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or No?

키 작은 키다리아저씨

by 세잎

2년 치의 마음을 듣게 되었다.

기간만큼이나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마음을.


나는 그 마음에 어떠한 대답을 해야 했을까. Yes? Or no?




공부에 올인하느라 다른 어떠한 인간관계에도 마음을 쏟지 못하던 때, 그때 나는 고백을 받은 것이다. 그냥 고백도 아닌 2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서 고이 전달한 2년 치의 마음을 말이다.


쉽지 않았으리라. 더군다나 자신의 고백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가 고시생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이 고백을 하는 게 맞나 안 하는 게 맞나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쉽지 않은 고백을 용기 있게 해 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고시생이라는 나의 상황 때문에 좋아하더라도 제대로 티도 못 내며 멀찌감치 좋아해야만 했을 그 마음에 미안했다.


하지만 고마움과 미안함 만으로 고백을 받아줄 수는 없지 않은가.




"2년 동안 좋아해 준 마음 너무 고마워요. 그런데......"


"오빠는 2년 동안 절 지켜봐 오고 호감을 키워왔을지는 몰라도, 저는 이제야 오빠 마음을 알게 되었어요. 오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저도 제대로 알아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 바로 고백에 대한 답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우린 썸 타는 사이도 아니었을뿐더러 내 입장에서는 상대의 마음을 전혀 몰랐던 터라 고백을 전해 들은 직후 그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대답이 승낙이 되었든 거절이 되었든 말이다.


다만, 바로 거절하기에는 그동안 봐왔던 그의 한결같은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키다리아저씨처럼 뒤에서 챙겨주던 그의 정성이 하나둘 기억이 났다. 사실 고시생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의심했을 여러 상황들, 이미 나에게 호감이 있으신 건지 물어보고도 남았을 여러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고백에 대한 대답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 사실 그는 나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적'인 이상형은 부합하지만 '외적'인 이상형은 부합하지 않았다. 성격은 나의 이상형에 완전히 부합될 정도로 내가 바라던 성향의 사람이었지만 나의 외적인 이상형과는 거리가 많이 멀었었다.


나는 이상형에 있어서 외적인 부분을 '거의' 보지 않는다. 특히 얼굴 외모와 관련해서는 정말 1도 보지 않을 정도로. 외모보다는 개성을 더 중요시 여겼달까. 하지만 유일하게 눈여겨본 게 있다면 딱 하나. 키였다.


참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유일하게 그려왔던 외적인 이상형이 '키 큰 남자'였는데 나의 이상형과 정반대의 남자가 지금 나에게 고백을 한 것이다.


그렇다. 그는 '키 작은 키다리아저씨'였다.


원래 같았으면 바로 거절했을 수도 있는 나였지만, 이상하게 그의 고백을 들은 그날, 그날은 마음가짐이 달랐다. 크리스마스이브여서 그런가. 2년 동안 한결같았던 그의 마음이 나를 움직인 건가.


잠깐 마음이 움직였다가도 그렇다고 바로 YES를 외치기엔 아직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할뿐더러 지금 당장은 눈앞에 그의 '키'가 계속 아른거렸다. 바로 No를 외치기도, Yes를 외치기도 어려웠던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한 달만 시간을 주세요.


그에게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한 달의 시간을 달라는 건 그저 한 달 동안 내 대답을 조용히 기다리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한 달 동안 저도 오빠를 단순한 교회오빠가 아닌 이성으로서 조금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그래, 알았어. 그럼 난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건가?"



한 달 동안 저랑 데이트다운 데이트 해봐요.


소개팅도 삼세번은 만나보지 않나. (요즘은 삼세번이 아닌가. 우리 때는 그랬다.)


"그동안 저희가 교회에서 인사하거나 밥 먹으면서 짧게 이야기 나눠본 거밖에 없으니까요. 그 정도로는 제가 오빠의 2년 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어요. 세 번 정도 데이트해 보고 오빠에 대한 이성적 호감이 생기는지 아닌지를 보고 오늘 해준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드릴게요. 괜찮으시면... 첫 번째 데이트 언제 하실래요?"

나의 적극성(?)에 살짝 놀란 그는 잠시 버퍼링이 생기다가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더니 바로 약속 날짜를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삼세번 데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 '키 큰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내가 '키 작은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기고 마음을 열 수 있었던 이유 -


2년 동안 보여줬던 나만의 '키 작은 키다리아저씨'의 정성과 마음은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키'에 대한 선입견을 되돌아보게 했다. 선입견뿐이랴,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려 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나 자신을 반성하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외면의 화려함보다 내면의 진정성을 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이 생기게 되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난 아직도 여전히 내 앞에 '키 작은 남자와 키 큰 여자 연인'이 지나간다면 그들을 바라보며 '여자가 아깝다'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참 어리석고도 교만하게 말이다.


고백 당일, 나는 솔직하게 나의 이상형 중 '키'에 대한 생각을 그에게 말했고, '죄송한데, 당신 키 작은 게 마음에 안 들어요.'라는 말을 어찌어찌 돌려 말했다.


참 무례하고도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나의 말에 그가 보인 말과 태도는 예상 밖이었다.


"세잎이(필명) 네가 이런 애인줄 몰랐다. 실망이다."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내가 키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꺼냈을 때는 그가 먼저 나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서 나에게 고민할 거리를 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과 태도는 정반대였다.


그는 '키'를 언급하는 나의 말에 그 어떠한 실망한 기색도 당황한 기색도 없이 그저 잔잔한 미소를 띠며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다.


"각자 자신의 이상형이 있을 수 있지. 당연한 거야. 세잎이의 생각 존중해. 세잎이 말처럼 객관적으로 내 키가 작아 보일 수 있는데,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키가 작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 그래서 단 한 번도 나의 외적인 모습이 부끄럽지도 단점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말이야. 나는 이 키가 이 세상을 살기에 가장 적합한 키라고 생각해."


자만함이 아닌 자존감이었다.

자존감 :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그의 말에 '자존감'의 사전적 의미가 저절로 떠올랐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듣고도 어떻게 하면 저렇게 여유롭게 품위를 지키며 자기를 존중할 수 있을까. 상대가 미워지면서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담백하고도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매너 있게 말하는 이 사람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이 남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단단하고도 긍정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의 모든 생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은 와장창 깨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키가 아닌 그라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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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도 그와의 첫 번째 데이트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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