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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의 장점

함께 늙어갈 사람

by 김규리

노화란 무엇인가. 요즘 자주 늙어감에 대해 생각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것들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생각해 본다. 강한 자외선 아래에서 계속 일하게 되면서, 내적 노화는 일단 제쳐두고 외적 노화가 먼저 고민으로 떠올랐다.

오랜 세월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던 사람의 양쪽 얼굴을 비교한 사진이 있다. 늘 같은 시간 같은 정류장을 지나면서 항상 왼쪽에만 햇빛을 받은 버스 기사의 얼굴은 지킬 앤드 하이드 포스터처럼 양쪽 피부 상태가 다르다. 마치 햇빛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한쪽만 밑으로 축 처져있다. 자외선은 노화의 주범이라던 어느 화장품 가게 홍보 문구를 이제는 쉽게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미세하게 생긴 왼쪽 팔자 주름과 왼쪽 손목 주름. 나도 이제 주름을 신경 쓸 나이가 됐구나 싶다.


가끔 안부 전화를 하는 선배가 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늘 결혼과 연애, 출산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공동 관심사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는 노화가 주는 우울함에 대해 자주 말하곤 했다. 육신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불가피한 우울함에 대해서. 그는 인간이 자신의 아이를 가지려는 이유는 내 유전자가 후손에서 후손으로 이어져 불멸하기 위한 본능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선배는 자기처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꼭 결혼하라며 늘 농담과 함께 통화를 마쳤다. 내게는 교과서처럼 늘 옳은 말만 하는 그가 매번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하는 이야기가 알 듯 말 듯하면서도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만약 내가 영원히 늙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연애나 결혼을 무한으로 미루었을 것이다. 나중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언제까지 미루어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늙고, 쇠약해지고,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노화가 시작된 몸의 증거를 하나하나 발견할 때마다, 혹시 내 매력이나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외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여성의 출산과 같은 다양한 요소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출산이라니, 내가 출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니! 또 한 번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만약 나에게 인생의 동반자가 생긴다면 주름에 대한 두려움과 늘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 피로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대신 안정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평생 나의 젊은 모습을 기억하고, 함께 늙어갈 사람이 곁에 있으니 말이다. 한정된 시간은 오히려 우리가 받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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