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人
함께 살던 친구가 방학이 되어 한 달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너 축구 좋아하면 축구화 들고 우리 학교 운동장에 가서
중국인들한테 같이 축구 하자고 해봐
오전에 중국어 학원 수업이 끝나면 오후에 홀로 있어야 했고 축구가 하고 싶기도 했다.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심심했던 찰나, 나는 친구의 말대로 정말 축구화 하나 들고 친구의 학교 운동장에 찾아갔다.
두 팀이 작은 골대에서 풋살을 하고 있었고 나는 골대 뒤에서 지켜보다 공이 나가면 주워다 주곤 했다.
공을 주워주는 나에게 고맙다고 '씨에씨에'라고 했지만 그들은 내가 한국인인지 전혀 몰랐을 거다. 나는 당시 20대 초반이었고 그들은 30대 중후반으로 보였는데 쉬는 시간이 되었고 골키퍼를 하던 이에게 나도 축구가 하고 싶다며 안 되는 중국어로 손짓 발짓을 했다. 그리고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니 오?? 라는 반응을 보이더니 좀 있다 나에게 골키퍼 장갑을 주면서 한번 해보라고 했다. 날아오는 공을 이리 막고 저리 막았고 괜찮아 보였는지 공격수가 뛰어오더니 공격도 해보라고 했다. 몇 골 넣다 보니 다들 나를 좋아라 했고 축구가 끝나고 연락처를 물으며 중국어로 뭐라고 했는데 말이 안 통하니 어설픈 영어로
Next time, we play football together again!
나는 좋다고 했고 몇일 뒤 그들에게서 정말 다시 연락이 왔다.
그들은 내가 사는 곳까지 데리러 왔고 그들의 차에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사실 나는 처음 그들과 축구를 했던 곳에서 다시 축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장소가 다른 곳인지 차를 타고 멀리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다 싶다. 두 번째 만난 이들이 나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는데 말이다. 가다가 갑자기 음식점을 가더니 이른 아침인데 음식을 잔뜩 시켜줬다. 처음 보는 베이징의 아침 음식이었는데 지금도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가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아침밥을 다 먹고 어느 초등학교의 운동장에 도착했다.
중국은 초등학교에도 인조잔디가 깔려있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
나는 대학교 때까지 맨땅에서 축구했는데 중국인들은 초등학교에도 인조잔디가 깔려있다니?! 부러울 정도였다. 그날도 나름 재밌게 경기를 했다. 상대팀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다들 신기한지 이래저래 말을 걸어왔다. 안타깝게도 나의 중국어 실력이 그들과 대화를 할 정도가 되지 않아 몇 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몇몇과 휴대폰 번호 교환도 했다. 우리 팀은 다들 덩치가 꽤 있는 30대들이었는데 나를 정말 좋아라 했다.
축구가 끝나고 우리 팀원 4명을 따라 어느 골목에 있는 내부 벽에 제대로 페인트도 칠하지 않은 작고 허름한 음식점으로 갔다. 안에는 테이블이 두 개 정도 있었는데 그 테이블조차 우리로 치면 편의점 밖 작은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이었고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술을 마셨는데 그들은 맥주를 어찌나 마시던지 박스째로 시켜서 옆에다 두고 마셨다.
음식도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었지만 나는 맛있게 먹었고 맥주도 잔에 따르지 않고 병째로 마시는 그들과 함께 벌컥벌컥 마셨는데 날이 덥고 에어컨이 없다 보니 그들은 웃통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에게도 웃통을 벗으라는 제스쳐를 했는데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으니 나도 뭐 부끄러울 것 없다 싶어 벗으니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고 부어라 마셔라 하더니 몇 마디 못 알아듣는 나였지만 네가 정말 마음에 든다며 한 박스를 다 마셔버렸다.
나를 두 번 밖에 보지 않았고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굉장히 환영해주었고 축구는 물론 밥과 술도 사주며 친분을 이어갔다.(내가 돈 쓸 틈을 주지 않았다) 그날은 정말 기분 좋게 술을 마셨고 나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뒤로도 나를 데리고 축구를 하러 갔고 경기가 끝난 후 자신의 가족과 여자 친구와 함께 만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던 친구는(30대 중후반이지만) 나에게 만리장성에 가봤냐고 묻더니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하니 그럼 다음에 우리랑 같이 가자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집에 가서 자고 가라더니 집에 가서 또 음식을 두가지를 만들어서 나를 먹였는데(이미 배가 엄청 불러있었다) 그때 먹은 음식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홍샤오로우(红烧肉)와 시홍스차오지단(西红柿炒鸡蛋)이었는데 시홍스차오지단은 계란과 토마토를 볶은 음식으로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음식이고 홍샤오로우는 그 뒤로 내가 중국 식당에 가면 꼭 시키는 간장 돼지고기 요리이다.
후에 나는 학교에 어학연수 코스로 들어갔고 그들은 약속대로 학교로 찾아와 나를 데리고 만리장성으로 갔다.
정말 무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만리장성을 올랐던 기억이 난다. 만리장성을 오른 후 한적한 산속 같은 곳에 있는 식당에 가 밥도 맛있게 먹고 평상에 누워 한숨 자기도 했다. 그 당시에 내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없었고 디지털카메라도 없었기에 그때의 사진이 없는 게 너무너무 아쉽지만 그들과의 추억은 아주 소중하게 남아있다.
학교를 가게 된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느 순간 그들과 연락이 끊겨버렸는데(내 휴대폰이 고장이 났던가...) 지금도 그들과 연락이 끊긴 것이 아쉽기만 하다. 만약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이제는 그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는 중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국으로 초대해서 그들이 나에게 베풀었던 것 그 이상으로 되돌려주고 싶다.
지금도 너무 고맙고 내 기억 속 가장 좋았던 중국인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