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동몬 Oct 23. 2022

'못 사는 나라' 중국에 유학가서 놀랐던 것들

올림픽 전의 베이징

2000년대 초반에 중국의 이미지는 어땠을까?

못 사는 나라, 후진국, 짝퉁의 나라 등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국가의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지금의 중국 모습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다.


내 동생은 2000년대 초에 일찍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G 폰을 쓰던 시절이라 카톡도 없었고 당연히 보이스톡도 없었다. 국제전화는 비싸기만 했다.

동생과 연락할 방법은 이메일이 유일했고 당시 인터넷 속도도 느리다는 중국에서 노트북이 없는 동생과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다. 가끔 동생이 보내오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면 참 안타까워 보일 정도였고 어머니는 살 빠진 동생의 모습에 매번 눈물을 흘리셨다. 그땐 타지에서 제대로 못 먹어서 살이 빠졌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소도시에 있던 동생은 중국 수도, 베이징에 있는 대학을 합격하여 다니고 있었고 나는 군대를 전역하고 중국 어학연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친동생,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베이징에서 유학하고 있었기에 나의 선택지는 베이징 말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2007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 무더운 여름에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동안 '못 사는 나라'에 사는 동생이 너무 안타까워 보였고 나 또한 그런 나라에서 1년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중국에 미래가 있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중국어를 처음 배웠는데 중국어가 너무 재밌었다. 중국에 대학을 가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후진국, 짝퉁의 나라 등에 대한 인식이 너무 강했기에 걱정이 커 유학을 포기했다.


나는 그랬지만 동생은 중국으로 건너갔고 대학까지 다니고 있었다. 

동생은 사실 연락을 잘 하는 편도 아니고 자신의 이야기도 잘하는 편이 아니라 그저 나와 어머니는 중국에서 동생이 고생하는 걸 안타까워했고 이제는 내가 직접 가서 볼 수 있으니 기대 반 걱정 반이기도 했다.


베이징 수도공항에 착륙하여 내리는 순간 소변 냄새, 즉 찌릿내가 코를 찔렀다.

마중 나온 동생에게 왜 이렇게 찌릿내가 나냐고 하니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냐며 의아해했다. 너도 이미 적응이 되어버렸구나...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공항을 나가기 위해 탄 택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70년대쯤에 있었을 법한 작은 빨간 택시였다.

역시 못 사는 나라는 택시도 오래됐구나... 하며 베이징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만 해도 한국에서도 흔히 보이지 않던 고급 외제차들이 슝슝 지나갔다.

워낙 짝퉁의 나라라는 인식이 되어 있었기에 동생에게


외제차가 왜 이렇게 많지? 짝퉁인가??


아니란다.

엥?? 중국 엄청 못 사는 나라 아닌가? 외제차들이 이렇게 많은데 못 사는 거 맞나??


시내로 들어서자 높은 빌딩들이 쭉쭉 서 있었다.

빌딩 끝에는 빨간색 한자로 건물 이름인지 뭔지가 간판에 적혀있었다. 한국에서는 빨간색 글씨로 간판에 떡하니 적은 글을 본 적이 없어 아... 사회주의 국가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사는 아파트는 허름했지만 내부는 나름 깔끔했다. 도착한 당일, 동생은 나를 데리고  엄청 큰 규모의 가구 전문점에 데리고 갔다. 우와~ 뭐 이런 곳이 다 있데? 굉장히 큰 규모에 외관은 파란색이었고 가구와 가정용품들이 즐비했다. 인테리어를 꾸며놓은 것도 너무 예쁘게 꾸며놨고 가격도 너무 저렴해서 집을 사서 얼른 꾸미고 싶을 지경이었다.


IKEA


그곳은 이케아였고 나는 그때 처음 이케아를 알았다. 당시에 한국에 조차 없던 이케아를 중국에서 처음 본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간 그 매장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케아 매장이었다(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엔)


베이징의 이케아


고급 외제차, 높은 건물, 이케아

'못 사는 나라'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도착한 날부터 그 선입견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음날 동생은 나를 데리고 중국 음식점에 갔다.

동생은 늘 중국요리는 가격이 저렴하다고 이야기했고 탕수육이 4천 원, 볶음밥이 천 원 정도라고 하여 중국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한국의 중국요리와 진짜 중국의 중국요리의 차이가 궁금했다.


동생은 집 앞에 있는 아주 작은 음식점에 데리고 갔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분식점 같은 느낌이었다.

문 앞에는 떡볶이 대신 만두를 빚고 있었고 지금은 한국에서도 흔한 중국식 만두를 찌고 있었다. 동생은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나를 위해 볶음밥과 만두(빠오즈)를 시켜줬는데 햐... 어찌나 맛있던지 푹 빠져버렸다.


한국에서는 눈 뜨자마자 밥 한 공기에 반찬을 먹어야 되는데 부담스러워 챙겨 먹지 않던 내가 중국에 있는 내내 아침밥으로 빠오즈를 먹을 정도였다. 그동안 동생이 못 먹어서 살이 빠진 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아마  용돈을 좀 더 보내달라고 불쌍한 척을...)



못 사는 나라 중국?

아마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중국 대륙의 수도인 베이징이라서, 한창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중국의 시골은 정말 못 사는 곳도 많다. 그러나 '못 사는 나라 중국'으로 보았던 나의 시선은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 선입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내 인생을 바꿀 중국생활이 시작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