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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May 30. 2023

건물 한채를 사주는 대륙의 회장님

대륙의 클라스는 역시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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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로 들어오자마자 진행한 프로젝트로 나는 약 2년간 수백억에서 천억 대의 매출까지 올리게 되었다.


회사는 더욱 승승장구했고 나 또한 두둑한 인센티브를 받았다. 그렇게 2년쯤 지날 무렵 그룹에서는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 혹은 라이센싱하여 그룹을 발전시키겠다는 '多 브랜드 전략'을 공포했다. 이로 인해 세계적인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한다는 썰이 돌았고 그 책임자로 부사장님이 지목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러나 글로벌 브랜드 인수는 성사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한 브랜드를 라이센싱 하기로 결정이 났고 그 브랜드를 부사장님이 '대표'가 되어 운영하는 것까지 이야기가 되었다. 신규 브랜드는 중국에는 없는 브랜드였지만 한국에서는 꽤나 알려진 브랜드였다. 나 또한 너무 좋아하는 브랜드였고 그 브랜드에 정말 가고 싶기도 했다. 그 브랜드에 가고 싶어 하는 이들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브랜드는 부사장님이 '대표'가 되어 모든 예산 집행, 모든 부서, 인사까지 부사장님의 손으로 진행하는 브랜드였기에 부사장님을 따르는 직원들은 특히 더 가고 싶어 했다.


나는 약 2년 동안 홀로 내 카테고리를 맡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세명의 직원이 들어왔다. 당시 나는 한국으로 치면 '주임' 정도였는데 내 위로 두 명, 아래로 한 명이 들어왔다. 갑작스레 3명이 들어오길래 이게 뭔 일인가 했다. 나 혼자도 다 해내던 일을 네 명이서 하게 되니 일이 너무 쉬워졌고 신경 쓸 것도 반이 아니라 반의 반으로 줄어버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부사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부사장실에 들어가니 문을 꼭 닫으라고 하셨다.


새로운 브랜드 런칭멤버로 너를 데리고 가고 싶다.
갈 의향이 있나?


생각지 못 한 제안이었다.

먼저 제안해주시다니 영광일 따름이었다. 나는 당연히 Yes였다. 알고보니 갑자기 들어온 세명은 나를 데리고 가기 위해 뽑은 인원이었던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신규 브랜드로 가게 된 이는 부사장님, 팀장님, 나 그리고 통역이었다. 나는 이 신규 브랜드 네 명의 런칭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로부터 약 3개월 뒤 기존의 브랜드에서 우리는 퇴사 처리 되었다.

그리고 신규 브랜드로(새로운 법인) 입사 처리 되었다. 수백 명의 직원에서 네 명의 직원, 그리고 두 개의 층을 사용하던 큰 사무실에서 그룹의 다른 부서가 사용하는 사무실 한편에 우리의 사무실이 마련되었다.


부사장님은 대표님이 되었고 팀장님은 이사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주임에서 대리가 되었다. 대표님은 나의 월급과 직급을 더 높여주고 싶어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룹 인사팀, 재무팀과 마찰이 있었다. 당시 신규 브랜드였기에 재무팀과 인사팀이 따로 없어 그룹 재무팀과 인사팀에 의존했는데 그룹의 규정대로 해야 했기에 제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국인에 대한 제재였다는 생각이 든다.(실제로 한국인들 월급은 중국인들의 2배 혹은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고 조금씩 인원을 충원했다.

다섯 명, 여섯 명이 되더니 총 10명까지 더 충원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의 큰일이 있었다. 바로 중국 대도시로의 사무실 이전이었다.


신규 브랜드가 런칭될 무렵, 대표님은 회장님에게 제안을 했다.


이 신규 브랜드는 대도시에 사무실을 차리겠습니다.


그룹 본사는 중국의 2선 도시에 있었다.

회장님은 반대했다. 2선 도시였지만 정말 살기 좋은 도시였고(나도 이 도시가 너무 좋았다) 거기에 30층 가까이 되는 사옥도 짓고 이 곳에 뿌리내리려 했기에 회장님은 대표님의 제안이 의아해 했을 것이다.


이곳이 좋은 도시이긴 하나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비즈니스 인프라가 잘 되어 있고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
대도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도 여러차례 거절했지만 그러면서도 이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보았을 터, 결국은 승인하셨다.

아마도 그룹이 더 크기 위해선 대도시에서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 그럼 대도시에서 꽃을 피워봄세.


이후 회장님은 여러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우선 우리 브랜드가 대도시에서 일하기 좋도록 떠오르는 오피스 상권에 10층짜리 새 빌딩을 한채를 사주었다.(대륙의 클라스... ㄷㄷㄷ) 대신 그 건물은 아직 완공이 안되었으니 임시로 역세권에 새 사무실을 마련해주었다. 얼마나 역세권이냐면 그 지역은 정부차원에서 비즈니스의 허브가 되는 지역으로 키우고 있었고 교통 인프라가 정말 잘 갖춰진 지역이었는데 거기에 지하철 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건물인데다 쇼핑몰까지 붙어있는 빌딩의 사무실이었다.


훗날 회장님은 대도시에서 그룹을 더 발전 시키겠다는 내용을 임원들 사이에서 선포했다.

이로 인해 대도시의 떠오르는 비즈니스 지역에 만평 규모의 부지를 구했고 이 곳에 그룹의 사무실은 물론이고 연구개발센터, 호텔 등 약 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센터를 짓고 있다. 이 모든 시초가 부사장님의 대도시로의 이전에서 시작되었다는게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신규 브랜드에 입사한지 약 6개월 만에 우리는 5년간 정들었던 도시를 떠났다.

모든 짐을 다 싸들고 비행기를 타고 그 도시로 이사했다. 무거운 짐과 당장 필요없는 물건들은 5톤 트럭에 대도시로 함께 이사하는 직원들의 짐과 같이 부쳤다. 꽤 먼 거리였기에 짐은 약 4일 뒤쯤 도착했다. 굉장히 무더운 여름이었고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사했다.


새로운 사무실은 한개 층을 사용했기에 그룹 본사에서의 헬스장, 식당, 스카이 라운지 등의 혜택은 없었지만 대도시의 여러 인프라는 많은 직원들이 만족했다. 다만 물가가 비싸고 사람들이 정말 붐비는 곳이다보니 나는 개인적으로 그 전의 도시에서의 생활이 훨씬 좋았다. 대도시에는 한국과 관련된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 코리아타운 지역에 한인 마트, 한국식당 등 2선 도시에서 누릴수 없었던 것들도 누릴 수 있었다. 마치 한국에 온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2선 도시에서는 한국인을 보면 신기해 하던 시선이 대도시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대도시에 가자마자 면접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면접을 보러 왔고 그런만큼 새로운 직원들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텅 비어있던 사무실은 새로운 인원들로 하나 둘씩 자리를 잡게 되었고 회사의 모습으로 갖춰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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