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어머니를 나의 결혼식에 못 오게 하겠다고 한다.
장인 장모님께 허락을 받은 후 모든 게 순조로울 줄 알았다.
나이가 이미 30대 중반인 데다 부모님도 분명 좋아하시리라 확신할 만큼 괜찮은 사람이었기에 부모님께 결혼을 허락받는 건, 허락보다는 통보라고 해도 결혼 함에 있어서는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내가 군대를 전역하던 날 이혼했다고 통보를 했다.
입대하기 전부터 위태로웠던 부모님의 관계는 입대해서도 두 분이 이혼할까 봐 노심초사했고, 제발 이혼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편지를 자주 보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역하던 날, 나는 부모님의 이혼을 통보받았다. 전역 후 집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짐을 싸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이혼은 나에게 있어 숨기고 싶은 일이었다.
사촌동생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고 집안 어른들은 엄마 없이 자라는 사촌동생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그 수군거림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할머니 덕에 문제없이 잘 자랐지만 그도 어른들의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을 터. 동생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불러내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사촌동생의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안 괜찮게 만들어.
이런 분위기를 알았기에 부모님의 이혼은 나의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결혼할 때 내가 스스로 결혼에 걸림돌이 되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나의 컴플렉스 일지도 모른다) 그중에 하나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장인, 장모님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계시기에 나는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되었지만 두 분은 나를 받아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장인 장모님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이혼가정에서 자란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어느 부모님이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그랬기에 나를 사위로 받아주시려는 두 분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장인, 장모님이 허락해주셔서 순탄할 줄 알았던 결혼은 우리 집에서 문제가 터져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 후 수년 뒤 재혼했다.
내가 해외로 취업하고 첫 번째 휴가를 내어 집으로 돌아오니 다른 분이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한국으로 온 그날, 누가 집에 있을 거라고만 얘기했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분과 잘 지냈다.(호칭을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그분'이라고 칭하겠다) 아버지를 보살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나는 한국에 올 때마다 그분의 선물을 사 오기도 했다. 내 나름의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는 뜻이었다.
내가 서른이 되었을 때 한국에 와 아버지 사무실에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연애하는 중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퇴직을 앞두고 있어 결혼 문제로 나를 괴롭히던 시절이었다. 퇴직하기 전에 결혼하라며 중매까지 설 기세이었지만 그때 나는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나는 너의 결혼식에 너의 엄마를 오게 할 생각이 없다.
라고 했다.
태어나서 그때 가장 크게 분노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욕을 하거나 대든 건 아니지만 온몸이 떨리고(배에 쥐가 난다는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지)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눈물이 났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손이 덜덜덜 떨렸다. 태어나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나는 분노를 제어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우리 엄마가 내 결혼식에 못 옵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항상 다가가고 싶었고 항상 말을 걸고 싶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아빠랑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요'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거절했다.
아버지는 어릴 때 할아버지 사업이 번창하여 집에 일하시는 분도 있을 만큼 잘 살다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굉장히 엄한 사람이었고 많이 맞았다고도 했으며 공부를 잘했음에도 공부하지 않고 태권도를 다닌다고 태권도복을 불태워 버린 적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것이 한이 었는지 나에게 여러번 이야기 했었고 나는 초등학생 때 부터 태권도와 합기도를 배웠다.
할아버지도 아버지에게는 무서운 아버지였을 터. 그런 할아버지의 사업 어려워지고 아버지는 이모집에 살았다고 했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아버지 학교에 찾아왔는데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삼촌이 교실에 찾아와 너의 아버지가 왔다며 불렀고 나가보니 할아버지가 나무 뒤에서 숨어있다가 나왔는데 아버지는 그 장면에 대해 나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사업이 망했다고 해서 아들에게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다고 했다. 내가 아버지에게 친구처럼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나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네가 필요할 때 힘이 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당시의 나는 어렸기에 아버지의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때 나무 뒤에 숨어있다 나왔던 할아버지의 모습에 아버지는 나는 절대 자식에게 그런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항상 자신 있고 당당한 아버지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또 아버지는 밑바닥부터 살아온 인생이었기에, 자식에게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랬기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원하던 '아버지'가 되었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고 아버지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에 나는 항상 든든했다. 단 한 번도 자식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고 그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부자관계에 있어선 그랬지만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어떤 남편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나의 결혼식은 부부관계와 부자관계의 충돌이었다.
재혼한 상황에서 십몇 년간 전 부인을 만나지 않으면 됐지만 자식의 결혼에 있어서는 문제가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외갓집 식구들을 못 오게 할 거라고 예상을 했었다.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결혼식이라는 것은 오늘의 신랑, 신부가 있게 해 준 사람들이 오는 자리라고 생각했기에, 외갓집 식구들은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기에 나는 아버지가 못 오게 하겠다고 하더라도 설득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못 오게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로부터 약 6년의 시간이 흘러 정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고 이 충돌은 피해 갈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아버지와 이 문제에 대해 맞닥뜨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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