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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서재 Sep 24. 2023

피 흘리는 스크림

- <원더 wonder>, R.J. 팔라시오

"헬멧 쓴 소년 어거스트"


어기(어거스트)는 선천적 안면기형으로 세상과 스스로 거리를 둔다. 소년은 헬멧 속에 얼굴을 숨겨야 비로소 어느 히어로처럼 당당해진다. 그는 가족의 응원과 사랑으로 학교라는 세상을 향해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디딘다. 어기의 부모는 매우 모범적이고, 매우 이상적이다. 작가는 완벽한 가정에 장애아를 자연스럽게 녹이면서 남들과 다른 인물이 주는 이질적 요소를 배제한다. 또한 작가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통상의 정형에 흔적을 남김으로써, 흔적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며 가족의 사랑으로 구성원의 아픔을 치유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엄마는 무한한 사랑을, 아빠는 노력을, 누나는 배려를, 어기는 충분히 온기 넘치는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더 이상 장애라는 흔적은 소년의 행복에 해가 될 수 없다.



주인공 어기의 인생에 가장 강력한 충격 사건은  '피 흘리는 스크림 분장을 하고' 학교에 갔다가 친구 윌의 진실을 알아버린 일이다. 진실은 곧 공포였다. 소년이 느낀 공포는 스크림 분장 그대로 그의 심장에 박제돼 버린다. 윌의 존재는 어기에게 너무나 막강했다. 그는 친구라고 믿은 윌이 그동안 거짓으로 자신을 대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핼러윈 가면 사건은 소설의 중심축이 되고 어기의 가족과 친구의 에피소드는 가로축을 이룬다. 어기의 인생이 가장 굵직한 가로축이며 비아와 할머니, 비아와 저스틴, 비아와 미란다 등 인물 중심의 에피소드가 몇 개의 가로축으로 진행된다.






현실에선 '장애와 행복한 가정'이 완벽하게 등가교환될 수 없겠으나, 작가는 은근히 잔인한 장치를 고안하며 누구나 장애가 있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작가는 어기의 대척점에 두 소녀, 즉 누나 비아&누나의 친구 미란다를 세워둔다. 비아는 어기의 누나다. 장애아를 키우는 집에 한 명쯤 있다는, 배려만 하다 부모에게 하소연 한번 못한다는 장녀가 바로 비아다. 비아는 어기가 '다른 모든 아이들과 똑같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밤'이 핼러윈 밤이라고 여긴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본모습을 감추는 밤


친구에게 상처받은 어기를 달래는 일도 비아의 몫이다. 어기가 학교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비아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로 남고 싶지 않으면 받아들이고 이겨 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정상으로 대해주길 원한다면 이겨내야 한다는 비아의 말은 우리에게 정상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비아는 '살다 보면 나쁜 날이 있어도 학교에 가야 하는 거'라며 꽤 어른스러운 말도 덧붙인다.


비아의 엄마 아빠는 비아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넓은 꼬마 소녀라고 칭찬한다. 비아는 불평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데 익숙해진 어른소녀이다. 할머니만이 비아를 위로하는데 이 위로가 유일하게 소녀를 소녀답게 만들어 준다. 할머니는 비아에게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어거스트보다 더요?”


비아는 어거스트를 태양이라고 표현한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신은 태양의 궤도를 도는 행성들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우리 친척들과 친구들은 태양의 주위를 떠다니는 소행성과 혜성들이고.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소녀의 고독, 체념, 성숙.   





미란다의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다. '아빠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라는 서술이 이 소녀의 삭막한 상활을 설명한다. 소녀는 엄마를 위로하며 함께 있길 원한다. 아니, 자신도 위로받아야 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기에 엄마와의 시간을 간절히 원했지만 정작 엄마는 혼자 있고 싶어 했다. 미란다는 엄마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여름캠프에 가게 된다. 부모의 이혼을 지켜본 어린 딸은 누구보다 외롭고 불안한 심정일 것이다. 이런 미란다의 외로움과 불안은 의외의 상황에서 돌출된다.   


미란다는 여름캠프에 온 다른 여자애들에게, “얼굴이 기형인 남동생이 있다”라고 거짓말을 한다. 소녀는 이 한마디로 캠프 최고의 인기녀가 된다. 그녀는 “이 정도 거짓말은 할 자격이 있다”라고 합리화한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어기와 친했으며 헬멧까지 사준 장본인이 아닌가.



 남동생으로 여길 권리가 조금은 있다


미란다는 상냥한 비아네 엄마와 아빠를 아주 좋아한다. 그녀는 "자기 집보다 남의 집에서 더 마음이 든든하다니 참 처량한 신세"라고 한탄한다. 미란다야말로 어기에 대한 편견도 없고 어기를 어릴 때부터 스스럼없이 대했다. 어기를 가장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헬멧도 미란다가 사준 것이니, 그녀의 당돌한 거짓말을 백 프로 비난할 순 없다. 미란다의 외로움, 불안, 합리화.






<원더>는 장애의 편견을 넘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어기의 성장 스토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미덕은 다른 인물의 인생과 상처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더 상처받았냐는 경쟁은 무의미하다. 주변인물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은 장애라는 외형과 상관없이 내면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 여정은 모두를 성장시킨다. <더>를 말할 때 주인공 어기, 장애아 어기에 집중하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장애아 주변 가족과 지인 모두,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으며 다른 형태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기는 자신의 외형에 대한 편견을 이겨나갈 것이다. 비아는 어기에게 쏠리는 시선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갈 것이다. 미란다도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해갈 것이다. 소년소녀는 이렇게 성장해 간다. 오늘, 어기 엄마가 어기를 향해 응원한다. 누구나 들을 자격이 있다. 설령 그게 우리일지라도.  



너는 정말 기적이란다, 어기.
 너는 기적이야.

You really are a wonder, Auggie.

You are a w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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