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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Sep 04. 2022

우리는 왜 남이 하면 꼭 따라하는 걸까요?

너도 하면 나도 해야 하는 '유행'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이전 이야기

#2 우리 사회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왜 남이 하면 꼭 따라하는 걸까요?


우리나라는 특히 유행이란 것이 심하다. 도대체 왜 유행할까?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산업이 어려워지고 온라인 산업이 부흥하고 있다. 식당에 가지 못하니 배달 산업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인 문제로 발생한 것으로 충분히 납득이 간다. 납득이 가는 유행도 있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유행도 있다. 패션이 그렇다.


필자는 패션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해왔다.

패션시장을 분석하는 것이 일이었다. 중국에서 일했지만 한국 시장의 분석은 꽤 흥미로웠다. 패션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국에서는 매년 유행하는 브랜드나 상품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유행하는 이유를 분석하기가 참 힘들다. 갑자기 어떤 브랜드 혹은 상품이 뜨고 너도 나도 그것을 입고 모든 브랜드가 그 상품과 유사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롱패딩이 그렇다.

롱패딩은 원래 축구 선수들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입는 것이었다. 롱패딩이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두 숏패딩(사실 숏패딩이라는 단어조차 롱패딩이 생기고 나서 생겼다)을 입고 다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롱패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너도 나도 다 롱 패딩을 입고 다녔다. 의류 회사들은 롱패딩을 만들기 바빴다.


롱패딩의 유행은 한 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다음 해도 그 다음다음 해에도 유행은 계속되었으며 모든 브랜드들이 겨울 히트 아이템으로 롱 패딩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겨울은 모두 검은 롱패딩으로 몸을 둘둘 싸매고 얼굴과 손 그리고 신발만 보인채 돌아다녔다. 학생들이 롱패딩을 입고 무리 지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마치 김밥 같다고 하여 '김밥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롱패딩의 장점은 정말 따뜻하다는 것이다.

오리털, 거위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으니 얼마나 따뜻하겠는가. 그 따뜻함에 구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유행하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원래 없던 아이템도 아닌데 말이다. 몇 년간 롱패딩이 유행을 하더니 또 유행이 지려고 하는 듯하다. 10대들 사이에선 롱패딩을 입고 학교에 가면 '이불이냐', '패딩 거지냐' 라는 놀림을 받는다는 신문기사도 보았다. 유행해서 너도나도 입을 땐 언제고 유행이 지나니 이런 말이 나온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0대들은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롱패딩에 이어 래쉬가드도 하나의 트렌드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래쉬가드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래쉬가드 전문 브랜드마저 생겼다. 휴양지에 여행을 가면 래쉬가드를 입고 있는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서양인들은 대부분 비키니나 비치팬츠를 입고 다니기에 래쉬가드를 입고 온 몸을 감싸고 있는 한국인들을 보면 의아하게 쳐다본다. 그들은 해변에서 몸을 햇빛에 노출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국인들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실 필자도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래쉬가드를 입는다.



유행하는 브랜드가 있으면 그 해에는 많은 이들이 그 브랜드를 사게 된다.

거리에서 똑같은 브랜드의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때의 민망함이란. 그런데도 우리는 이상하게도 유행에 따르게 된다.


한국에서는 한 브랜드가 갑자기 확 뜰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뜨는 만큼 인기가 떨어지면 그 브랜드는 오랜 시간 동안 다시 올라가기 힘들다. 이미 몇몇 브랜드가 그랬던 것을 알 것이다. 한 해 혹은 단기간 유행한 브랜드의 제품은 그다음 해에 입기가 좀 어색하기도 하다. 왜냐? 유행이 지났으니 남보기 민망하니까.


명품 브랜드를 이야기해보자.

필자가 대학생 때는 루이뷔통 큰 핸드백이 엄청나게 유행했다. 사실 군대에 가기 전에는 여학생들이 화장끼 없이 운동화에 백팩을 메고 다니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전역하고 나니 뭔가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너도나도 화장을 하고 다녔고 펄럭이는 청바지가 아닌 스키니진이나 치마에 구두를 신고 루이뷔통 핸드백을 하나씩 가지고 다녔다.


사실 그전까지 루이뷔통이라는 브랜드조차 몰랐다. 많은 이들이 메고 다녔기에 명품이라는 것도 알았고 그 큰 가방이 루이뷔통이라는 브랜드라는 것도 알았다. 명품이 비싼 만큼 짝퉁 가방을 사는 이들도 적잖게 있었다. 당시 중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필자는 귀국하기 전 짝퉁 가방을 사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기도 했다.


지금은 마치 명품백을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밥 한 끼 먹는 것에는 할인 쿠폰이나 할인 가능한 카드를 찾아가며 결제를 하는데 몇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누군가는 '내 만족'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법하다. 누군가가 보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은 아닌지.


남자들은 외제차 혹은 중형자 이상은 타야 되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필자의 친구들 조차 우리 나이에 그랜저는 타 줘야지 라는 말에 놀랐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차가 없다. 오랜 해외생활로 필요 없었던 것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차보다는 집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또 지금은 앱으로 차량을 쉽게 빌릴 수 있기에 여전히 차를 구매하지 않았다. 차가 주차된 시간이 이용하는 시간보다 길다. 차에 들어가는 돈이 1년에 몇백만 원인데 그걸 아껴 다른 걸 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필자를 보고 그 나이에 차도 없냐고 할 것이다.

생각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삶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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