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계약도 안 했는데 왜 이미 일을 하고 있을까?

by 써니

PART 2. 계약 전에 이미 시작된 일들


기획자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인데도 이미 일을 하고 있다.

제안요청서를 검토하고, 질문을 정리하고, 제안서를 쓰고, 회의에 참석하고, PT 자료를 준비한다. 아직 계약은 체결되지 않았고 법적으로는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은 상태지만, 실무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이미 프로젝트의 일부처럼 흘러간다.


제안요청서를 받으면 기획자는 담당자와 소통하며 요구사항을 확인한다.

빠진 부분을 질문하고, 어디까지를 범위로 봐야 하는지 조율한다.

겉으로 보면 ‘제안 준비’지만, 실제로는 프로젝트의 뼈대를 세우는 단계에 가깝다.


제안서를 제출하고 제안 PT를 마치면 분위기는 조금 달라진다.

“내부적으로는 거의 정해졌다고 보셔도 될 것 같아요.”

“진행하는 걸로 생각하고 준비해 주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음에도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된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킥오프 일정이 언급되고, 산출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지점부터 계약 전 기획은 더 이상 단순한 준비 단계가 아니다.


계약을 체결하려면 보통 계약서 외에도 여러 서류가 함께 필요하다.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지만 최종 견적서, 사업수행계획서, NDA 같은 문서들이 요구되고, 기관 계약의 경우에는 각종 증명서나 투입 인력 자료까지 포함되기도 한다.

최근 진행했던 프로젝트에서는 사업수행계획서 대신 메뉴 구조도, IA, WBS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문제는 이 문서들이 계약을 위한 자료로 제출된다는 점에 있다.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는 참고 자료에 가까웠던 문서들이, 계약이 체결되는 순간부터는 기준 문서로 역할이 바뀐다. 계약을 위해 만든 문서들이, 계약 이후에는 ‘우리가 하기로 약속한 범위와 방식’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즉, 기획자에게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참고 자료였던 문서가, 계약 이후에는 공식적인 기준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계약 전 단계의 기획은 단순한 준비 작업이 아니다. 이 단계에서 이미 프로젝트의 방향과 범위는 상당 부분 고정된다. 이때 기획자가 조심해야 할 것은 문서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문서가 어디까지를 프로젝트 범위로 전제하고 있는지다. 계약 전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유연하게 써두면, 그 유연함은 계약 이후 가장 변경하기 어려운 기준이 된다.



이 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하나다.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단계의 산출물들이 가볍게 다뤄지기 쉽지만, 이 문서들은 계약 이후 가장 먼저 다시 꺼내지는 기준이 된다. 이 사실을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이후 프로젝트의 흐름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계약 전 산출물 제출 시 고려해야 할 것 [바로보기]





다음 연재에서는 '계약 전 산출물 제출 시 고려해야 할 것'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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