만 괜찮은 척을 하며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괜찮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 피해만 안 가면 되니까. 나는 나만의 경주 기준이 있거든. 길을 헤매도, 타인과 같은 속도로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그러자 여우가 비아냥거렸다. "옛날부터 네가 그렇게 느려터진 건 알았지만 그게 맞는 둥 다른 애들까지 동화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 세상이 정해준 것을 제대로 해내지도 못하면서 뭔 새로운 걸 개척한다는 말이야. 우선 주어진 과제부터 해내고 하고 싶은 건 나중에 해도 충분하잖아. 겁만 잔뜩 먹어서는 피하느라 그냥 다른 데로 튀는 거 아니야?" 토북이는 여우를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야, 이젠 더 이상 피하지 않아.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네 자유야. 너도 너만의 기준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너도 그게 마치 이 세상의 단 한 가지 답이라는 듯 선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세상에는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도 설명이 안 되는 모순이 더 많거든"
이에 여우는 코웃음을 치며 결승선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도 경주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토북이와 가장 친했던 토끼 친구는 손을 흔들며 토북이에게 말했다. "여우가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마. 나는 네 기준이 참 멋져 보여. 나는 그런 결정을 겁이 나서 못했을 것 같아. 세상이 정해진 게 아닌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 말이야. 조금만 달라 보여도 세상은 우리를 이상하게 바라보니까. 사실 네 말대로 세상에는 정해진 게 없는데. 그러니 응원은 할게. 나중에 또 다른 큰 결승선에서 만나게 된다면 나한테 너의 이야기를 또 해줬으면 좋겠어. 그럼 안녕." 토북이는 멀어져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다 이내 자신도 큰 결승선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끝이 없는 듯한 경주에 토북이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끝이 나는 건데!! 작은 결승선 만들 시간도 없잖아. 내게는... 작은 결승선도 중요한데. 경주는 큰 결승선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단 말이야. 내가 직접 만드는 내 길도 소중하단 말이야. 도대체 왜 세상이 정해준 결승선만 향해 가야 되는 건데. 싫어. 이대로는 싫어."
토북이는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이내 모래 폭풍을 지나며 결심했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겠어. 늦어진다 하더라도, 친구들보다 큰 결승선에 늦게 도착한다 해도, 세상이 그런 느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해도, 작은 결승선을 만드는 걸 포기하지 않을래. 내 작은 결승선들이 타인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낸 모든 흔적들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큰 결승선에 도달하는 것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돼. 이젠 더 이상 잊지 않아. 현실도 이상도 전부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겠어. 버겁고 힘들어도 때로는 그냥 참고 견뎌야 하는 순간도, 다 해낼 거야. 다들 그렇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 삶을 내가 사는 거니까."
토북이는 그간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을 앞질러가는 모습을 보며 주저앉았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때마다 같이 가자고 마음속으로 소리쳤지만 친구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이었다. 몇몇 친구들은 느린 그녀를 아예 버렸고, 토북이도 그 친구들을 잊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전부 토북이에게는 몇 없는 친구들이었기에 그들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경주를 하다 지친 친구들은 멈추지 않으면서도 아주 지쳐있었고 많이 변했다. 작은 행복은 찾아볼 수도 없고 그저 앞만 보고 가는 친구들은 어딘가 텅 비어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