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지난 1년간 특별한 단체문자를 보내오고 초콜릿이며 커피며 온갖 선물을 주면서도 고백 한번 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그 모든 행동이 날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단지 교회 오빠였기 때문에, 그것도 청년부 회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섬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다.
교회를 다니던 분들은 아실 것이다. 교회 리더가 팀원들에게 이성적 관심이 아닌 단지 섬김으로써 밥도 사주고 선물도 사주고 편지도 종종 써준다는 것을. 나도 당연히 교회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비롯된 특수한 마음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날 좋아한단다. 더군다나 날 좋아한 지는 1년이 아닌 2년이란다.
왜? 도대체 왜 나를?
보통 호감이란 게 첫눈에 반하는 게 아닌 이상 그래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고 친분이 있을 때 생기는 게 아니었나?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건 1년 전이었고, 그 이전에는 단 10초도 안 되는 인사를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그래서 물었다. 도대체 왜 나를 좋아하냐고, 뭐가 좋아서 2년이나 짝사랑을 했냐고 말이다.
한창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던 고시생 신분이었기에 외적으로 어필될 부분도 없다 생각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날 좋아한 이유는 생각보다 의외의 포인트였다.
첫 번째 의외의 포인트.
"첫 호기심은 동생들 챙기는 모습을 본 뒤였어."
어떻게 그의 눈에 내가 띄었는가 들어보았더니, 2년 전 교회에서 순장으로 섬기던 때였다.
*교회에서 순장이라 함은 쉽게 말해 조장과 같은 개념이라 생각하면 된다. 조장과 조원이 있듯이 교회 청년부에는 순장과 순원이 있다. 조장인 순장이 조원인 순원들을 섬기며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느 날, 섬김을 하고 교회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중. 우연찮게 그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내가 식판을 들고 와서 앉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마자 갑자기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급하게 한 숟가락을 입에 털어 넣고는 바로 일어났다고 한다. (나는 같은 테이블에 그가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다른 순장들도 놀래서 왜 오자마자 바로 가냐고 나에게 묻자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희 순원중에 교회 잘 못 나오던 친구가 있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예배드리고 지금 집에 간다고 해서요. 인사도 할 겸 챙겨줄 것도 있어서요. 밥 맛있게들 드세요~"
이미 밥시간이 한창 지난 때였다. 밥을 받아와서 먹은 거라고는 고작 맨 흰밥 한 숟가락인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순원과의 통화 후에 신나서 자리를 떠나갔다고 한다. 그 모습이 그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나 보다.
본인 밥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 순원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어라 우리 순장들 중에 저런 순장이 있었네?' 하며 나에게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두 번째 의외의 포인트.
"어느 순간 세잎(필명)이가 참 예뻐 보이던 때가 있었어."
호기심에서 호감으로 넘어간 것은 내가 너무나도 예뻐 보이던 때라고 그가 말했다. 이상하다. 그 당시 내가 예뻤던 적이 있었나. 공부하느라 꾀죄죄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그가 말한 '그때'는 내 기준에서는 내가 가장 외적으로 못나 보이던 때였다.
나는 일요일에도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오전 8시 1부 예배를 드리고 바로 도서관으로 넘어가 공부를 하다가 오후 2시가 되면 다시 교회로 와 순원들을 섬겼었다.
도서관에서 조금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온 날이면 항상 청년부모임에 지각을 해서 가장 뒷자리에 앉곤 했었다. 청년부 회장이었던 그는 전체적으로 총괄을 해야 해서 맨 뒷자리에 늘 있었는데 순장인 내가 종종 지각을 하고는 맨 뒷자리에 앉더란다.
어느 날 내가 자기 몸만 한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헐레벌떡 들어오고서는 뒤에서 지켜보는 본인만 알 정도로 가쁘게 숨을 내쉬고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모를 숨을 깊게 내뱉었다고 한다.
'에고 뭐 힘든 일이 있나 보군. 보아하니 그 임용고시 준비한다던 옆팀 순장 같은데 공부하느라 힘들었나'
그날도 이런 생각을 하며 나를 쳐다보았고 나의 다음 행동은 청년부 모임이 끝날 때까지 계속 고개를 떨구거나 멍하게 있다가 가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나는 심호흡 크게 하고는 무거운 책가방을 무심하게 툭하고 내려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면서 앞의 찬양인도자를 따라 신나게 찬양을 부르고 있더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가며 먼저 도착한 자기 순원들을 용케 찾아내고는 씩 웃으며 인사를 해맑게 했다나.
축 처진 어깨와 함께 들릴 듯 말 듯 내뱉은 한숨은 맨뒤에 있던 자기만 알았을 것이라고 한다.
"나도 그 맨 뒷자리에 없었다면 몰랐을 거야. 아무도 세잎이 너의 힘듦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커다란 책가방과 대비되는 툭하면 넘어질 것만 같은 약해 보이는 뒷모습, 그런 뒷모습과 상반되는 너의 씩씩함과 밝은 웃음. 너무나도 예뻐 보였어."
그때 비로소 나에 대한 호기심이 호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눈에 내가 가장 예뻐 보이기 시작한 날은 공부에 진전이 없고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아 한껏 지쳐있었던 날이었다. 화장도 하지 못한 채 머리만 질끈 묶고 왔던 바로 그날이었다. 그런 나의 초라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에는 어찌 내가 예쁘게 보였던 건지.
가끔 교회 섬김에 치우쳐서 자기 일을 소홀히 하는 청년들이 있기도 한데 나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고 했다. 섬김은 섬김대로 열심히 하면서 자기 일을 놓치지 않고 공부는 공부대로 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다고 한다.
화장이며, 옷이며 가장 예쁘게 꾸민 모습이 아닌 가장 꾸밈없는 민낯을 보고 호감이 생겼다니. 이보다 더 예쁠 수 없다고 생각했다니. 참 고마운 말이면서도 민망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이외에도 나의 가치관이나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 등등이 모두 자신에게는 호감으로 다가왔다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을 덧붙이며 고백을 마무리 지었다.
"원래 세잎이 합격하면 고백하려고 했어. 이번 시험 불합격 결과를 듣고 사실 지난 2년 기다린 거 까짓 거 1년 더 기다릴까도 생각했지. 그런데 문득 지난 1년처럼 뒤에서 몰래 챙겨주는 게 아니라 이제는 바로 옆에서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1년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마라톤 고시생활. 이젠 바로 옆에서 힘들지 않게, 지치지 않게 그리고 외롭지 않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고 싶어. 그래서 이렇게 고백해...!"
아... 이 고백에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 고백을 받은 후 한참 뒤에 뒤늦게 알게 된 사실 -
청년부모임에 뒤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항상 의자 하나가 뒤에 마련되어 있었다. 지각해서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을 필요 없게끔, 문 열고 들어오면 바로 앉기 좋은 자리에. 마치 누군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 의자 하나 남았다! 아싸!" 하면서 기분 좋게 앉았었다.
알고 보니 청년부 회장이었던 그가, 늦게 들어오는 나를 위해 매번 나만을 위한 의자 하나를 늘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