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이혼이 자식에게 끼치는 영향 - Part.02
그 전 이야기
아버지에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했다.
보여주고 싶다고 하니 그전에 둘이 만나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다며 나를 아무도 없는 사무실로 불러냈다. 나는 직감했다. 쉽사리 넘어가지는 않겠구나. 역시나 그랬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기에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말이라면 고분고분 잘 들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릴 적 우리 집 형편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나와 동생은 치킨 먹는 걸 좋아했는데 치킨을 먹을 때면 어머니는 항상 우리가 먹는 걸 지켜보곤 했다. 왜 안 드시냐고 물으면 '엄마는 배불러' 라면서 우리가 다 먹고 남긴 뼈에 있는 살을 뜯어먹으시곤 했다. 나의 생일날 생일 파티를 해줄 돈이 없어 집에서 국수를 삶아주신 적도 있다. 나는 부끄러웠다. 친구들의 생일파티는 치킨이며 피자며 수많은 과자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나는 겨우 잔치국수였다.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도 얼마나 제대로 된 생일 파티를 해주고 싶었을까.
어머니를 포함한 외갓집 식구들의 공통점은 자식에게 사랑 표현을 아주 잘한다는 것이다.
스킨십도 많고 항상 '아이고 내 새끼~' '이쁜 내 새끼~' 했다. 친가와는 완전히 반대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저 표현의 방법이 달랐을 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기에 나는 두 집안의 다른 사랑방식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나 스스로는 외갓집의 사랑 방식에 좀 더 가까운 편이다. 스킨십도 많이 하고 표현도 많이 한다.
아버지가 든든한, 힘이 되는 존재였다면 어머니는 사랑을 많이 주는 존재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서른 후반이 된 지금도 한결같은 사랑을 주신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적어도 어머니에게 다가감에 있어 불편함이 없기에 자주 전화를 드린다. 가끔 친구랑 술을 한잔하다 어머니 생각이 나면 전화를 드리기도 했다.
두 분 다 부모로서는 좋았지만 부부로써는 서로 맞지 않았기에 이혼했다. 서른이 되어 부모님도 결국은 남녀관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의 이혼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재혼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기보다 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결혼에 있어서 어머니가 안 온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키우지 않은 것도 아니며 어머니가 이 세상에 없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의 내가 있게 해 준 가장 큰 공로자가 그 자리에 앉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끈끈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만 어머니를 나의 결혼식에 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에 대해선 물러설 수 없었고 물러설 필요도 없었다.
나는 지인들의 결혼식에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할 때 항상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다시 한번 나의 부모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자식에게 부모는 하나다. 따로 생각할 수 없다. 서른 살이 되면서 부모님의 이혼을 인정했음에도 나의 결혼식 날 두 분이 함께 앉아있는 모습을 본다면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남의 결혼식에 가서도 눈물이 나는데 나의 결혼식에는 오죽하랴.
아버지는 그런 나의 마음보다 전 부인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버지와 나는 사무실에서 똑같은 말을 서로 반복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투는 강압적이고 나를 찍어 누르는 말투로 고함을 질러댔지만 나는 주눅 들지 않고 맞섰다. 결국 결론은 나지 않았다. 내가 굽히지 않으면 이 대화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나도 굽힐 생각이 없었으므로 나보고 나가라는 말에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아버지의 형제들을 찾아갔다.
이런저런 상황을 얘기하니 그건 아버지가 맞다고 했다. 그들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주변의 몇 안 되는 지인들에게도 조언을 구했는데 아버지 뜻에 따라야 한다는 사람과 그래도 어머니가 안 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의견이 모두 다 있었다. 그들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이것은 나의 결혼식이다. 누군가는 결혼식이 부모님의 손님을 맞는 자리라고 하지만, 어머니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양가집 첫째이고 나의 결혼은 곧 집안의 개혼이었다. 그랬기에 장손인 나에게 그들이 거는 기대가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장손이라서 어머니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어떤 설득으로도 나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누군가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나의 의지를 굽힐 수는 없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데서 발생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고통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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