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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지영 Jan 02. 2022

4. 경험이 기회를 만들고

책을 쓰다, 점을 잇다


현재 N잡러이며 앞서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퇴사에 보수적인 편이다. 개인적으로 20대의 대부분은 학교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취직을 했고, 성향 자체가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편이라 퇴사는 나와 먼 얘기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의 플랜이라고 부를 것이 있었다. 퇴직금을 제외하고도, 적어도 1년은 생계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었기에 가능했다.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20대 때의 숱한 열정 페이와 노력들, 그리고 운이었다. 어쩌면 운칠기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열정 페이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20대 때의 그런 경험들이 나의 역량을 넓히고 키워 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예시 중 하나가 ‘책 집필’이었다.


사실 나는 책의 공저자가 아니라 연구원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계약서도 없이 알바처럼 시작한 일이었고, 처음 내가 맡았던 업무와 페이가 보조적인 일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공저자의 개인적 사정에 의해, 1권의 극초반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체, 즉 1권의 대부분과 2, 3권 모두가 나와 편집자에 의해 쓰이고 만들어졌다. 물론 열정 페이였다. 노력이 많이 필요했고 시간도 굉장히 많이 들어갔다. 석사 논문을 마무리하던 시기에 해당 책의 1, 2권을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국제 학회도 준비하느라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랐다. 그리고 그 결과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으며, 놀랍게도 그 사실을 책이 나오기 거의 직전에 알았다. 3권의 스토리를 구상하던 어느 날, 편집자님이 대뜸 저자의 말을 써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출판사와 공저자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했다.


지금이라면 책을 쓰면서 이게 맞는 걸까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고, 경험을 얻으며 작은 돈이라도 벌 수 있음에  감사했다. 경제적인 대가가 아니라 순전히 보람과 완성에 목표를 두었기 때문에 기꺼이 최선을 다했고,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책 집필은 삶이라는 도화지에 크고 빛나는 점으로 남았다.


어쨌든 이름이 들어간 영어책이 시리즈로 있다 보니, 나름의 이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모 엔터의 내부 영어교재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인이 ‘선생님, 책 쓴 적 있지 않아요?’ 하며 소개를 해줬던 날이 떠오른다. 점들이 이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그 일을 진행하기로 확정하면서 퇴사를 결심한 것도 있다.


물론 그 외에 대학교 강의와 중고등 학생을 위한 온라인 강의도 병행하고 있었다. 큰 금액들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느정도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거기에 엔터의 내부 교재를 씀으로써 얻는 수익도 있었다.


며칠 전 한 해를 돌아보며 계산해보니, 회사를 다닐 때보다 1.5배 이상 벌었다는 걸 알았다. 벌이의 출처는 대략 9군데 정도로 다양했다. 처음엔 잘할 수 있을지, 얼마나 프리랜스 생활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확신은 없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들이 헛된 게 아니라는 믿음이 최소의 용기를 준다. 돌아보면, 열심히 살았던 과거의 시간들과 적시에 다가온 운 덕분에 달콤한 월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가끔 친한 동생들이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상담을 청한다. 그러면 나는 아주 조금 먼저 경험한 언니로서 과거의 경험들을 나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했다고, 그러면 언제나 남는 게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가 잘하는 것과 어려워하는 것들, 좋아하는 것과 꺼려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나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아는 것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단단한 토대가 되어 주었다.


세상엔 한 곳만 깊게 파는 사람도 있지만 넓게 여러 곳을 파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전자를 꿈꾸는 후자였고, 그래서 지금 다양한 일들을 하며 위태로운 밥벌이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처럼 다양한 점들을 계속 찍다 보면, 언젠가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모이고 연결될 거라고 믿는다.


현재의 나는 또 다른 과거의 내가 될 것이기에, 오늘도 최선을 다해 배우고 경험하자고, 스스로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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