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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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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쩡 Jun 13. 2024

삶은 질문

날것이 익을 때까지


이제껏 질문 없이 살아왔다.

딱히 질문할 거리도 없었거니와 굳이 질문하지 않고 살아온 삶뚜렷한 성과도 없었지만 그런대로 평탄하게 흘러갔다.

물론 한번 고꾸라지고 좌절할 때면 평탄한 삶으로 재빨리 돌아가고 싶었지만 평소에는 잘 느끼기 어려웠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크게 호기심이 없던 나는 정작 나이가 들어가면서 궁금한 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차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 오히려 궁금한 게 없을 줄 알았는데. 


크고 엄청난 질문도 아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둥둥 표류하는 것 같다. 이 물음표들은 소극적인 주인 탓에 해결되어 뿅 하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묵묵히 존재하다 결국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그런 물음표들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계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개인 상담을 받기 시작했던 때부터 인 것 같다.


결혼에 회의감을 느낄 때쯤 우연찮게 회사의 복지로 개인 상담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누구나 결혼생활에 위기가 찾아오는 때가 있겠지만 나름 현명하게 잘 대처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의감이 들고 내 존재와 상황을 계속해서 부정하는 감정이 일자 비로소 그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다.


코로나 여파로 줌으로 회의는 많이 해봤지만 줌으로 상담하기는 처음이었다. 낯선 이와의 통화도 사실 어색하고 쉽지 않은데 줌을 통해 이게 될까? 내 이야기가 온전히 그녀에게 닿을까? 그녀의 말이 나에게 온전히 닿을까?

또 수많은 물음표를 머릿속에 간직한 채 비로소 그녀의 질문은 시작되었다.


사실 그녀의 질문은 내 마음속에 꺼내지 못한 많은 물음표들이었다. 애써 꼭꼭 누르며 굳이 질문하지 않고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한번 꺼내면 모든 게 왈칵 쏟아져 내릴까 봐 차마 열지 않았던 판도라 상자처럼 그녀는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 나에게 하나씩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의 물음표를 그녀의 입에서 듣게 되니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상담을 시작했다.

그녀는 묻고 나는 답했다. 차마 입 밖으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마주하자 겁부터 날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줌 화면을 붙잡은 채 거의 오열을 했다.

처음 만난 이에게 나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탓에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묻되 판단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주었다.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내 마음속 감정들에 문을 두드려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평소였으면 마주하기 힘들고 버거운 감정들 한번 문이 열리니 편안하게 마음속을 드나들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는 진정이 되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원했다.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만의 비밀스러운 상자.

언젠가 터져버리겠지만 지금은 아닐 거야 하며 꼭꼭 숨겨둔 나만의 상자를 낯선 이에게 꺼내 보이기까지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조금 더 용기가 생겼고 조금 더 후련했다.


비로소 주인의 답이 없어 계속 비밀스럽게 숨어있었던 수많은 물음표 친구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들었다.


그 후련함의 원인을 찾으려고 보니 딱 '질문'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삶은 계속해서 질문의 연속인 것을 이 질문들을 외면하기보다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고.

아주 작고 사소한 내 마음속 질문부터 내 인생을 뒤흔들만한 아주 중요한 질문들까지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한 라벨링으로 애써 외면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꺼내서 더 괴로워질 수도 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스스로 직면하고 꺼내지 않으면 끝내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계속해서 질문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결국 그 답의 결과가 어떻듯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기에 시도하지 않을 이유는 없.




<이미지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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