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들은 다 어디에(4)

by 김헌삼


겨울 동화

뒤돌아 보면, 어린 시절의 한 때를 시골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살아가면서 감성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6.25의 전화가 아니었더라면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니 이 점에서는 전쟁의 덕을 본 셈이다.

어머니를 따라 동생을 데리고 외가가 있는 외딴 시골에 닿은 것은 더위가 시작되는 오뉴월의 여름이었다. 뽕잎을 따다 우리의 행렬을 맞은 외할머니는 내손을 붙잡고 대뜸,

“영모가 학교에 다녀, 이제 보기 어렵겠다 했더니......” 말끝을 채 정리하지 못하고 격한 눈물을 훔치셨다. 이렇게 하여 나의 시골생활은 시작되었다. 이듬해 산자락에 진달래가 피어날 무렵 정중한 손님이 찾아와 취학시켜야겠다는 명목으로 나의 손목을 이끌고 이 마을을 떠나게 될 때까지의 생활은 일생을 두고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된서리가 내리고부터 겨울빛은 완연해, 구름이 끼고 음산한 날씨가 되면 혹시 눈이라도 오지 않으려나 기다리게 되었다. 첫눈, 첫눈이 내리면 그 난무(亂舞)하며 떨어지는 설 편(雪片)을 타고 하늘이라도 나를 것처럼 공연히 마음이 뒤 설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첫눈은 우리의 기대에 따라 흡족하게 내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몇 잎 나풀거리다가 그쳐 마음만 한껏 부풀게 했다가 터져버린 풍선 꼴이 되기가 일쑤였다.

이 무렵 나는 새롭게 사귄 아이들을 따라 뒷산으로 나무하러 다니고는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무를 하러 다녔다기보다는 산 위에 올라 칡을 캐거나 떠들고 놀다 지치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을 쪼이기가 예사였고 솔방울이나 마른 가지를 주워 삼태기에 담아 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이것으로 우리 세 식구가 기거하는 방의 찬기를 가시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몽당연필 한 자루도 가져온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종이라는 것은 구경조차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읽거나 쓰는 학습과는 동떨어진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면 질화로를 끼고 앉아 불씨를 다독이며 외할머니한테 옛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 무료를 달래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새끼를 꼬아 엮고 골을 박아 짚신을 삼거나 돗자리를 매는 일에 열중하셨고 외할머니는 목화를 씨아에 넣어 씨를 빼는 일이나 물레를 돌려 실을 잣는 일에 골몰하셨다.

“아주 먼 옛날 천년 묵은 여우가 재주를 세 번 넘으면 이쁜 처녀가 되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라 치면 무서운 생각이 번쩍 든다. 그래도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귀 기울이며 다가앉고는 했다.

이런 때 측간(廁間)에라도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라면 정말 여우 우는 소리가 포성에 섞여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밤, 찬바람은 몰아가는 데 낮은 울타리만 둘러친 작은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아무리 허공의 별을 헤일려고 해봤자 무엇이 금방 덮칠 것 같은 공포감을 떨칠 수 없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었고 듣다가 잠이 들곤 하였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니 장지가 훤했다. 함박눈이 밤사이 소리 없이 내려있었다. 솔가지울타리 위에도 배나무의 작은 가지에도 눈꽃이 하얗게 피어올랐고 장독대의 항아리들은 흰 솜모자를 뒤집어쓰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뒷짐을 지고 언덕에 올라 산을 바라본다. 사납게 몰아치는 눈바람에 왕소나무들은 포효하고 있었고 앙상한 가지의 감나무가 있는 언덕길을 돌아 길게 머리를 따 내린 처녀들이 하얀 입김을 불며 부지런히 물동이를 이어 나르고 있었다.

눈이 쌓인 날은 산에 갈 수가 없다. 대신 산새들이 내려온다. 내려와 울타리나 가시덤불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먹이를 찾는다. 그러면 덫을 괴어놓고 도토리나 고구마가 화로 속에서 익기를 기다리며 문틈으로 새의 동정을 살피며 하루 해를 보내는 것이다.

문명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보낸 수개월이 나로서는 수년을 계속해서 살았던 것처럼 아주 뚜렷하게 인상 지어져 있다.

외할머니는 난리가 아니었더라면 성장하여서나 상봉할 수 있으리라 하셨지만 예기지 않은 일로 그 후 한 번도 그곳에 가지 못했다.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수차례의 선거공약이 있었고 또 어느 정도의 실천이 뒤따랐으려니 하면 당시 달구지조차 다니지 않던 읍내장으로 가는 길에는 이제 자동차가 다니고 치마저고리와 바지 등 손수 지어 입던 이곳 사람들의 옷차림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원시에 가까우리 만큼 토속적인 생활이며 흐뭇한 인정과 조용한 풍경 속에서 철없이 놀던 열 살 무렵의 내 모습이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 내 마음은 가끔 어려지곤 한다.(7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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