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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Oct 24. 2022

중국의 식당에서 메뉴판 훔쳐오기

나도 먹고살아야 될 거 아니요!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 나의 중국 유학은 시작되었다.


정말 니하오, 씨에 시에 정도만 할 줄 알았던 나는 당시 중국 환율이 1위안 당 120원대로 지금의 200원에 육박하는 것에 비해 굉장히 낮았고 물가도 쌌기에 적은 용돈에도 생활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탐험하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하루는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친구 학교에서 한 시간 넘게 일직선으로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2G 폰 시대였고(당연히 내비게이션 어플이 없다) 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처음 온 도시에서 용감하게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갔던 이유는 갔던 길로 그대로 돌아오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베이징은 천안문을 중심으로 도로가 네모로 되어 1 환, 2 환, 3 환 이런 식으로 도시를 둘러 싸고 있었기에 일직선 도로가 많았는데(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친구 학교에서 쭉 내려가다 교통경찰이 직진을 못하게 하여 우측 횡단보도를 건넜는데 거대한 쇼핑몰이 있었다.


천안문을 중심으로 큰 1환, 2환 3환 등의 도로가 도시를 싸고 있다


와~ 중국 쇼핑몰은 나름 깔끔하고 좋네? 하며 감탄하고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보니 이곳은 바로 TV에서만 보던 '왕푸징'이었다. 대박!! 당시에 중국 2G 폰을 쓰던 나는 친구에게 한글로 써 보낼 수도 중국어로 써 보낼 수도 없었기에 영어로 "나 왕푸징에 왔어!!" 라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왕푸징은 당시 나에게 베이징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TV에서 항상 보던 전갈꼬치, 불가사리 꼬치 등 '엽기적인' 음식들이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꼬치거리에 가서 궁금했던 음식들을 구경하고 중국의 간식을 하나 먹어보자는 생각에 이리저리 둘러보니 투명한 사탕 같은 것 안에 빨간 과일이 들어간 간식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것이었기에 사 먹었는데 너무 달아서 한 개만 먹고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흔한 탕후루(糖葫芦)였다.


실제로 중국인들은 즐겨 먹지 않다고 한다


동생이 중국어 학원에 다니는 게 어떠냐 제안했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베이징에 있는 한국인을 위한 중국어 학원. 뭔가 아이러니했지만 그곳에서 한국인 세명과 함께 수업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동생은 군 입대를 위해 내가 베이징에 간지 2주 뒤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친구 집에 살게 되었는데 친구는 방학이라 얼마 뒤 한국으로 돌아가 나는 홀로 남게 되었다. 학원을 다니며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의 여기저기를 구경 다녔다.


아무도 없었기에 홀로 모든 것을 해야 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무엇을 살 때도 생존을 위해 중국어를 해야 했다. 중국의 작은 식당 메뉴판은 A4용지 반 크기만 한 종이 메뉴판이었는데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라 나는 그것을 들고 집으로 왔다. 한자로만 적혀있었는데 당시의 나의 실력으로는 읽을 수 조차 없었기에 도통 이 음식이 무슨 음식일지 알 수 없었다. 먹기 위해 메뉴판을 집으로 들고 와 사전을 찾아가며 한자를 해석했다. 


중국음식 이름 안에는 요리 재료와 요리 방법으로 이루어진 이름이 많았기에 어떤 음식인지 대충 짐작이 갔고 나는 메뉴판 왼쪽 맨 처음 있는 음식부터 오른쪽 아래 맨 끝에 있는 음식까지 그 식당에 갈 때마다 하나씩 다른 음식으로 모조리 시켜먹어 보았다.



한 달 지나고 방학이 끝날 무렵 친구가 돌아왔고 같이 식당을 갔는데 친구가 한국에 갈 때만 해도 전혀 중국어를 못 했던 내가 중국어로 음식을 주문하니 친구가 실력이 왜 이렇게 많이 늘었냐며 놀랐다. 사실 나는 내가 실력이 늘었는지 전혀 몰랐는데 혼자 여차저차 하다 보니 한 달 동안 꽤나 실력이 늘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베이징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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