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의 의미

고백

by 세잎

나에게 있어 꽃다발이란. 특히 남자에게서 받는 꽃다발이란.

연인사이에서 주고받는 것이 꽃다발이었다. 그것도 생일이나 아주 특별한 기념일에 주고받는 것이 꽃다발 아니었던가. 꽃 한 송이가 아니라 다발말이다.


연인이 아닌 대상으로 조금 더 유연하게 범위를 넓혀보자면, 꽃다발을 주고받는 것은 졸업식이나 입학식 등 축하하는 행사 자리 정도가 떠오른다.




2015. 12.24

크리스마스이브


여러 축하받을 사항 중에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없었다.


"해당사항 없음."


그런 나에게 그가 꽃다발을 내민 것이었다. 시험을 합격했더라면 말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합격을 했더라면 '합격 축하'의 명목으로 기분 좋게 합격의 기쁨을 누리며 꽃다발을 덥석 받았겠지만 나는 불합격했다.


웬 꽃다발이냐는 내 질문에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시험 보느라 고생했다는 말만 전한 뒤 본인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을 나에게 덥석 넘겼다.


어찌 됐건 꽃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너무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얘기가 다르다. 다른 날도 아닌 크리스마스이브지 않은가. 내 옆에는 이성 남자가 있고 그에게서 받은 커다란 꽃다발을 식당과 카페에 내내 들고 다녀야 한다.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린 아무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썸 타는 사이도, 고백받은 사이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나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꽃다발의 의미에 대해 다 물어보지 못한 채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그는 모든 상황에서 참 뚝딱거렸다. 대화가 끊기지 않게 말을 참 잘하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침묵하는 순간들이 생기고 뭔가 모르게 긴장한듯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여자의 직감이 발동했다. 그 직감은 옆 의자에 내려놓았던 꽃다발을 다시금 쳐다보게 했다.


말하지 않아도 어떠한 직감이었는지 예상되지 않는가. 날도 날인지라.


'에이 훠이훠이. 여기서 그런 이상한 직감 발동되는 거 아니야. 넣어둬 넣어둬. 하던 얘기나 집중해서 하자.'


머릿속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직감을 누르고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당시 대화의 주제는 '가족'이었다. 가족관계, 친밀도 등등을 이야기하다가 지인의 결혼 이야기로 흘러갔다. 결혼 얘기를 하다 보니 딸 둘이나 가진 우리 부모님이 어떤 사윗감을 좋아할 것 같냐는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주제가 나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빠가 좋아할 만한 사윗감'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꺼내면서 우리 아빠 너무 재밌지 않냐며 잠시 내가 숨을 고르던 찰나.


그 순간.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가 갑자기 입을 떼며 말했다.


"오빠는 어떨 거 같아?"


갑자기 어떨 거 같냐니, 뭐가? 지금까지 해오던 대화의 주제가 뭐였는지도 순간 까먹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본인이 어떨 거 같은지를 물은 건지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건지 그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나오질 않았다.


내가 잠시 그의 질문에 당황을 하며 머릿속을 굴리고 있을 때 그는 다시금 되물었다.


"오빠는 어떨 거 같아?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

"아.. 뭐, 오빠 같은 사람도 좋아하시겠죠. 착하고 성실하고 다정하고. 저번 농어촌 봉사 갔을 때도 어르신들이 엄청 좋아하셨다면서요~하하하"


원래 같았으면 같이 웃으면서

"맞아~ 나 어른들한테 인기 되게 많아~ 대단하지?" 하면서 유머러스하게 지나갈 그였지만 이번에는 웬일인지 웃음기를 싹 뺀 채 나의 대답에 그저 담담하게 한 번 더 이렇게 내게 물었다.


"그럼 세잎이는?"(본명말고 필명 쓰겠습니다)

"네? 저요? 뭐가요?"


"부모님 말고.

세잎이는 오빠 어떨 거 같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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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놓인 꽃다발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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