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업그레이드된 실력
9월 학기, 드디어 나는 중국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했다.
방학기간 동안 중국어 학원을 다녀서 인지 나의 중국어 실력은 생각보다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배치고사에서 초급반에서 가장 높은 반에 들어가 반장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 반엔 한국인이 50%, 일본인, 미국인, 독일인,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반이었는데 인원이 1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정말 친하게 지냈다. 모두 중국어를 배우러 왔지만 다들 유창한 실력이 아니었기에 처음엔 서로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과도 영어로 질문을 하곤 했다.
그렇게 즐겁게 한 달쯤 어학연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쯤, 기숙사 방 안으로 계속 여행사 전단지가 들어왔다.
처음엔 왜 이렇게 전단지를 넣나 했는데 어느 날 반 친구들이 '국경절'에 뭐할 건지 물었다. 나는 당시만 해도 국경절이 뭔지도 몰랐기에 무슨 날이냐고 물으니 국경절은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날이라 하여 매년 10월 1일부터 일주일간 쉬는 날인데 나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생각 없던 나도 여행을 가야겠다 싶었고 여행사 전단지를 챙겨보았는데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 난징, 우시 코스가 있었다. 상하이는 베이징과 더불어 중국 최고의 경제도시이고 항상 듣기만 했던지라 궁금했었는데 여기에 중국의 강남이라 불리는 항저우, 쑤저우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한국인 유학생이 얼마나 많았는지 전단지에는 한국어로 적혀 있기도 했고 '한국어 상담 가능'이라고 적혀있었기에 나는 그곳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조선족 직원이었고 예약을 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세 번째쯤 전화하던 날 조선족 직원이 받지 않고 한족 직원이 받았다. 한국어 가능한 직원 없냐고 하니 오늘은 출근을 안 했다고 본인에게 이야기해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중국인과 이런 중요한 예약 건에 대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는 터라 걱정 반, 우려반으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천천히 중국어로 전달해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원하는 바를 다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중국인 직원조차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
라고 했다.
함께 살던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나 홀로 한 달을 베이징에서 생존 중국어를 하다 다시 친구가 돌아왔을 때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땐 단어 단어를 조합하고 음식 주문을 할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꽤 어려운 단어를 쓰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했다. 이런 중요한 대화를 내가 해내다니!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예약은 문제없이 잘 되었고 여행 가는 기차 안에서 우리 학교 한국인 유학생들이(모르는 사이) 같은 여행사를 통해 여행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국은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갈 경우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흔한데 그 여행도 마찬가지였고 추가 요금을 더 내라며 가이드가 난리 법석이었다. 바가지에 당하지 않으려 중국어로 적극적으로 내 의사를 표출했는데 어쩌다 보니 함께 간 한국인 유학생들을 대표하여 가이드와 소통하게 되었다.
그때 나의 중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니하오, 씨에씨에만 할 줄 알았던 내가,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운 지 약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당시 나의 목표는 HSK 6급을 따는 것이었는데 1년 안에 따야 했기에 압박감이 컸다.
1년 동안 HSK 6급이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예습, 복습을 한 적이 없었고 시험 때만 벼락치기 공부를 했던 나인데 중국에 유학을 가서는 매일 수업을 마치면 예습, 복습을 했으며 공부한 내용을 다음날 반 친구들에게 그리고 선생님에게 꼭 써보았다. 이렇게 저렇게 예습, 복습하며 외운 단어들 수가 점점 늘기 시작했고 문법과 독해를 통해 읽기 능력과 문장 능력도 점점 향상되었다.
처음엔 영어로 대화했던 반 친구들과도 점점 중국어를 더 쓰기 시작했고 선생님에게도 처음엔 영어로 질문하다가 중국어로 질문하게 되었다. 중국 현지이다 보니 밥을 먹을 때도, 물건을 살 때도 중국인과 대화를 해야 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단어를 배우게 되고 이럴 땐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하며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써먹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실력으로 시작한 한국인 유학생들이 꽤나 있었지만 그들의 실력은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을 항상 한국인끼리 몰려다녔고 수업시간 외에는 대부분 한국어를 썼으며 한국인 유학생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수업에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20대 초반에 부모님을 떠나 물가와 환율이 비교적 싼 중국에서 너무 놀기 좋은 환경이었기에 '중국어 공부'라는 목적은 잊고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나 많았다.
나의 경우 룸메이트가 일본인이었고 그의 중국어 실력이 나보다 좋았기에 그와 중국어로 소통하면서 중국어를 쓰는 것이 생활화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HSK 6급을 따야 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홀로 유학을 갔기에 한국인 친구들이 없었으며(그렇다고 한국인들과 안 어울린 건 아니다) 반 친구들과 놀 때도 외국인 친구들이 있었기에 중국어를 써야 했으며 기숙사 안에서도 일본인 룸메이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실력이 늘어있었다.
언어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을 깨닫게 되었고 그런 환경이 주어진 다하더라도 본인이 그 언어를 쓰도록 노력해야만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느꼈다.
1년이 지나고 나는 결국 HSK 6급을 따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던 날이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그날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내 인생의 모토가 된 것도 그때부터다.
1년간의 베이징 유학 생활은 지금까지도 내 인생 가장 즐거웠고 열심히 했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