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나 마음에 안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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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님의 지시사항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부서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서도 있었다.
부사장님 부서에 소속된(우리팀) 직원들은 모두 힘을 모아주었지만 사장님의 직속부서인 마케팅 팀에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맡은 카테고리는 항상 2순위였고 당시만 해도 1순위 카테고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 매출 비중이었기에 마케팅 비용을 내가 맡은 카테고리에 쏟고 싶지 않아 했다.
마케팅 팀장을 찾아갔다.
이 카테고리 매출을 올리려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합니다.
마케팅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중국어로 이야기함)
그 카테고리를 우리가 진행해 본 적도 없고
큰 비용을 거기에 쏟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런저런 핑계로 해주지 않으려고 했다.
평소 그가 잘난척하기로 유명한(중국의 대도시 출신이자 일류대학 출신이었다) 팀장이었기에 다른 이들도(특히 우리 부서 사람들) 아니꼬워 하기는 했지만 나와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면 이 카테고리는 투자 없이 어떻게 매출과 비중을 높이라는 겁니까?
회사 전체적으로 내가 맡은 카테고리를 키우겠다는 의지는 있었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고 통역하다 영업하다 온 신입 기획자가 오자마자 이런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했다는 게 믿음직스럽지는 못 했을 거다. 그러나 부사장님께서 컨펌하고 직접 지시한 일이었다.
그러면 영업팀한테 허락받고 와,
매장에 영향이 가는 일이니 영업팀에서 허락하면 해줄게.
나는 영업팀 소속으로 2년간 지냈고 영업팀 이사님(중국인)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기에 마케팅 팀장과 함께 이사님 사무실로 갔다. 이사님은
회사에서도 이 카테고리 비중 높이기로 했잖아?
그러려면 마케팅은 당연히 해야지.
나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런데 마케팅 팀장은 또 태클을 걸었다.
이건 브랜드 전체와 연관되어 있으니 사장님께서 허락하면 해줄게.
본인이 요구한 영업팀의 허락도 받아왔고 하지 않아야 될 명분도 없으니 사장님을 들먹이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정말 해주고 싶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장님께 다이렉트로 찾아갈 수 없었다.
막내 기획자가 사장님을 바로 찾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보고 체계를 거쳐야 했기에 이 문제를 부사장님께 보고 드렸다.
도대체 뭐가 문젠데?
평소 협조적이지 않은 마케팅 팀장의 성향을 아는 부사장님은 살짝 짜증이 나셨고 벌떡 일어나 사장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야, 마케팅 팀장! 너 따라와.
내가 기획한 제품의 샘플을 들고 부사장님을 따라 마케팅 팀장과 사장실로 들어갔다.
우리가 이 카테고리의 비중을 높일 계획이 있고
매출을 올려줄 제품을 다음 달에 런칭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부사장님은 통역없이 사장님과 영어로 대화했다.
회사 차원에서도 이 카테고리를 키우려고 하고 있고,
지금까지 이 카테고리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었지만
이 제품은 가능성이 있고 그러려면 반드시 마케팅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장님이 샘플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상품이 나쁘지 않네요.
곧 출시할 예정이고 트렌드가 충분히 반영된 제품이라
매출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진행해 보는 게 좋을 듯하군요.
그러면서 마케팅 팀장을 쳐다보았다
회사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니 마케팅 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게.
자신의 직속 상사인 사장님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마케팅 팀장은 별수 없었다.
그럼... 어느 정도의 예산으로 준비하면 될까요...?
사이다를 원샷한 느낌이었다. 아주 그냥 들이부은 느낌(콸콸콸)
평소 그렇게 잘난 체를 하더니 한방 먹이니 속이 시원했다. (막내 기획자라 우스웠냐?)
이 소식을 사수에게 전했고 사수는(이미 타 브랜드 런칭하고 있었기에 명목만 사수였지만 나와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 크게 웃으며
그 잘난 체 하는 인간을 드디어 우리가 한방 먹인 거구만?! ㅋㅋㅋ
이라며 속 시원해했다.
모든 부서는 초짜 기획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힘을 모아주었다.
부사장님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부서직원들을 결집시키는 능력이 있었으며 안 되는 것은 단호히 안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지원해 줄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다. 부사장님의 지원사격으로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의 런칭일이 다가왔다.
중국 전역에 있는 모든 매장에 유명 연예인이자 우리 브랜드 모델이 내가 기획한 제품을 들고 있는 POP가 부착되었고 매장의 메인 자리를 차지했다. 큰 매장일수록 그 크기는 더욱 컸고 파급효과도 컸다. 거기에 맞는 집기도구들도 만들어져 상품을 더 빛나게 했다. 기획자가 되자마자 기획한 제품이 이렇게 큰 영향력이 있다 보니 사실 나도 얼떨떨했다. 이제 판매만 남았다. 매일 야근하며 심지어 꿈에서도 썼던 이 기획안이 꼭 성공하길 바랐다.
런칭 약 한 달 후 판매 실적은 굉장했다.
타 카테고리 기획자 직원들도
동동몬! 오자마자 대박터뜨렸네?! 대단해!
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줬다.
2달 만에 판매율 98%를 달성했고 한달 차에 이미 리오더를 진행했으며 수백억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 카테고리 역사상 이렇게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 적은 없었으며 판매가 이렇게나 빨리 진행된 적도 없었다. 그땐 정말 미친 듯이 팔았다.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는 말이 정말 이런 건가 싶을 정도였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학교를 다닐 때 부터 내가 어떤 일을 임할 때 정말 진심을 다했던 일들은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모든 열정과 마음이 그 하나를 향해 있었고 정말 미친듯이 했다. 거기에 빠져 다른 무언가를 하지 못 할 정도였다. (훗날 아내를 만났을때도 그랬다) 그리고 결국 성공시켰다. 이렇게 열정적인 마음이 매번 나오지 않는다는게 문제지만...(뭔가 하나 꽂혀야 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 선수인 국민타자 이승엽은 항상 위기의 상황에서 대한민국 야구팀을 구해낸 영웅이다. 그런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나는 이 프로젝트로 기획자가 된 첫 해, 그룹에서 브랜드 최우수 사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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