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머릿속에 집어넣고 보자는 부모님께
1월부터 공부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5년 동안 세 아이를 학교 외에는 학습과 관련된 기관에 보낸 적 없이 키우고 있다. 교사도 자식을 가르치는 건 불가능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축적된 노하우가 있는 것이겠지. 부모가 아이와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며 얼마가지 않아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유아기에는 새로운 말 한마디만 해도, 작은 재능만 보여도 "영재 아니야!" 하며 칭찬에 감탄 연발이다. 누구를 닮아 이렇게 똑똑하냐며 자랑을 하게 되니까.
부모가 돌변을 하는 시기는 거의 초등 입학을 준비하는 7세이다. 새해가 밝기도 전부터 "이제 조금만 있으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니까"라는 말을 자꾸 붙인다. 엄마와 함께 잠을 잤던 아이도 앞으로는 방을 혼자 쓰고, 잠도 혼자 자야 한다고. 한글은 천천히 해도 되겠지 했다가 7세만 되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아이를 다그친다. 엄마가 한글책을 가져올 때마다 아이는 울렁증에 시달린다. 갑자기 준비할 것도, 해야 할 공부도 많아져서 이미 지쳐있다.
그런 상태로 공부방에 온 아이가 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부모 상담을 하였다. 5세부터 한글 학습지를 하였고, 6세부터는 한글을 배우는 기관에 다녔다. 일주일에 두세 번 가기에 집에서는 엄마 아빠가 돌아가며 매일 1시간씩 한글과 연산을 했다고 한다.
6세를 데리고 하루 한 시간이라. 집중을 하면 30분에 끝나기도 한다. 잘 못하면 혼이 나서 아이는 이미 부모가 무섭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존재인 동시에 두려운. 찾아온 고민은 이제 아이가 공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것 같다고. 받침 있는 한글은 배우려 하지 않고, 읽어주고 따라 해 보라고 해도 입을 열지 않는단다. 틀리면 혼이 날까 봐 겁을 먹은 아이. 산수도 알 것 같은데 모른다고 답하고, 아예 거부하고 대답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부모도 알고 있었다.
차라리 백지상태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부모에 대한 상처와 공부 두려움을 갖고 있는 어린아이를 다시 백지상태로 되돌려 놓는 게 쉬운 일인가.
아이가 처음 와서 하는 말은 "나는 바빠. 유치원에 갔다가 태권도 가고, 여기에 와." "동생이 부러워. 어린이 집에만 가면 되거든" "엄마 아빠 무서워. 집에서 공부하기 싫어." "쉬고 싶어. 금요일이 제일 좋아. 이틀 쉬거든." 공부방 선생님이 편해서 그런지, 어른에게 존댓말 하는 것을 못 배워 그런지 좋지 않은 발음으로 반말을 한다. 마스크에 가려 표정이 다 보이지는 않지만, 눈은 위로를 원한다. 존댓말은 서서히 가르쳐야겠다. 어쩌면 편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부모는 아주 큰 착각을 했다. 애착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애착은 함께 있으면 그냥 형성되는 것이라고. 공부는 머릿속에 어떻게든 집어넣기만 하면 들어가는 것이라고. 앉아서 학습지 풀리는 것만이 제대로 된 공부라고.
맞벌이 부부의 아이에 대한 열정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시간에 좋아하는 동물책 읽어주고, 아이와 눈 마주치며 엄마의 입모양을 자세히 보여주면서 정확히 발음할 수 있게 대화 많이 하고, 이야기 들어주고, 스킨십하고, 블록 놀이 신나게 해주는 것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만난 지 30분 만에 다 파악할 수 있는데. 자신감이 없다며 걱정하기 전에 표현하는 말 귀 기울여 잘 들어주고 반응해 주면서 칭찬까지 더하면 없던 자신감도 하늘을 찌를 텐데.
수감각도 있고, 책을 읽고 대화 나눌 때는 표현력도 좋다. 좋아하는 공룡책을 보거나 틀린 그림을 찾을 때는 관찰력도 뛰어나다. 보드게임을 할 때는 승부욕도 있고, 규칙도 잘 지킨다. 얼굴 본 지 2주가 되어가니 선생님과 같이 먹고 싶다며 좋아하는 젤리도 나누어 준다.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하기 위해 먼저 한글과 수학을 하자고 하며 집중한다. 받침 있는 글자도 거부감이 사라졌다. 놀이로 접근한 학습이 공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공부에 가려 아이의 성격, 장점도 보기 어렵다. 객관적인 피드백을 주어도 믿기지 않는 눈치다. 집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을 테니까.
'초등 입학 준비'에 관한 많은 책이 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초등 입학은 갑작스럽게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 부모와 애착 형성이 잘 되어 관계가 좋으면 된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지지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으면 충분하다. 놀이와 책으로 다져진 배움의 즐거움을 알면 그만이다. 가장 어려울 것 같지만, 유아 시기 바닥에 굴러 다니던 책을 들고 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밀 때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장난감 가져와 들이밀 때, 하던 일 멈추고 그 자리에서 놀아주면 된다. 그 타이밍을 다 놓치고 한글 떼기 한다고 책 가져와 아이 앉혀서 공부한다고 따라오지 않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부모가 함께 놀아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호기심이 생기면 같이 찾아보고 경험하면서 느끼고 알아가면 그것이 공부이다.
차라리 백지상태로 공부방에 온다면 수월할 것이다. 어설프게 집어넣으려 하지 말고,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함께 해준다면 더 똑똑한 아이로 자랄 것이라 확신한다. 취학 전 이미 공부에 지쳐버린 아이와 한 달 보낸 후 안타까운 마음에 남기게 되었다. 짧은 기간에 밝아진 아이를 보니 참 다행이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