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보이는 사람도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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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님과 분가 후 부사장님은 가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사모님이 중국에 오셔서 나와 팀장님이 나와서 따로 살긴 했지만 사모님도 한국에 직장이 있으셔서 쭉 중국에 계신 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부사장님은 혼자 있을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퇴근 후 술 한잔하자고도 했고 직원들과의 회식을 일부러 만들기도 했으며 새벽에(ㅠㅠ) 월드컵 경기가 있을 때도 불러 함께 보기도 했다. (이길 가능성 없는 경기라 전반만 보고 집으로 갔지만)
부사장님은 강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왜인지 부사장님이 외로운 마음을 몇번 느꼈다.
나의 아버지는 조금 높은 자리에 있는 공직자였는데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건 참 외로운 일이다.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데 그들이 나를 불편해하거든.
어쩌면 부사장님, 팀장님, 나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살면서 우리는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서로에 기대어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 바쁘게 살아 외로울 시간이 없어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 부사장님을 모시고 그룹 임원들과 식사 자리에 통역을 간 적이 있었다.
중국 부자들은 술을 마실 때 주로 와인을 마시는데 회장님의 경우 정말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와인들을 많이 마셨다. 알고 보니 아예 와인 수입회사를 차려 공급받았는데(대륙의 클라스) 회식을 하는 날이면 한 병에 몇 백만 원짜리 와인을 박스째로 들고 와 마시곤 했다. 중국의 술 문화도 원샷(干杯) 문화가 있는데 그걸 와인에 적용해서 마시다 보니 와인 글라스에 꽉 채워 돌아가며 원샷을 하기도 했다. 와인을 그렇게 마시면 정말 필름이 끊겨버린다. 그날 부사장님은 과음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댁에 모셔다 드렸는데 방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소파에 누우셨다.
소파에 웅크려 주무셨는데 나는 그때 그분의 외로움을 느꼈다.
텃세가 심한 타국에서 최초로 한국인 임원으로 입사하여 모든 이들이 지켜보고 있는 '부사장'이라는 자리에서 직원들을 진두 지휘하며 실적을 보여줘야 한다. 부사장님도 엄청난 압박감에 힘들고 지칠 텐데 그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한 번은 부사장님이 나에게 자신의 집에 와서 자고 가라고 하셨다.
나에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셔서 그러나 싶었고 그날은 한국인 직원들과 회식을 하고 집으로 갔는데 나보고 ‘잘 자라’라고 하셨다. 아침을 꼭 드시는 분인지라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실 모양이다 싶어 씻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같이 먹었는데 그때도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뭐지..? 왜 아무 말씀 안 하시는 거지??
훗날 몇 번 더 나를 부르셨는데 그때도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랑 이혼 후 나랑 둘이 살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불 꺼져 있는, 아무도 없는 집이 너무 싫어
아버지의 그런 말을 들을 뒤로 늦게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항상 불을 켜놓고 나갔었다.
어쩌면
부사장님은 불 꺼진 집이 싫었겠구나, 인기척 없는 집에서 혼자 있기가 싫으셨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인한 부사장님도 그런 외로움이 있으셨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퇴근 후 우리와 회식을 하고 싶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대 후반이었고 중국어도 할 줄 알다 보니 언제든지 친구를 사귀고 놀러 갈 수 있었지만 부사장님은 그럴 수 없는 위치였다. 아이들은 해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중국에서 마음 편히 만날 친구도 없었으니 치열하게 일하고 퇴근 후의 허전함을 기댈 곳이라고는 우리, 몇 명의 한국인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하고 회식을 일부러 만들어 하셨는데 그때의 나는 어려서 그런 걸 잘 몰랐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마저 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 뿐, 외로움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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