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찬란함 앞에서

에펠탑, 비르아켐 다리, 룩셈부르크 정원 - 유명한 풍경도 결국 파리였다

by 박나린
도시와 도시 사이: 여름, 프랑스 파리


이 도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패셔너블하다. 길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주변의 가게도 레스토랑도 운하도 건물도 하늘도 말이다. 이 모든 것에 시선을 주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이 가장 무난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 중에서도 유독 눈을 떼지 못한 것이 있다. 오스만 양식의 돔 지붕.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 건물을 바라보는 것도 충분히 예뻤지만, 고개를 들어 쾌청한 하늘과 지붕을 한 시선에 담는 것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파리의 검은색 지붕. Toits Noir(투아 누아르). 어쩜 발음마저 이토록 아름다울까. 패셔너블한 이 도시는 흔하디흔한 검은색마저 아름답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니 프랑스가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본거지일 수밖에. 여기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영감이니까.




파리 여행을 당일치기로 계획하면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었다. 에펠탑과 룩셈부르크 정원. 파리의 퍼스트레이디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보그에서 본 정원. 실제로 본 에펠탑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먼저 그 거대함에 압도됐다. 그 앞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 인간은 굉장히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거대한 상징물을 한 손에 담으려고 했다니. 이 나라의 퍼스트레이디를 고작 열쇠고리 같은 기념품으로 소유하려 했다니. 어떤 기념품을 사더라도 이 마음을 그 안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대신 눈앞의 에펠탑을 마음속에 꼼꼼히 그려 넣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곳에서,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에펠탑을 평생 기억하기 위해. 그 웅장함에 놀라 짓눌린 상태를 영원토록 마음 한편에 간직하기 위해. 에펠탑 뒤편의 다리도 잠깐 걸었다. 지금 내 앞으로는 센강이, 뒤로는 에펠탑이 보인다. 게다가 꽃향기까지. 유럽에서 맡아본 적 없는 향기로운 냄새다. 브뤼셀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마저 잊고 아무 벤치에 앉아 버린다.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이 천국이 '비르아켐 다리'라는 걸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게 됐다.





룩셈부르크 정원에 들르기 전, 라뒤레(Ladurée)에서 마카롱을 구매했다. 이번에도 가게에 들어서기 전에 파파고와 함께 프랑스어로 주문하는 법을 열심히 연습했다. 그리고 성공. 예상 질문이 그대로 나왔고, 준비한 대본대로 마카롱 3개를 구매했다. 바로 횡단보도를 건너 룩셈부르크 정원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천국을 맛봤다.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인데, 파리에서는 계속 천국을 믿게 된다. 이곳은 정말이지, 직접 보지 않고서는 평생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원 곳곳에 널브러진 초록색 의자들, 그 의자들에 거의 눕듯이 앉아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사람들, 분수대에 보트를 띄워 노는 아이들, 그리고 디저트의 나라에서 먹는 마카롱. 그 무엇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게 없었다. 처음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기차역을 나오자마자 바로 올걸. 아예 여기서만 하루를 보내고 돌아갈걸.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렇게 아쉬워할 때가 아니란 걸. 1초라도 더 이 천국을 즐겨야 한다. 재빨리 비어 있는 초록색 의자에 앉았다. 햇볕이 너무 뜨겁다. 의자를 살짝 옮겨 나무 아래의 그늘에 앉았다. 매일 이 풍경을, 이 여유로움을, 이 사색을 즐길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는 여한 없이 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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