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강 대신 골목길 따라 에펠탑에 도착하기
도시와 도시 사이: 여름, 프랑스 파리
잠깐만, 날씨가 이게 맞아? 기차역에서 나와 처음 마주한 파리는 화창했다. 이제 막 파리에 도착한 나를 환영해 주는 듯이, 이번 여행으로 평생의 파리 여행을 퉁치려고 한 나에게 정말 그럴 수 있냐고 묻는 듯이 말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날씨, 그리고 파리 특유의 무채색 건물이 쭉 펼쳐진 거리를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와, 레이디버그에서 봤던 파리랑 똑같아. 레이디버그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공식 이름은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이다. 한동안 이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살았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이 호크모스로부터 도시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날아다니던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서 살면 레이디버그를 볼 수 있을까? 블랙캣도? 비둘기를 좋아하던 아저씨도? 아드리앙 화보들은 어디 있지? 혹시 내가 호크모스한테 잡히는 거 아니야?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상상을 하며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그런데 여기 뭔가 위험한 기분이 든다. 방금 커다란 총을 들고 대열을 맞춰 지나가는 군인들을 봤거든. 사실 지도를 보다가 실수로 그 대열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다. 군인들은 무표정으로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지나갔지만, 이토록 화창한 오전에 그렇게 큰 총을 들고 기차역을 돌아다니는 군인들만으로 여기가 안전한 곳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여기서 얼른 벗어나야지.
오늘의 일정은 루브르 박물관 구경 - 센강 걸어서 에펠탑 가기 - 라뒤레에서 마카롱 사기 - 룩셈부르크 정원 구경 - 벨기에 숙소 복귀다. 우선 루브르 박물관으로 간다. 전날 기차를 예매했기 때문에, 루브르 예약은 당연히 불가했다. 외관만 보고 올 계획이다. 버스를 타서 곧장 맨 뒷좌석의 창문 쪽 좌석에 앉는다. 버스 노선에 맞춰 파리 골목을 구경하며 또 한 번 감탄한다. 옆에 탄 어린 소녀도 같은 마음인가 보다. “엄마, 창문 좀 봐! 엄청 예뻐!”라고 말하며 상체를 내 쪽으로 쭉 빼서 창밖을 본다. 너도 파리가 처음이구나. 그렇다면 어른인 내가 창가 자리를 양보해 줘야 하나? 그러나 화창한 파리가 나를 막았다. 미안, 소녀야. 나도 여기가 처음이고, 파리가 너무 예뻐서 계속 보고 싶어. 파리를 탓하렴.
루브르 정거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지도를 켤 필요도 없이 그 사람들을 따라가면 루브르 박물관이 나온다. 그런데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전에 다른 골목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호텔 루브르 맞은편에 있는 이 골목은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었다. 크게 한 바퀴를 돌고 원래 목적지인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렇게 설명해도 되려나. 인스타에서 사진으로 봤던 루브르 박물관과 똑같은 모습이다. 예뻤다는 나름의 칭찬이다. 날씨가 워낙 완벽했으니 뭔들 안 예쁠까. 짧은 휴식을 취하고, 맞은 편의 공원도 빠르게 구경한 뒤에 센강을 건넜다. 오늘의 유일한 식사가 될 점심을 먹어야 한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구글 지도를 켜는 대신 무작정 골목을 걸어보기로 했다. 메뉴는 이미 결정했다. Viande de jour. 오늘의 요리다. 숙소에서 미리 프랑스어로 주문하는 법도 외워왔다. 빈자리가 있는 아무 브라세리에 들어가서 준비해 온 프랑스어로 메뉴를 주문해 본다. “Je voudrais une viande de jour, s’il vous plaît(즈 부드헤 운 비앙드 드 쥬흐, 실 부 플레).” 점원이 프랑스어로 뭐라고 묻는다. 아, 나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결국 영어로 주문을 마쳤다.
식사를 마친 뒤, 우아한 파리의 거리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 꼭대기를 방향 삼아 골목길을 걷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가장 좋았던 선택이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인스타그램에서는 보지 못하는 청초한 파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관광객들은 보지 못하는 종류의 파리. 나만의 파리. 파리의 낭만을 나 혼자 만끽하는 기분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평생 혼자 간직하고 싶은 풍경이었다. 파리 거리의 아름다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에펠탑을 따라가며 우연히 마주친 알렉산드르 3세 다리와 룩셈부르크 정원에서 노트르담 파리를 거쳐 빅토르 위고의 생가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파리의 아름다움에 취해 이런 도시라면 평생을 걷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또 올 것이라는 다짐도, 1년만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이 도시는 어쩜 이토록 찬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