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의 자괴감, 그리고 죄책감
공기 중에 손을 휘저으면 물방울이 묻어날 것같이 습하고 더운 나날의 연속이다.
오늘은 취준생의 마음속을 휘적거리면 방울방울 맺혀 흐를 감정인 죄책감과 자괴감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나이마다 정해진 임무가 있다. 10대엔 열심히 공부하고 20살에 대학 가고, 여자 기준 24살에 졸업해서 취업하고, 이십 대 후반에는 독립을 하고 30대 초중반에는 자신의 커리어, 새로운 가정 등에 투자하며 성장한다. 이 빼곡한 일정표에는 진로탐색을 위한 방황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휴식기, 오직 나를 들여다볼 시간,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들은 모두 빠져있다. 이런 시간들은 모두 '공백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렇다 보니 나는 외관상으로 보면 공백기를 지내고 있는 셈이다. 공백기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한 활동이나 업적 없이 '그냥' 지내는 기간이다. 내가 지금 하는 공부,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하는 아르바이트, 면접준비와 지원활동들은 특별한 활동이나 업적이 아니고 사회가 정해준 일정표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백수로 '그냥' 살고 있는 중이다.
우리 사회는 공백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대표적인 면접 단골질문이 '공백기에 뭐 했어요?'일까. (뭘했으면 그게 공백기겠냐!!고 외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한다는 모범답안도 넘쳐난다. 그리고 이 답안들의 공통점은 절대 솔직하게 생산성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면접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그냥 살아가고 있는 나를 걱정하는 척하며 비난하고 이런저런 조언을 한다. 물론 나도 나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다. 직장 없이 사는 나를 한심해하고 다그치고 욕한다. 누군가 나이만 물어봐도 이 나이까지 취업하지 못한 자괴감에 허우적거리고, 가족에게 폐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하지 못한 나날들을 후회하고 다가올 미래를 불안해한다.
생각이 이렇다 보니 점점 마음에도 여유가 없어진다.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요즘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상태는 다시 죄책감과 자괴감을 불러온다. 어쩌다 새로 만난 사람의 나이를 알게 되면(정작 본인 나이는 잘 밝히지 않음) 나보다 많으면 내심 안심하고 어리면 불안해한다. 누군가 좋은 결과를 얻으면 '조건이 좋았을 거야' 혹은 '운이 좋았네'하며 자기 보호용 핑계를 대고 동시에 이런 자신의 모습에 다시 자괴감을 느낀다. 친구의 취업이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고 또다시 그런 내 모습에 죄책감을 느낀다. 누군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조금 늦어도 괜찮아, 나이는 상관없어!'라고 토닥여주면 '그래서 지금 내가 늦었다고 확인사살하는 건가?' 하며 상대방의 의도를 왜곡하며 셀프비난을 하곤 한다. 사회에 속하지 못했다는 불안감, 하는 일없이 청춘마저 멀어져 간다는 좌절 속에서 점점 구질구질해지고 지질해진다.
하지만 이런 죄책감과 자괴감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소개서에 강점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면접실력을 올려주는 감정도 아니다. 취준생들은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저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예전에 본 드라마 '슬기로운 감방생활'에서 주인공인 제혁이 야간 교통사고를 내서 감옥에 들어온 취준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최선을 다했는데, 기회가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세상을 탓해. 세상이 더 노력하고 애썼어야지. 자리를 그렇게밖에 못 만든 세상이 문제인 거고, 세상이 더 최선을 다해야지. 욕을 하든 펑펑 울든 다해도 네 탓은 하지 마" 어릴 땐 몰랐지만, 지금 다시 들으니 너무나도 와닿는 대사였다. 그리고 지금도 불안에 시달리고 있을 취준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기억하자. 우리는 줄곧 노력해 왔다. 그저 그 노력이 빛날 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편이 되어줄 필요가 있다. 내 노력은 나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토닥여주고, 우리를 얽매는 나이의 굴레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물론 잘못살고 있다는 죄책감 속에서 나를 챙겨주기란 쉽지않다. 하지만 이 시련을 건강하게 버티기 위해선 자책이 아니라 응원이 필요하다. 어색해도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해보자. '오늘도 수고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