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 대응하는 새로운 합의 필요하다
거듭된 금리 인상으로 채권시장의 시중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금리가 급격히 인상되자 채권시장도 얼어붙었다. 기업 등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졌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있었던 레고랜드 사태는 ‘긁어 부스럼’ 격으로 리스크를 부추기기도 했다. 이렇게 시장이 어려운 와중에 ‘한전(한국전력공사) 채권’이 작금의 유동성 위기를 부추긴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해 발행된 한전채 규모는 총 23조 원이 넘는다. 10월까지 순발행된 한전채는 약 20조 2000억 원치다. 전체 공사채 순발행액 29조 9000억 원 중 2/3에 달한다. 한전채는 시장에서 AAA 등급 초유량 채권으로 분류된다. 안정적인 데다가 이자까지 많이 내어주니, 채권시장의 자금들은 한전채로 몰릴 수밖에 없다. 연간 2500조 원 규모의 국내 채권시장 규모를 고려했을 때 20조 원대의 채권은 절대적인 비중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평시와 달리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 감소가 상황에서 AAA급 우량채권을 대규모로 발행한 것은 시장에 예상보다 큰 충격을 줬다.
지난 10월 20일 날 공개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금리 상승보다 한전채를 비롯한 초우량채 공급이 신용스프레드 상승에 더 많이 기여했다. 신용 스프레드는 회사채 금리와 국채 금리의 차이를 의미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에 돈을 빌려주려는 이들이 줄어들며 회사채 금리가 급격하게 오른다. 그에 따라 신용 스프레드가 상승한다. 현재 신용 스프레드는 지난 1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찍고 있는데, 이를 한전채와 은행채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한전채 발행은 에너지 가격 상승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전반적으로 올랐고 이를 메꾸기 위래 채권을 발행한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에너지 가격 상승이 채권 발행으로 돌려 막을 수 있는 문제냐는 것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기후위기 등으로 인한 부담 가중은 앞으로도 이어질 중장기적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간 누적된 한전 적자가 문제다. 한전 적자는 한전이 전력시장에서 구매하는 전력 도매가격 인상률에 전력요금 인상률이 지속적으로 못 미치면서 누적되어 왔다. 물론 연 기준 한전의 순이익은 유가상승 등 외부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지만, 그를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 전력요금은 적정 수준보다 낮게 유지되어왔다. 한국의 평균 전력요금은 IEA (국제에너지기구) 회원국 평균치보다 항상 저렴한 수준을 유지해왔고, 여러 국제기구로부터 전기요금 인상을 권고받아왔다. 그러니 채권을 덜 찍고 적자를 줄이는 근본적 방안으로 전력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문제는 전기요금 인상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물가 상승으로 민생고가 심각한 이 시점에 전기요금 인상은 되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불붙은 집에 기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유럽 국가들의 경우, ‘전기요금 인상’과 ‘보조금 지급’이란 두 가지 정책을 패키지로 집행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되 취약계층과 전략산업에 한해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프랑스, 독일의 경우에는 정부가 전력공사 지분을 사들여 국유화하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
감당할 수 있는 적자는 괜찮다. 위기에 대응하며 투자를 일궈내기 위해 국가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빚도 있다. 그간 누적되어온 한전 적자에도 그런 긍정적인 측면도 일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지속가능성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가 대두되며 에너지 문제가 보다 중대 해지는 가운데, 기존 전력요금 및 그리드 시스템은 달라져야만 한다.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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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합의할지에 대한 질문은 미뤄둔 채, 그 적자가 누구 때문인지를 두고 싸우기만 바쁜 현실이 참으로 암울하다. 위기는 해법을 찾고 갈등을 봉합하는 노력으로 극복하는 것이지, 트집을 잡아 책임을 떠넘기며 뻔한 대응으로 돌려 막는 것이 아니다.